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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의 계절’ 돌아왔다머리 싸매는 홍보인, 머리 숙이는 기자…‘축의금 냈는데 밥값까지?’

[더피알=강미혜 기자] 취재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할 말은 많지만…”으로 운을 떼지만 “저는 (취재대상에서) 빼주시면 안될까요”라고 완곡히 거절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쪽에서 이의를 제기한들 저쪽에서 받아들일 리 만무하고, 자칫 신분이라도 노출되면 큰일이라는 염려의 목소리가 컸다.

축의금을 잔뜩 냈는데 밥값도 내라고 요구받지만 뭐라고 대꾸할 수 없는 상황. 가을과 함께 찾아온 ‘포럼 잔치’들이 반갑지 않은 이유다.

   

“모조리 다 없앨 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 진짜 죽겠습니다.”

언론사 포럼에 대해 묻자 곧장 들려오는 한 홍보인의 말이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셀 수조차 없는 비슷비슷한 행사에 다니느라 몸이 두세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양도 양이지만 질도 불만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에도 몇 군데 다녀왔지만 정말 그게 그거다.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며 “사기인 줄 알면서도 속아줄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대기업 홍보임원 A씨도 “언론사 입장에선 돈이 되는 사업이라 너도 나도 뛰어들겠지만, 행사장에 가보면 어떻게 이렇게 하나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특정 부처·기관장을 한 달에 대여섯 번씩 보는 일도 생긴다. 심지어 같은 얘기가 무한반복된다. A씨는 “기조연설이나 강연 제목은 다 다른데 내용은 이전 행사에서 언급한 것이더라”며 “참석자나 강연자나 그런 행사가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헛웃음을 지었다.

범람하는 언론사 포럼에 묻혀 기업들, 직접적으론 언론과 대면하는 홍보인들의 피로도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스폰 요구’는 기본이고 ‘참석 압박’은 필수옵션으로 따라붙는다.

요청의 형태를 띠지만 체감은 강제에 가깝다. 언론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홍보임원 B씨는 “많을 땐 하루에 몇 탕씩 뛰어야 한다”며 “잠깐 얼굴만 비추고 나온다 해도 오며가며 시간을 엄청 뺏긴다. 많이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할 수밖에. 자칫 밉보였다가 괘씸죄에라도 걸리면 더 골치 아파진다.

   
▲ (자료사진) 언론사 주최 한 포럼 행사장을 찾은 참석자들.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매체력·압박수위로 협찬 저울질 

현실적으로 가장 부담스러운 건 뭐니 뭐니 해도 협찬비다. 행사 규모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예산이 들어간다.

문제는 그 횟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어디 땅 파서 돈을 캐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갑갑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기업 홍보부장 C씨는 “예산은 정해져 있는데 별의별 포럼들이 다 생겨나는 것 같다”며 “기업 입장에선 (언론사 요청을) 쉽게 거절할 수도 없고 이래저래 난감할 뿐”이라고 했다. 자연히 매체력과 압박 수위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겨 예산집행의 주판알을 튕기게 된다.
 
협찬 요청이 전방위 루트를 통해 날아들기도 한다. 대기업 홍보임원 D씨는 “데스크가 도와 달라 연락해오고 출입기자도 말을 꺼낸다. 광고국은 그 나름대로 공문을 들이미는데 사업국에서도 컨택해 올 때가 있다”며 “무슨 행사가 이리 많나 싶어 보면 같은 내용을 전달한 거더라”고 했다.

그런 공격적인 곳은 계열사별로 각각의 행사를 개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물론 협찬비 청구도 따로따로다.

언론계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사실 어지간한 행사는 2000~3000만원이면 커버가 가능하다. 스폰서 기업 몇 군데만 확보하면 충분히 남는 장사”라면서 “광고보다 훨씬 효율적인 돈벌이니 욕을 먹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최근엔 티켓 판매도 부쩍 성행하는 추세다. 예전엔 협찬주에게 주는 초대장이 넉넉한 편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수가 확 줄었다. 협찬은 협찬이고 티켓은 티켓이니 따로 처리해달라는 얘기다. 이때 대개는 출입기자가 ‘영업사원’으로 투입된다.

대기업 홍보 담당 E씨는 “티 안 나는 데 돈 쓰는 것(협찬)도 억울한데 강매까지 당한다. 암만 기업이 봉이라도 그렇지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같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대기업 홍보부장 F씨는 “언론사에서 고가의 유료 컨퍼런스를 개최하게 되면 기자들에게 (티켓판매) 할당이 떨어지고,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것은 예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며 “그걸로 기자들이 역량을 평가받는다는데 출입처에서 어떻게 안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선 기자들도 복잡한 심정이다. 경제지 한 기자는 “위에서 하라니까 사람을 모으긴 하는데 순간순간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며 “출입처에서 면도 안서고 기자로서 자괴감만 느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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