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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복음전파 “스포일러와 함께 살자”
넷플릭스의 복음전파 “스포일러와 함께 살자”
  • 임준수 micropr@gmail.com
  • 승인 2016.01.11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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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의 캠페인 디코딩] 모바일로 진화한 시청습관…변화한 마케팅 포인트

※ 이 칼럼은 2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① ‘코드커팅’ 시대, 넷플릭스의 안방사수 전략
②넷플릭스의 복음전파 “스포일러와 함께살자”


[더피알=임준수] 세계 최대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가 지난 7일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모바일 시대를 맞아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공업자들의 견제, 후발주자들의 공격 등 대내외 여러 위협요인에 직면, 1위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야심차게 글로벌 확장을 밀어붙이고 있다. (관련기사: ‘코드커팅’ 시대, 넷플릭스의 안방사수 전략)

2015년 9월 넷플릭스는 평판관리와 브랜드 인게이지먼트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다국적광고·PR회사 퍼블리시스그룹 소속의 MSL그룹(MSL GROUP)을 고용한다.

MSL그룹은 넷플릭스의 미디어 임프레션을 높이는 한편, 소셜미디어상에서 대화를 이끌어내고 넷플릭스 편성이 미래의 TV가 진화하는 모습임을 홍보한다는 목표 아래 ‘스포일러와 함께 살자(Living with Spoilers)’라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캠페인 테마의 핵심 아이디어는 ‘TV가 진화하면서 소비자의 행위도 진화하고 있다’이다.

▲ 넷플릭스는 ‘스포일러와 함께 살자’는 캠페인을 전개하며 진화라는 콘셉트를 이용했다. 사진: 관련 홍보영상 화면

현대의 모든 캠페인은 리서치와 함께 시작하는데 리서치는 늘 용역조사에 기반 한다. 그리고 용역조사는 사전에 이미 짜인 캠페인의 테마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의 일환이기에 과학적 타당성이나 사회적 중요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넷플릭스의 이번 캠페인 역시 미 공화당 지지세력과 기업들을 주 고객으로 하고 있는 해리슨인터액티브스에 준 용역조사에 기반하고 있다. 넷플릭스 측의 보도자료에선 해당 용역조사 결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에는(스포일러를 볼 때) 시청자들이 무척 화를 냈을지 모릅니다. 이제 그들은 스포일러에 관한한 더 실용적이 됐고, 이게 바로 오늘날 티저광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TV쇼를 각기 다른 시간대에 시청하면서 이제 미국인의 약 76%는 스포일러가 생활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약 94%)이 스포일러를 듣는다고 해서 TV시리즈 시청을 중단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약 13%는 스포일러로 인해 원래 시청하지 않았거나 볼 계획이 없던 TV쇼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조사결과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포일러를 들으면 화가 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스포일러를 혐오하고 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단지 13%의 사람들이 스포일러 때문에 TV쇼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자체만 가지고 대단한 트렌드의 발견인양 떠들어대는 셈이다.

원래 스포일러라는 말은 스포츠 경기나 정치에서 이기고 있는 주자의 승리를 망치는 훼방꾼이란 의미다. 2000년 미 대선에서 랄프 네이더 같은 존재가 대표적 스포일러로 불린다. 오늘날 스포일러는 극의 줄거리를 미리 얘기해 김새게 만들어버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더 자주 쓰인다.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스포일러 경고(spoiler alert)’ 메시지를 본 적이 있고, 자신들 역시 사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첫 번째 스포일러 경고는 1982년 한 유즈넷뉴스그룹에서 스타트렉의 후속편인 <칸의 분노>를 알리는 포스트에서 맨 먼저 사용됐다고 한다.

스포일러 경고→스포일러 독려

▲ 넷플릭스는 캠페인 웹사이트(spoilers.netflix.com)를 개설해 퀴즈로 스포일러 확산을 꾀하고 있다.

물론 소셜로 진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스포일러를 피하기는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굳이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복면가수> 같은 예능프로그램만 해도 그렇다. 본방사수하지 않고 이후 디지털로 보는 사람들은 트위터 타임라인에 뜬 ‘기타맨이 엑소의 첸이라니’라는 멘션을 보면서 이미 재미가 반감돼버린다.

그래서 넷플릭스의 PR업무를 맡은 MSL그룹의 주장에는 일정 부분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튜브에 게재한 홍보동영상을 보면 이번 캠페인을 설명하기 위해 ‘진화’라는 콘셉트를 자주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동영상의 한 장면은 시청행위의 진화를 표현하기 위해 진화론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인류의 진화 애니메이션을 패러디하기까지 했다.

이런 진화론적 입장에 공신력을 입히기 위해 MSL그룹은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그랜트 맥크라켄(문화인류학 박사)에게 진화된 시청행위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스포일러 유형을 만들어내고,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을 낚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캠페인 웹사이트(spoilers.netflix.com)의 대문에는 “당신은 어떤 유형의 스포일러인가?”라는 재미를 노린 퀴즈가 기다리고 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쇼나 영화를 스포일해 본 경험이 있나요?”라는 첫 번째 질문에 “안해봤다(Nope)”고 답하면 “에이 왜 그러시나, 우리 모두 해본 경험 있잖아(Come on, we’ve all done it)”라며 마치 나의 흑역사를 알고 있는 오랜 친구처럼 군다.

그래도 “안해봤어”라고 잡아떼면 다음 화면에선 “아마 너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스포일을 했을지도 몰라”라며 또 장난을 건다. 그마저 해본 적 없다고 해도 여전히 스포일러 중 한 유형으로 분류된다. 이른바 ‘은근히 망쳐놓는 스포일러’다.

다른 유형으로는 ‘창피를 모르는 스포일러’ ‘충동형 스포일러’ 등이 있다. 어쩌면 당신은 가장 파괴적인 ‘파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어떻게 가더라도 모두 스포일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쯤 되면 스포일 권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도가 역력히 보인다. 그것이 바로 넷플릭스가 바라는 문화다. 실제 홍보동영상 마지막을 보면 “이제 (사마리아 땅 끝까지) 가서 당신을 스포일시켜라”고 ‘스포일러 복음전파’의 사명을 부여한다.

또한 넷플릭스는 한꺼번에 몰아서 시청(이른바 빈지워칭, binge watching)한다고 죄의식을 갖지 말라고도 조언한다. 그랜트 맥크라켄 박사에게 준 용역조사를 인용해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빈지워칭을 하고 있으며, 다수가 몰아보기 행위를 나쁘게 여기지 않는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누가 물어보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넷플릭스가 진짜 말하려는 것

넷플릭스가 스포일러가 되라고 부추기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의 헤드라인을 잡는 기본 목표 외에도 넷플릭스는 이제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리드 해스팅 CEO의 최근 인터뷰는 오직 한 가지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TV시청 행위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누구도 본방사수에 목매려하지 않고 있으며, 시간날 때 몰아서 보기를 즐긴다. 그마저도 거실에 앉아서 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보는 행위로 바뀌고 있다.

▲ 넷플릭스는 '스포일러하자'라는 메시지를 통해 차별화된 문화를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사진: 영화 <내부자들> 스틸컷.

이런 변화 흐름 가운데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시청자들의 행위를 바꿔놓는 것은 바로 넷플릭스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자들의 마음 가장 높은 곳(top of mind)에 심어두려는 것이다. 즉, 넷플릭스식 TV시청이 미래의 일상화된 행위임을 강조, 스트리밍 텔레비전의 미래를 선도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심으려는 속내다.

이와 관련해 보캐블러리닷컴(Vocabulary.com)의 에디터인 벤 짐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칼럼에서 스포일러와 함께살기 캠페인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넷플릭스 덕택에 우리의 시청습관들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의 관심과 주의를 끌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매우 도발적인 움직임이다.”

2015년 9월에 전개된 이 캠페인은 애초 목표와는 달리 소셜미디어상에서 화제를 일으키지는 못한 듯싶다. 캠페인 동영상의 유튜브 조회수는 지난해 12월 20일 기준 83만2114에 머물러 있다. 다소 유치하게 보이는 ‘스포일러 유형 퀴즈’ 역시 페이스북에 공유되지 않고 있다.

소셜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시장 선두주자의 캠페인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는 배울 수 있다. 차별화된 문화를 공유하는 브랜드 커뮤니티 강화다.

차별화의 시작은 현재 다수가 가진 생각은 틀렸다는 선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틀렸다가 아니라 현재의 지배적 생각이 과거의 생각일 뿐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모두가 동의했던 문화가 이제는 바뀌었다고 전하는 과정에서 바뀐 생각과 트렌드를 반영하는 게 바로 우리 브랜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브랜드 차별화의 시작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앞서 언급한 AT&T의 최근 광고캠페인 테마인 ‘혁명은 모바일로 전해질 것이다’이다. 이는 응팔과 응사 시대의 지배적 생각이었던 ‘혁명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될 것이다(Revolution will be televised)’가 틀렸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 사건에는 당대의 명앵커나 기자가 있었지만, 새천년 시대의 대표적 혁명인 아랍의 봄(Arab Spring) 때는 수많은 시민들이 직접 올린 경험과 사진, 동영상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를 통해 전해졌다.

스포일러와 함께 살자 캠페인도 마찬가지다. TV가 진화하면서 시청자들의 행동도 진화하고 있고, 그 진화된 시청행위에서 과거에는 당연시되던 ‘스포일러 금지’라는 사회적 규범은 이제 퇴출될 때라고 넷플릭스는 선동하고 있다. 믿는 자들이여, 넷플릭스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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