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PR 제안요청서는 왜 매년 똑같나요?
공공PR 제안요청서는 왜 매년 똑같나요?
  • 안해준 기자 (homes@the-pr.co.kr)
  • 승인 2020.09.09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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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PR 실태 진단 ①] RFP
정례 프로젝트 동일 내용 ‘복붙’, 과년도 성과·결과 반영 안돼
정책목적-정책홍보 목표 뒤섞여 관행 따라가기 급급

국민 세금을 갖고 일하는 정부에게 공공PR은 국민과의 연결고리이다. 국민 생활에 필요한 정책을 알리고 설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공공PR은 업계에서조차 케케묵은 문제가 풀리지 않는 분야로 지목된다. 이에 <더피알>은 공공PR의 문제가 뭔지 다각도에서 면밀히 짚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공공PR의 출발점인 제안요청서(RFP)에 관한 이야기다. 

- 사업목적
- 과업범위와 업무내용
- 응모(참가)자격
- 평가방법 및 제출서류

“RFP(Request for Proposal)는 모든 공공용역의 시작이다.”

한 에이전시 대표의 말이다. 공공PR에서 ‘일감’을 따내려면 이 RFP라고 불리는 제안요청서부터 제대로 알고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RFP 파악은 사업계획서 및 서류 제출-경쟁 프레젠테이션(PT)-최종 입찰 후 과업 수행으로 이어지는 용역 단계의 첫걸음이다. 과업을 맡기는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이 생각하는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를 파악하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적절한 전략, 업무수행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문제가 명확해야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있지만, 공공 RFP에는 정책을 알리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목적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매년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작년? 올해? 판에 박힌 내용

연간으로 정례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매해 해당 사업에 대한 성과를 분석하고 피드백을 해야 한다. 유무형의 성과를 여러 요소로 종합적으로 평가, 차년도 사업에 적용하기 위함이다.

이 당연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업체를 수주하는 기관들의 RFP를 살펴보면 뾰족한 개선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가 연례로 진행하는 ‘청년고용정책 온라인 홍보사업’의 제안요청서를 보자. 매해 진행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주력 프로젝트 중 하나지만, 사업 목적에서부터 사업 내용까지 전년도와 상당 부분 비슷하다.

특히 온라인과 오프라인 홍보 용역이 분리된 2019년과 올해 해당 사업의 RFP를 비교해 봤을 때 통계나 금액, 업무 할당량 정도의 수치상 자료를 제외하면 복붙(복사+붙여놓기)한 듯한 모습이다. (하단 이미지 참고)

청년고용정책 사업의 목적으로 △정부 청년고용정책에 대한 정책수요층과 대국민 인지·체감도 제고 △정책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채널 운영 △주요 정책정보와 정책이슈 등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온라인 적합 콘텐츠 제작·확산 △청년, 기업인사담당자 등 주 정책수요자들이 활용하는 민간 온라인 매체· 네티즌 의견 수렴 등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로 기재돼 있는데, 작년과 올해 모두 토씨 하나까지 똑같다.

고용노동부 청년고용정책 온라인 홍보사업의 2019년도(왼쪽)와 2020년도 사업 개요 일부.
고용노동부가 발주한 청년고용정책 온라인 홍보 용역 2019년도(왼쪽)와 2020년도 사업 개요 일부. 사업 목적과 주요 사업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부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토교통부의 홍보 영상 제작·운영 사업 내용을 보자.

*국토교통부 홍보 영상 제작·운영 사업 목적

▶홍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정책홍보 효율성 제고
-주요 정책을 알기 쉽고 신속하게 국민에게 전달하기 위해 시각화된 영상․사진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홍보로 정책 공감대 형성
-주요 정책 현장 및 장차관 동정을 생동감 있는 영상․사진으로 제공하여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보 제공
-최근 영상 활용이 증가하고 있는 뉴미디어를 통한 온라인 홍보

▶자체 영상 제작 기반 구축․채널 운영
-자체 영상물 제작을 통해 발 빠르게 정책을 홍보할 수 있는 체계 마련
-자체 홍보 매체 운영을 통해 청사 방문자․내부직원 대상 홍보

2019년도와 2020년도 모두 해당 내용이 제안요청서에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다. 날짜 (과업기간)나 계약 부분 사항 정도를 제외하면 과업 목적과 내용 등이 일치한다.

영상 제작이라는 포맷이 정해져 있는 프로젝트이지만 정책적 현안과 그에 따른 홍보 전략은 매년 같을 수가 없다. 막연히 뉴미디어 통한 홍보를 제안할 것이 아니라, 지난해 해당 사업의 결과를 반영해 올해는 어떤 목적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향성을 발주처에서 먼저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상당수 공공PR 제안서가 정책의 사업 목적과 정책홍보의 목표가 혼재해 구성돼 있어 실행 결과가 다음해 목표로 반영되기 어려운 형태다.

환경부가 진행하는 ‘2020년도 미세먼지 저감 정책 광고 홍보’ 사업 제안요청서와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다.

환경부는 해당 사업과 관련해 미세먼지 저감 정책과 홍보 전략 등을 과업 내용에 포함했다. 그러면서 ‘입체적 오염물질 감시체계’,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한중협력에 대한 홍보 등 구체적 정책사항도 함께 기재했다. 상대적으로 사업이 목표로 하는 바가 명확하다.

“위험 리스크 회피 경향…보수적 모습”

이형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공공부문의 비슷비슷한 RFP에 대해 “빠르게 성과를 내 가시적인 지표를 만들어야 하는 민간 기업 용역과는 달리 공공기관은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전략은 리스크가 있기에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과거와 비교해 무난하고 튀지 않는 전략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공공 용역의 보수적인 모습도 보인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2020년도 미세먼지 저감 정책 광고 홍보 사업 제안 요청서 일부. 진행하고 있는 정책과 홍보 방향을 기술했다.
환경부의 2020년도 미세먼지 저감 정책 광고 홍보 사업 제안 요청서 일부. 진행하고 있는 정책과 홍보 방향을 기술했다.

이같은 어려움은 정부 기관의 순환제 근무 시스템 영향도 있다. 이 교수는 “대개 정부 부처의 업무는 1년마다 로테이션되는 경우가 많다”며 “해당 정책에 대해 깊이 알고 홍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담당자가 적다”고 했다. 짧은 기간 동안 해당 과업을 수행하니 변화를 동반한 위험부담을 안고 사업을 진행하기 보다 과거에 행해왔던 관행 따라가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한 과업 내용도 문제다. 보건복지부의 연간 공공용역인 정책 홍보 컨설팅의 제안요청서에 기재된 주요 과업을 보자.

-주요 정책 및 이슈 대응 홍보 컨설팅 총 5건 (추후 조정 가능)
-이 중 필요시 빅데이터 분석 및 대국민 설문조사 진행 (총 3건 이하)
-더불어, 홍보 우수사례에 대한 국내외 어워즈 제출 관련 전반 지원

용역업체가 수행해야 하는 핵심 과업인 홍보 컨설팅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과업 기간 동안 총 5건의 컨설팅을 해야 한다는 조건만 있을 뿐, 어떤 정책과 이슈를 살펴봐야 하는지, 이 컨설팅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등의 언급도 없다. 지시사항만 나열해 컨설팅을 제안하는 주체보다 수행해야 하는 업체가 목표와 방향까지 기획해야 하는 셈이다.

해양수산부의 ‘2020 해양수산정책 홍보 대행 용역’ 역시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2020년 해양수산정책 홍보 핵심메시지를 설정하고 각 정책에 핵심메시지를 반영할 수 있는 실행메시지를 발굴
-핵심메시지를 반영한 연간 및 월간 실행계획을 마련하여 체계적이고 일관적인 정책홍보 메시지 전달

‘실행 메시지를 발굴’, ‘체계적이고 일관적인 정책홍보 메시지 전달’ 등으로 상당히 막연하다. 해양수산정책의 특징이나 지난 홍보 활동의 스토리, 내부에서 파악한 문제점 등에 대한 언급 없이 외부 업체가 ‘알아서 제안하라’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제안서를 준비하는 회사는 바깥에서 부처 관련 정책 전반에 걸쳐 현황을 분석하고 내부에서 중시하는 사항이나 과거 홍보 목표를 막연히 유추해 제안서에 담게 된다. 10년 이상 공공기관 협업 경험이 있는 한 PR회사 대표는 “기획의도가 불분명하니 이에 맞는 홍보 전략을 짜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또 다른 회사 대표는 “(민간 기업도 RFP가 중요하지만) 특히 공공PR에 있어선 RFP 목적과 방향성이 명확해야 몇백, 몇천만의 공중에게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며 “단순 업무 지시가 아닌 정책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개선할 수 있는 페이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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