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만 너무 일상적인, ‘반짝이는 박수 소리’
특별하지만 너무 일상적인, ‘반짝이는 박수 소리’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5.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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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남다른 세상] 이길보라 영화감독

많은 사람들이 청각장애인의 소통방법에 관심을 두지 않거나, 그들을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해의 차이에서 오는 편견이다. 그러나 지난달 개봉한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이같은 편견을 불식시킨다. 이 영화를 만든 이길보라 감독이 생각하는 ‘소통’의 의미는 무엇일까.

▲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의 이길보라 감독./사진제공:kt&g상상마당

축구선수를 꿈꿨던 상국 씨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경희 씨는 사랑에 빠졌다. 결혼에 골인한 이들은 토끼 같은 딸 보라와 잘생긴 아들 광희를 낳았고 가끔 티격태격할 때도 있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간다.

여느 가정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상국 씨 가족에게 한가지 남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소통의 방법이다. 상국 씨와 경희 씨는 청각장애인. 때문에 이 가족은 대화할 때마다 눈을 맞추며 수화로 소통한다. 비 청각장애인인 보라와 광희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수화를 사용하게 됐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대의 숙녀로 성장한 보라는 가족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고 이는 한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청각장애인들의 소통은 아무래도 불편하지 않겠느냐는 편견이 무색할 만큼 이 가족의 커뮤니케이션은 서로에 대한 ‘반짝이는’ 사랑과 배려로 가득하다. 그리고 결국, 진정한 소통은 ‘언어’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관객들에게 깨닫게 해준다.

이길보라 감독은 “특별하지만 너무나도 평범한 청각장애인의 반짝이는 세상을 만났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청각장애인 부모님과의 소통에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다며 오히려 ‘음성언어’가 수화에 비해 비효율적일 때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영화를 통해 “결국 눈을 보면서 대화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라는 영화제목이 참 특별합니다.
청각장애인들은 손으로 박수를 치지 않습니다. 대신 두 팔을 들고 반짝반짝 흔들어요. 그게 더 커보이고 효과적이거든요. 청각장애 부모님의 반짝이는 세상으로, 반짝이는 박수 소리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환대하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의 포스터./사진제공:kt&g상상마당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특별하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평범한, 평범하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특별한 청각장애인의 반짝이는 세상입니다.

영화의 소재적 특성 때문일까요. 다른 영화에 비해 사운드가 강조되지 않았습니다. 소리의 여백이 커서 더욱 몰입이 잘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요.
결국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세상에서 소리는 어떻게 보이고 들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말’을 쓰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리는 어떻게 기능하고 그 사이에 얼마나 작은 소리들이 크게 들리고 큰 소리들은 얼마나 더 작게 들리는지에 대해 ‘뒤집어보기’를 할 수 있다고 할까요. 다르게 보기와 다르게 듣기가 자연스럽게 기능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의 금슬이 참 남다르시네요.(웃음) 항상 눈을 보며 소통해야 한다는 점 때문일 것 같아요.
맞습니다. 가끔 ‘얼굴을 안보고 말로 대화하는 소통이 진짜일까’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자라면서 표정과 눈빛 보다는 음성언어에 의존해 소통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는데요. 가끔 너무 피곤해요.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언어인 수화보다 단순한 언어인 음성을 사용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비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해요.

두 분이 서로의 눈과 표정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리고 있던 소통법은 아닐까, 혹은 잃어버리고 있던 대화는 아닐까 그런 생각을 이 영화를 통해 역설적으로 다시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영화 출연에 대한 거부감은 없으셨나요. 감독님 스스로도 가족사가 드러나는 작품을 내놓으면서 망설였던 부분은 없었는지요.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든 이유는 제가 바라보는 부모님의 반짝이고 밝은 세상과 세상이 바라보는 청각장애가 다르다는 지점에서였어요. 그런데 그것은 저 뿐만 아니라 동생, 부모님, 할머니, 고모에게도 그랬어요. 그래서 카메라를 들었을 때 모두가 그 이유를 이해했고 환영했습니다. 오히려 나중에는 되레 촬영을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수화를 익히셨는데요. 부모님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있게 된 때, 그리고 소통의 답답함을 느낀 가장 큰 순간은 언제였나요.
부모님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던 건 돌 지나고부터였어요. 다른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저는 수화를 배웠죠. 소통의 답답함은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돼요. 문제는 그 두 세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농(聾)문화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와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문제가 시작된 거죠.

가족들이 노래방에 가서 청각장애인인 어머님은 소리로 노래를 하시고 비 청각장애인인 동생은 수화로 노래를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동생이 수화로 노래를 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배운 아이는 프랑스어로도, 한국어로도 노래를 부르겠죠? 그것과 같아요.

결국 이 장면을 통해 사람들은 이 가족의 가장 특별하면서 일상적인 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엄마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처음에는 불편하고 낯선데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잖아요. 청각장애인의 세계가 처음에는 낯설고 좀 불편하지만 보다 보면 너무 아름답고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결국에는 이 장면을 통해 낯설고 특별하지만 일상적인 청각장애인을 만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수화로 소통하는 것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느낌이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주변사람들이 저와 수화로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음성언어는 수화에 비해 단순하고 좀 비효율적이거든요. 수화는 표정이 반 이상인 언어라서 눈짓, 표정 한번으로 모든 걸 전달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상황마다 음성언어가 적절하거나 수화가 적절한 상황들이 있어요. 그걸 취사선택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니 음성언어를 쓸 수밖에 없죠.

▲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의 장면들./사진제공:kt&g상상마당

영화를 본 후 부모님의 소감은? 청각장애인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자신들이 나오고 딸이 만든 영화라서 당연히 좋아하셨고요. 두 번째는 수화를 쓰는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를 본 일이 그들에게는 거의 없어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청각장애인의 삶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청각장애인 분들은 너무 반기시더라고요.

가족 안에서의 소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대사회에서는 소통을 찾아다니는 것 같아요. 잃어버린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은 무엇일까. 그런데 결국 눈을 보면서 대화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청각장애인을 통해 다시 알게 되는 거죠. 결국 하나의 감각이 부재했을 때 어떤 감각이 더 빛나게 되는지를 발견하게 되는거고요. 그래서 이 영화가 2015년의 우리들에게 던지는 새로운 메시지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길보라 감독은...

모범생이었던 고등학생 시절 학교를 그만두고 크라우드펀딩으로 돈을 모아 동남아시아 여행을 떠났다. 19세에 중편 다큐멘터리 <로드스쿨러>를 완성했고 이듬해 <길은 학교다><로드스쿨러>라는 두 편의 책을 펴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재학중이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로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옥랑문화상과 다큐 관객인기상을 수상했으며 장애인 영화제에서는 대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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