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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과의 이별에도 예우가 필요하다
고객과의 이별에도 예우가 필요하다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6.03.0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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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제품 끝나도 브랜드 경험은 계속돼

[더피알=안선혜 기자] 첫인상과 뒷모습이 다른 사람에게서는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 기업이나 브랜드도 다르지 않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는 대대적 마케팅을 제공하며 열과 성의를 다하지만, 시장에서 철수가 결정되는 순간 찬밥신세가 된 고객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헤어짐에도 이유는 있어야 하고, 고객들은 대화를 필요로 한다.

2015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KOG에서 운영하는 게임 ‘그랜드 체이스’에는 근래 어느 때보다 많은 이용자들이 모여들었다.

평소엔 한산하던 광장(일종의 대기실)에는 정오 무렵부터 유저들이 대거 몰려들어 기념 스크린샷을 남기기도 하고, 서버 인원이 초과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날은 무려 12년가량을 이어왔던 그랜드 체이스의 서비스 종료일로, 자신들이 애정(愛情)하던 게임의 마지막을 보기 위한 방문이 넘쳐났다.

종료 직전에는 개발자와 GM(게임마스터·운영 관리자)들이 일제히 광장에 접속해 한 마디씩 진심 어린 작별의 말을 남기기도.

▲ 게임 그랜드체이스는 2015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KOG는 약 한 달 전부터 그랜드 체이스의 서비스 종료를 공지하고 구매한 아이템에 대한 환불신청을 받았다. 종료를 며칠 앞둔 크리스마스에는 운영진들이 따로 이벤트를 준비해 유저들에게 깜짝 선물을 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서비스 마지막 날 주요 SNS에서는 수많은 유저들이 ‘#그랜드체이스_사랑해’라는 해시태그를 단 메시지를 남기면서 해당 해시태그가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떠나는 자리에서 이들이 보여준 성의 덕분인지 많은 유저들은 게임에 얽힌 자신의 추억을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아쉬움과 감동의 소회를 함께 전했다.

넥슨의 ‘큐플레이’도 같은 날 게임을 종료하면서 유저들을 위한 특별 영상을 공개했다. 서비스가 이뤄졌던 지난 16년 간 이 게임이 만든 자취들을 보여주는 건 여느 영상과 다를 바 없었지만, 영상 말미 종합랭킹 1000위에 속하는 모든 유저들의 아이디를 엔딩크레딧으로 올리며 감동을 선사했다. (아래 영상 참고)

이 게임은 종료 전 자신의 아바타를 이미지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추억 간직하기 서비스’도 업데이트,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유저들을 지원했다.

이처럼 이별을 앞두고 사소하지만 작은 배려로 다가서는 건 브랜드 관리에 있어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양재호 동아대 경영학과 교수는 “하나의 브랜드가 사라질 지라도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소비자 경험은 모기업에 속한 다른 상위 브랜드나 패밀리 브랜드에 영향을 미친다”며 “특히 개별 브랜드 중심으로 운영되는 미국과는 달리 일본처럼 기업 브랜드가 중시되는 국내 풍토에서는 브랜드 종료도 중요한 관리 대상”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KT미디어허브는 지난 2014년 10월 자사 전자책 서비스인 ‘올레e북’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기존 사용자들에 대한 보상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원성을 산 바 있다.

이미 구매한 도서를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전자책 전문업체인 바로북에 이관키로 했지만, 종료 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이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상담원 연결은 지연되고 누군가는 환불을 받고 누군가는 못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오가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이관 작업이 KT미디어허브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일은 아니지만, 기존 올레e북 이용자들은 KT의 책임을 추궁했고 언론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 감정은 전이된다

흔히 신제품이 나오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때는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지만, 단종과 서비스 종료를 앞두고는 고객 케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까지 최고 사양을 자랑하던 제품이 어느덧 구형으로 전락하고, 기존 제품에 대한 서비스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고객들은 상술에 실망하고 해당 기업에게서 등을 돌리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잘 사용하던 서비스나 제품이 안녕을 고할 때 아쉬운 감정을 표하는 고객들을 잘 다독이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은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사태로 곤혹을 치르고 있지만, 폭스바겐은 지난 2013년 12월 콤비(Kombi)라는 차량을 단종시키면서 ‘마지막 소원(Last Wishes)’이란 캠페인을 전개, 전 세계 팬들의 눈시울을 붉힌 바 있다. (아래 영상 참고)

공개된 캠페인 영상에서는 생산돼 온 세월을 반영하듯 할머니로 의인화된 콤비의 내레이션이 등장하고, 자신의 탄생부터 세계 곳곳을 누비며 친구가 된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비춰준다. 마지막을 앞두고 유품을 남기듯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것이 영상의 핵심이다.

담담하게 ‘기분 좋은 이별’을 고한 이 영상은 공개 3주 만에 285만건의 조회수를 기록, 폭스바겐 역사상 가장 많은 ‘좋아요’와 ‘공유’를 기록했다. 2014 칸 페스티벌에서는 브랜드 콘텐츠 부분 금상을 수상하며 호평 받았다.

폭스바겐은 콤비 생산 중단 전 영상에 등장하는 마지막 한정판 모델을 내놓기도 했는데, 값비싼 세팅을 하기 보다는 콤비의 기본적 모습에 충실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과 동일한 비닐 시트에 패브릭 소재 커튼을 사용하면서 차량 내부에만 마지막 에디션을 뜻하는 표식을 새겼다.

기존 오리지널 콤비를 사랑했던 팬들의 니즈를 충분히 반영한 결과였다. 이들의 작별 스토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곳곳에 마련돼 있던 전용 정비소를 통해 고장 이후 수리에 대한 염려까지 덜어줘 더욱 감동을 선사한다.

이에 대해 이영화 스톤브랜드커뮤니케이션즈 상무는 “차가 사라지더라도 해당 브랜드에 대한 역사와 추억은 고객들의 인식에 남게 된다”며 “끝맺음에 있어서도 브랜드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 회사라는 사실은 호(好)이미지를 남기고, 향후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하더라도 고객의 인식 속에 남아 있는 브랜드 자산을 끌어다 쓸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대자동차도 지난 2014년 폐차 혹은 중고차 판매로 차량을 떠나보내거나 떠나보낼 예정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브릴리언트 메모리즈(brilliant memories)’ 캠페인을 전개한 바 있다.

▲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월 자동차를 떠나보내는 고객들의 추억을 담은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전시회를 개최했다.

자동차 부품을 활용해 자동차와 만들어온 추억을 되살려준 것으로, 각각의 사연을 아티스트들이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고 관련 전시도 진행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캠페인 당시 “고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고객들의 추억이 담긴 차량과 그 기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번 캠페인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일방적 고별이 부르는 ‘화’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고객 케어 활동이 모 브랜드나 다른 확장브랜드로 충성도를 전이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애착을 가졌던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제품 생산이 중단될 때 사후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 분노의 화살이 해당 브랜드의 모기업을 향할 수도 있다고 충고한다.

SK텔레콤은 과거 TV광고 캠페인으로 눈길을 끌었던 ‘눝’과 ‘100년의 편지’ 서비스를 동시에 종료한 바 있다. 눝은 스마트폰을 돌려서 획득한 포인트로 데이터나 음악, 게임 등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면서 10~20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어플리케이션이다. 출시 한 달 만에 300만 가입자를 넘어설 정도였다.

하지만 누적 환산 금액이 약 450억원에 이르는 등 서비스 포인트가 과도하게 발생되면서 이를 종료했다는 인상을 남겼다.

서비스 종료를 기해 1만명을 대상으로 문화상품권, 스타벅스, 바나나우유 등의 경품을 추첨해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며 불만을 잠재우려 했으나, 돈이 안 되는 서비스에 대해선 소비자들의 이해를 구함 없이 은근슬쩍 종료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 sk텔레콤이 지난 2013년 선보였던 눝. 아이돌 스타들을 기용해 대대적 캠페인을 펼쳤으나, 종료 시에는 충분한 고지가 없었다는 비판을 들었다.

100년의 편지는 서비스 종료를 앞두고 발생한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소비자들의 비난을 샀다. 이 서비스는 촬영한 동영상을 최대 30년까지 저장했다가 특정인에게 영상편지로 보내주는 것으로, 콘텐츠가 수년에서 많게는 수십년 후에 발송되기에 사후 관리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두 서비스 모두 한시적 프로모션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긴 했지만, 종료에 대한 충분한 사전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꼬리표는 뗄 수 없었다.

CJ헬로비전의 알뜰폰 브랜드인 헬로모바일은 최근 SK텔레콤으로 인수를 앞두고 CJ그룹의 멤버십 혜택을 사실상 축소해 소비자 불만이 제기됐다. 헬로모바일 측은 제휴 적립 서비스 중단은 지난해 5월에 결정된 것으로 인수 건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고객들은 어떠한 설명 없이 이용하던 혜택이 사라지는 데 대해 볼멘소리를 높였다.

기업에서 경영효율성을 높이고자 사업재편에 나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과정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양 교수는 “일본의 경우는 90년대 초 버블경제가 깨지면서 엄청나게 많은 제품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인수합병으로 은행들이 사라졌는데, 회사 중역들이 나와서 고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며 “아무런 설명 없이 없애버리고 나면 고객들의 반발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시장에서 철수하는 이유를 밝히는 등 스토리를 만드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제품 출시와 함께 구제품이 돼 버리는 모델에 대한 케어도 필요하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출시 초기 다품종 전략을 구사하면서 기기별 OS(운영체제) 업데이트가 늦어져 소비자들의 불만을 키웠다. 구형 제품에 대한 업그레이드를 차일피일 미룬다는 것이었다.

각 기종별로 일일이 새로 규격을 맞춰야 하는 OS 업데이트 특성상 보유 기종이 많을수록 작업이 녹록치 않지만, 이후에도 구형 스마트폰에 대한 소원한 업데이트는 꾸준히 지적됐다.

출시 2년을 넘긴 옵티머스 LTE2에 대한 업데이트 및 보안패치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안드로이드 탭북’ OS 업그레이드를 제공하지 않는 등 구형제품에 대한 관리 문제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최근에는 이 문제를 개선해 비교적 빠르게 OS 업데이트에 나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객 유지 비용 < 고객 유치 비용

삼성전자에도 ‘흑역사’가 존재한다. 아직 국내에 애플 아이폰3G가 도입되기 이전 삼성전자는 이에 대한 대항마로 옴니아2를 출시했다.

▲ 삼성 스마트폰 초창기 모델인 옴니아2.

80만원이 넘는 고가였음에도 적극적인 마케팅에 2010년 중순까지 약 80만대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문제는 출시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삼성전자에서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를 선보이면서 불거졌다.

이른바 ‘버리는 카드’였다는 평가들이 나왔던 것. 아이폰 출시 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임시방편으로 내놓은 제품이라는 곱지 않은 해석들이었다.

이후 보상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애를 먹었고, 소비자들은 ‘휴대폰 이름+쓰레기’ 합성어의 원조 격인 일명 ‘옴레기’라는 별명까지 붙이며 불편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최장순 엘레멘트 공동대표는 “구매 고객들을 고려하지 않고 기존 제품을 진부화시키고 신규 고객 모집에 나서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경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접는 사업에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브랜드 관리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에서 일반적으로 고객을 계속 유지(retention)시키는 것보다는 신규고객을 유입(acquisition)하는 데 더 많은 투자를 하곤 하는데, ‘신규 고객 유입’을 위해서는 투자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지만 ‘기존 고객 유지’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들어간다”며 “리텐션(retention·보유) 효과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본의 유명 게임인 ‘파이널판타지14’는 2009년 출시했다가 시장 반응이 미진하면서 2년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게임을 만든 스퀘어에닉스는 내러티브를 살린 고퀄리티 영상을 제작해 서비스 종료일에 동시에 상영했다. (아래 영상 참고)

‘시대의 종언(End of an era)’이란 이 영상은 몬스터 바하무트에 의해 세계가 멸망하고, 이를 봉인하려던 현자가 모든 유저를 어디론가 이동시키면서 마무리된다. 적국이 파괴신을 부활시키려하고 유저들이 그것을 막고자 하는 게임의 기본 플롯과 상당히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이후 스퀘어에닉스는 2013년 이 게임을 리뉴얼해 새롭게 내놓았고, 실패를 딛고 일어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해 국내에도 성공적으로 상륙했다. 

새로운 파이널판타지14는 미래로 이동한 모험가들이 다시 모험을 펼친다는 설정으로 이전작과도 세계관이 연결된다. 첫 작은 게임의 메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 PD가 직접 “실패했던 게임”이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당시의 종료 영상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국내 유저들에게는 ‘정성스런 폐업행사’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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