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케이블에 송출할 거면 돈 내라?
지상파 케이블에 송출할 거면 돈 내라?
  • 이정환 기자 (top@leejeongwhan.com)
  • 승인 2010.10.1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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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송신 논쟁 둘러싼 복잡미묘한 콘텐츠 역학관계

지상파 방송은 공짜인가? KBS의 경우 달마다 2500원씩 수신료를 내고 있긴 하지만 MBC와 SBS 등은 공짜로 본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이 이들 지상파 방송을 유선방송 사업자(SO)들의 유선 네트워크를 거쳐 본다는 데 있다. 아직도 지붕 위에 안테나를 세워 보는 사람이 있나? 대부분 가정에서 지상파를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라도 월 3000원에서 많게는 1만원 정도를 내고 유선방송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지상파 방송사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만든 방송을 전송하는 대가로 유선방송 사업자들이 돈을 번다.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지상파 방송은 공짜인가? 그래서 소송까지 갔다. 우리 방송을 너희 유선방송에 내보내고 싶으면 우리에게 돈을 내라. 언뜻 어처구니 없는 논리같지만 법원은 지상파 방송사들 손을 들어줬다. “유선방송 사업자들이 지상파 방송 사업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1부는 지난 9월 8일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 3사가 티브로드강서방송과 CJ헬로비전, C&M, HCN서초방송, CMB한강방송 등 SO들을 상대로 낸 저작권 등 침해정지 및 예방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방송 3사가 소장을 제출한 지난해 12월 18일 이후 케이블TV에 가입한 수신자에게 원고가 송신한 방송을 동시 재송신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핵심은 SO들이 지상파 방송을 실시간으로 재전송하고 싶으면 지상파 방송사들에게 돈을 내라는 것이다. SO들은 아예 지상파 방송을 끊어버리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언뜻 유선방송 가입자들을 볼모로 한 협박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이 얼마를 요구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일단 튕기고 보는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없으면 너희들도 곤란하게 될 것이라며 배짱을 부리는 상황이기도 하다.

“지상파에 돈내라”에 “적반하장” 팽팽

SO 입장에서는 약간 억울한 측면도 있다. 말이 지상파지 안테나로 TV를 보는 집은 거의 없다. 심지어 서울 도심에서도 지상파가 잘 안 잡히는 곳이 많다. SBS의 경우 수도권 난시청 비율이 16.6%에 이른다. 우리 덕분에 이렇게 선명한 화면을 볼 수 있게 됐는데 이건 적반하장 아닌가. 당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난시청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주지 않았나. 그런데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돈을 내라고?

지상파 방송사들은 쉽게 물러날 분위기가 아니다. 업계에서는 일단 SO들이 거세게 저항하겠지만 지상파 재송신을 전면 중단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체 채널 가운데 지상파 채널의 시청 점유율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58.9%나 된다. 지상파 때문에 유선방송에 가입하는 경우도 많다.

지상파 재송신을 전면 중단할 경우 가입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적당한 수준에서 SO들이 지상파 방송사들에게 전송료를 지급하기로 합의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국적으로 유선방송 가입자는 1520만 가구에 이른다. 채널마다 월 100원씩만 받는다고 해도 3개 방송사에 연간 547억원의 시장이 새로 열리는 셈이다. 중요한 건 전송료를 얼마를 요구할 것이냐인데 이를 두고 지상파 방송사들과 SO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디지털 유선방송의 지상파 전송료로 채널마다 월 320원씩 960원을 요구하고 있다. 유선방송의 수신료는 월 1만원 정도인데 매출의 10% 가까이를 지상파 방송사들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기준으로 SO들이 거둬들인 수신료는 1조1500억원 규모다. 향후 아날로그 유선방송이 모두 디지털로 전환된다고 가정하면 이 가운데 연간 1700억원을 지상파 방송사에 지급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유선방송 채널 사업자, 이른바 PP들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정된 파이를 지상파 방송사들과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SO들이 PP에 배분한 수신료는 지난해 기준으로 2990억원에 이른다. 215개 크고 작은 PP들이 수신료의 15%를 나눠 갖는 시스템인데 3개 지상파 방송사가 10%를 가져가겠다고 나섰으니 반응이 좋을 수가 없다. 수신료를 인상하지 않는 이상 SO나 PP나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SO들은 보편적 시청권을 반대 논리로 들고 있다. 국민들 누구나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중요한 방송을 시청할 권리가 있는데 지상파 방송만으로는 보편적 시청권 확보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유선방송 사업자들은 난시청 해소와 보편적 시청권에 기여하는 수신보조 행위를 인정받으면 전송료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수신보조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공익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동통신 회사들은 정부에 천문학적 규모의 주파수 대역 사용료를 내는데 지상파 방송사들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공익적 책임을 인정하기 때문인데 이처럼 엄청난 혜택을 보고 있으면서 SO들에게 전송료까지 요구하고 결국 국민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013년 디지털 전환이 변수?

한편으로는 IPTV와 스카이라이프 등 다른 유료 방송 서비스들이 반사이익을 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IPTV로도 실시간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통신회사들의 마케팅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수신료 차이도 얼마 나지 않으면서 주문형 비디오 등 차별화된 서비스가 많기 때문이다. 유료 방송이 확대되면서 경영 상황이 열악한 군소 유선방송 사업자들의 인수합병이 늘어날 거라는 전망도 있다. 2013년으로 다가온 디지털 전환도 변수가 될 수 있다.

2013년이면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된다. 지상파 방송사들 뿐만 아니라 SO들도 디지털 전환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당장 천문학적인 규모의 디지털 전환 비용이 관건인데 지상파 전송료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건 소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디지털 전환이 완료될 때까지만이라도 전송료 논쟁을 연기하자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월 2500원씩 수신료를 받고 있는 KBS의 경우 이중 수신료 논란도 있다. SO들에게 전송료를 받게 되면 결과적으로 KBS는 수신료를 두 번 받는 셈이 된다. KBS는 수신료를 6000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가뜩이나 여론의 반발이 심한데 유선방송 수신료가 먼저 오르게 되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수신료 인상 이후 KBS 2TV 광고를 넘겨 받으려는 신규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들의 계획도 벽에 부딪히게 된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많았다. 미국에서도 최근 지상파 방송사들이 유선방송 사업자에게 수신료의 일부를 배분해 줄 것을 요구한 적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재전송에 동의하는 수신료의 0.2~0.6% 수준을 전송료로 책정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유선방송 사업자들이 지상파 방송을 의무 재송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상파의 동의를 얻어야 재송신을 할 수 있고 난시청 지역에서는 의무 재송신이 원칙이다.
 
결국 어떻게든 우리나라에서도 재송신 관련 논쟁을 매듭짓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 지상파에게 유리한 방식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시점 역시 디지털 전환 이후가 될 수도 있고 종편 출범 이후가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공짜 콘텐츠는 없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고 어떻게든 수신료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파이를 키우는 것과 동시에 누가 더 큰 조각을 집어드느냐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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