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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를 자극하는 ‘귀르가즘’
당신의 뇌를 자극하는 ‘귀르가즘’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6.09.01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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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부스럭부스럭 쩝쩝 사르륵...소리로 얻는 만족과 힐링

[더피알=이윤주 기자] 이어폰을 끼자 영상 속 여성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이쪽에 편안하게 누우세요. 집에서 귀 한 번도 안 건드리셨나 봐요. 잘하셨어요. 혼자 면봉 같은 걸로 파다보면 세균 감염도 쉽고, 최대한 놔두는 게 좋죠. 그러면 먼저 귀 소독부터 하도록 할게요.”
 

화면 속 여성은 귀이개를 들고 다가오고, 곧이어 이어폰과 귀 사이 그 중간 어디쯤에서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른하고 묘한 이 영상은 ‘ASMR’ 중 하나다. 자율감각쾌감반응의 줄임말인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은 자극으로 인한 심리적인 만족감과 쾌감을 뜻한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시청자의 귀를 자극해 편안함을 주는 이른바 ‘청각 힐링 콘텐츠’로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사물을 두드리는 탭핑(Tapping), 양쪽 귀에 번갈아가면서 소리를 들려주는 이어 투 이어(ear to ear), 입으로 내는 소리 등 자극을 일으키는 트리거(Trigger)는 다양하다. 긁는 소리, 구기는 소리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ASMR 초기에는 머리카락 자르는 소리, 성냥 키는 소리 등 일상 속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콘텐츠가 주를 이뤘으나, 지금은 음식을 씹는 입소리, 미용실을 찾은 손님을 대해주는 상황극 등으로 한층 다양해졌다.

누군가 바스락 소리를 내며 면봉으로 귀를 파준다거나 마사지를 받거나 소곤소곤 속삭일 때 느껴지는 간질거림은 ‘기분 좋은 소름’이라는 의미로 팅글(tingle)이라 한다. 대부분의 구독자들은 이 팅글을 매력으로 꼽는다.

(영상은 이어폰으로 들어주세요)

ASMR 아티스트의 등장

트리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은 ‘ASMR 아티스트’라 불린다. 이들은 유튜브, 아프리카TV 등을 비롯한 다양한 영상 플랫폼에서 1인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ASMR 아티스트가 등장한지는 3년 남짓이지만 최근 구독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ASMR 아티스트 미니유(miniyu) 씨는 “3년 전쯤 해외 ASMR영상을 보다가 한국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엔 영상을 올리면 ‘이게 뭐하는 거냐’ ‘왜 속삭이느냐’ ‘왜 두드리느냐’고 묻는가하면, 상황극엔 ‘앞에 누가 있느냐’는 반응과 악플이 대부분이었다”면서도 “요즘엔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높아진 인지도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니유의 유튜브 구독자수는 21만명을 넘어섰다. 인기영상의 경우 200~300만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로 호응도가 높다. 해외 구독자도 상당해 영어자막을 따로 제작한다.

주요 콘텐츠는 귀 청소, 귀 마사지 상황극, 먹는 소리, 위로해주기 등이다. 때로는 사랑해 좋아해를 반복하기도 한다. 영상을 보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거나 평생 못 들어본 말을 여기서 다 듣는다는 반응들을 볼 수 있다. 미니유는 “ASMR은 마음이 힘들고 울적하고 외로울 때 누군가가 곁에 있어준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위로와 힐링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상은 이어폰으로 들어주세요)

구독자들의 만족을 위해 아티스트들은 콘텐츠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다. 아티스트 하쁠리(rappeler)는 “좀 더 리얼한 일상생활 속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귀 파는 소리 하나도 현실감 있게 들리도록 맹연습한다”고 전했다.

콘텐츠 발굴에는 한계가 없다. 듣고 기분이 좋아지는 트리거를 찾으면 되기에 응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기분 좋은 소리를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3D 특수 마이크에 젤리를 붙인 뒤 집게로 떼어내거나, 솜을 그 속에 넣고 빼는 소리를 들려주며 바스락거림을 극대화한다.

ASMR은 마이크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3D사운드(입체음향)와 시각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소리를 위해 여러 종류의 3D 마이크를 사용한다. 말하는 소리를 부드럽게 잡아주는 대화용 마이크는 기본이고, 사람 귀를 본 뜬 마이크를 쓰기도 한다. 실제 사람 귀가 듣는 소리와 최대한 비슷하게 녹음돼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한 착각을 주는 것이다.

미니유는 “ASMR은 아무래도 소음에 민감하기 때문에 녹화할 때마다 항상 조심스럽다. 대부분 밤에 잠잘 때 듣기 때문에 영상에서 조그만 소리가 나도 깨기 일쑤”라고 했다. 하쁠리 역시 “이걸 듣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거나 무언가 집중하기 위함”이라며 “영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역할에 몰입하되 최대한 편안하게 들리도록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에서 전효성이 asmr을 콘셉트로 출연했다. 영상 캡처

최근에는 1인 크리에이터 뿐만 아니라 방송인들이 ASMR을 시도하기도 한다. 지난 5월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한 가수 전효성은 시청자들에게 숙면과 힐링을 주는 ASMR로 화제를 모았다.

방송인 겸 성우 서유리는 작년 말부터 MBC플러스의 ‘코코넛채널’에서 ‘아주 사적인 동화’ 코너를 맡고 있다. 늦은 저녁시간 목소리 좋은 친구가 구연동화를 들려주듯 편하게 이야기하는 콘셉트다. ‘백설공주’ 편에서는 사과 깎는 소리를 들려주기도. 1인 방송과 전체적인 구성은 비슷하지만 현직 PD가 기획하고 성우가 직접 녹음해 소리의 품질이 다르다는 평가다.

(영상은 이어폰으로 들어주세요.)

속삭임, 마약 같은 중독성

ASMR은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안정된 볼륨에서 반복적으로 들리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기에 불면증이나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이 찾아 듣곤 했다. 하지만 ASMR의 생리학이나 정신질환에 대한 효능은 입증되지 않았다. 현재 ASMR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제니퍼 알렌 등 연구팀이 효과에 대해 2년째 연구 중이어서 조만간 과학적 메커니즘이 밝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ASMR 연구 대학 바로가기)

크레이그 리처드(Craig Richard) 셰넌도어대학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많은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ASMR에서 왜 안도감을 느끼는지 밝혀낼 것”이라며 “결과가 나오면 수면장애나 스트레스를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SMR의 가장 큰 장점은 편안함이다. 실제로 불면증 환자들이 효과를 봤다는 후기도 적지 않다. 윤병문 마음과마음 정신과 의사는 백색소음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고 말했다. “수면장애 때문에 이 영상을 찾는 사람이 있으며 실제로 수면유도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반복적이고 안정적인 소리를 듣다보면 우리 뇌가 그에 맞춰서 조건화 된다”며 “익숙해지고 안정돼 잠을 잘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한 윤 의사는 “이런 트렌드가 많아지는 것은 그만큼 현대인들이 잠들기 어렵고 스트레스가 많아졌다는 것을 뜻한다”며 “ASMR 의존도를 높이기보다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다른 방법들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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