“쉿!” 소리 없이 강한 광고
“쉿!” 소리 없이 강한 광고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11.2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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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보다 느끼게…‘로우 사운드’ 택한 광고의 역발상

[더피알=문용필 기자] 광고에 있어서 소리의 중요성은 영상 못지 않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영상이라도 이를 뒷받침 해줄 적절한 음향효과가 가미되지 않는다면 메시지 전달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 CM송이 상당수 있을 정도로 소리의 중요성이 부각돼왔다. 카피를 낭독하는 내레이션과 배경이 되는 적절한 광고음악은 수 십 년 동안 대부분의 광고에서 쓰인 일종의 ‘공식’과도 같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최소한의 음악과 음향만으로 영상이 주는 메시지 자체에 최대한 초점을 맞춘 광고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소리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라는 광고의 무기를 배제한 역발상이다.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는 지난 1952년 <4분33초>라는 곡을 발표했다. 3개의 악장으로 구성돼 있는 이 피아노곡은 분명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연주자가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다. 단지 시계로 각 악장의 시간을 재고 시간에 맞춰 피아노 커버를 열었다 닫았다 할 뿐이다.

연주는 하지 않지만 소리는 분명 존재한다. 관객들을 비롯한 연주회장의 모든 소음들이 바로 이 작품을 구성하는 음악이다. 악기연주나 보컬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음악적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탈피한 셈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최근 들어 광고에서도 존 케이지의 실험과 비슷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아예 인공적인 소리를 배제하거나 최소한의 소리만을 사용한 광고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소리를 최대한 배제하는 광고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광고영상 전문가인 조순호 한국영상대 광고영상디자인과 교수는 “사운드가 없거나 소리를 최소화하는 이유는 ‘차별화 전략 때문’이라며 “사운드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가끔씩 침묵, 또는 로우 사운드(Low sound)의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자하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현대자동차 ‘lf쏘나타’의 광고 ‘견고한 바디’편(사진:lf쏘나타 광고화면 캡쳐)

심리마케팅 전문가인 범상규 건국대 교수는 “시각은 반드시 영상매체에 완전하게 노출되어야만 가능하며 중간에 장애물이 있을 경우 정보입수가 불가능하지만, 청각은 이러한 정보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며 “시각을 통한 정보의 전달가능한 양은 청각에 비해 훨씬 많지만 오히려 시각정보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매우 적다”고 언급했다.

또한 “이 때 청각을 소거함으로써 오로지 시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며 “자신이 현재 받아들이는 자극의 양이 최적화 될 때까지 자극의 정보를 조절하게 되는데, 청각적 자극이 감소하면 시청자는 시각적 자극을 통해 부족해진 정보를 입수하려고 할 것이고 광고에 대한 주목도도 더 높아지게 된다”고 소리절제의 의미를 분석했다.

범 교수는 “굉장히 낯선 장면에 노출됨으로써 시청자는 생경함에 이끌려 주목효과나 각인효과가 더욱 강해진다”며 “그냥 지나쳐 버리던 시각적 정보에 주목하게 돼 광고효과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실제 한 광고제작사 관계자는 “요즘 사람들이 광고를 대하는 관점이 달라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본다”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요’ 식의 주장을 현란한 배경음악과 사운드 효과로 메이크업 하는 광고에 사람들이 염증을 느끼는 것 같다”고 밝혔다.

용각산부터 쏘나타까지…‘메시지’에 초집중

최근 현대자동차가 선보인 LF쏘나타의 광고 ‘견고한 바디’ 편은 소리를 줄인 광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수많은 별이 떠있는 우주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광고는 음과 음사이의 여백이 느껴지는 최소한의 악기 연주와 빗소리 정도의 음향효과만 들을 수 있다. 차체의 각 부분을 훑어가는 카메라 액션 외에는 별다른 영상효과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견고한 바디(body)는 직접 타봐야 알게 되는 거니까요’라는 카피도 자막으로만 등장할 뿐이다.

이 광고를 제작한 이노션 측은 “올해 3월부터 7세대 LF쏘나타 출시와 더불어 ‘본질로부터’란 캠페인을 시작했다”며 “기술적 과시를 위한 혁신이 아니라 자동차의 본질에 충실한 혁신을 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그래서 화려한 미사여구나 특수효과를 과감하게 다 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노션 측은 해당 광고로 인해 얻고자 하는 효과는 ‘메시지에 대한 집중력’이라며 “특히 이번 광고는 ‘견고한 바디는 타봐야 알 수 있다’는 메시지의 전달이 중요했다”고 전했다. 이어 “수많은 광고 속에서 이렇게 조용한 광고가 묻히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있었다”며 “그래도 오히려 그 부분이 노림수였다. 현란하다 못해 시끄러운 광고들 속에서 오히려 희소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선보인 르노삼성자동차의 SM3 광고는 초반 18초(30초 버전 기준)까지 차에 탄 아버지와 딸의낮은 속삭임만이 이어질 뿐 아무런 음향효과도 없다. 제목은 ‘속삭임마저 크다’ 편. 르노삼성차는 해당 광고와 관련해 ‘쉿! 조용한 SM3 세상입니다’라는 콘셉트를 통해 주행시 SM3의 정숙성을 표현해내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지난 2006년 발표된 현대그룹의 이미지 광고 ‘등대’ 편은 인공적인 음향은 물론 카피까지 배제한 파격을 선보였다. 광고 내내 나오는 장면은 새벽 혹은 저녁바다에 깜빡이는 등대불빛 뿐이고 파도소리만 들려온다. 자막이라고는 광고 말미에 등장하는 현대그룹의 CI와 계열사 이름뿐이다.

사실 국내에서 소리를 최소화한 광고의 대명사로 꼽히는 제품은 보령제약의 ‘용각산’이다. ‘이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라는 카피로 유명한 그 제품이다.

1970년대에 선보인 용각산의 광고를 보면 초반부에는 뭔가를 흔드는 ‘사각사각’ 소리와 카피를 낭독하는 내레이션과 후반부의 짧은 음악 외에는 특별한 음향효과를 찾아볼 수 없다. 당시 다른 광고들이 그랬듯 내레이션이 다소 장황한 감이 없지 않지만, CM송이 대세였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비교적 파격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소리없는 광고, 해외선 크게 각광

해외에서는 소리를 최소화한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조순호 교수는 “국내 광고 대부분이 아직은 소리를 최소화할 만큼의 아이디어나 자신감이 없다”고 보면서 “소리가 적으면 주목도를 끌 수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하지 못하고, 소리를 줄이는 대신 다른 것으로 관심을 끌 만큼의 크리에이티브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What do you want in a car(차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도발적인 카피로 시작하는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 ‘아우디’의 광고는 ‘똑딱똑딱’하는 리듬과 낮은 소리의 음악 말고는 아무런 사운드가 없다. 경쟁사들의 로고가 새겨진 자동차 열쇠를 아우디 로고 모양으로 벽에 매다는 크리에이티브가 돋보인다.

‘faire du ciel le plus bel endroit de la terre(하늘을 지구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만들다)’는 제목의 ‘에어프랑스’ 광고는 한편의 예술작품을 보는 듯하다. 파란하늘이 투영되는 거대한 거울 위에서 두 남녀가 커플 발레를 추는 이 광고는 별다른 카피나 메시징 없이 잔잔한 클래식 음악만 흘러나온다.

애플이 최근 아이폰6를 출시하면서 선보인 광고는 배경음악을 아카펠라로 만들어 눈길을 끈다. 아이폰의 이미지 광고는 이미 정평이 나있지만 악기를 사용할 때보다 소리의 여백이 많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아카펠라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면서 소리를 최소화한 느낌을 준다.

‘L’invitation du Voyage(여행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을 가진 명품브랜드 ‘루이비통’의 광고는 어두운 톤으로 진행되는 영상에 걸맞게 다소 음산한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는다. 이 역시 에어프랑스의 광고와 마찬가지로 내레이션이나 카피 등의 메시지를 찾을 수 없는 이미지 광고다. 다만, 후반부에서는 강렬한 기타음이 등장하면서 사운드의 볼륨이 강해진다.

궁금증 유발, 구전효과 기대

소리를 최소화한 광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에 대해 이노션 관계자는 “광고적인 설정과 장치가 많은 광고들은 순간적으로 눈과 귀를 끌지는 모르겠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생각보다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소리를 포함해 주변 요소들을 최소화할 경우, 메시지에 대한 몰입력은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범상규 교수는 “자동차의 사례처럼 이미지적인 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제품일 경우 더욱 몰입도를 높여 줄 수 있다. 요즘처럼 광고 혼잡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매우 효과가 높다”며 “일상적으로는 더욱 많은 궁금증과 구전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장기적으로는 청각이 매우 감정적인 지각을 돕는데 탁월하기에 청각정보를 통제할 경우, 호의적인 감정 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범 교수는 아울러 “기본적으로 ‘시각+청각’의 공감각을 활용할 때 절대적인 정보의 양은 더 많아질 것”이라며 “이같은 정보의 손실을 감안해 시각과 같은 특정 자극만으로 충분히 전달 가능한 경우에는 적합하지만 일상적인 제품에는 어필 효과가 떨어질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또한 “최대한 비주얼을 통해 정보 전달이 가능한 경우가 아니면 제2의 매체를 통해 부수적인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병행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전했다.

조순호 교수는 “소리를 최소화한다고 완전히 무음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미미한 사운드’ 전략은 소비자의 연령층과 광고 노출 시간 등을 감안해 작은 소리에도 소비자가 관심을 기울일만한 적절한 타이밍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조 교수는 “설사 소리를 놓치더라도 비주얼이나 화면구성에서 시청자의 호기심을 끌만한 매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소리는 물론 영상마저 무시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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