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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를 움직이는 단어, ‘가성비’의 실체[가성비를 말하다] ①불황 때문이라고? 천만에!

사치의 시대가 가고 가치의 시대가 열렸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주머니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가성비를 꼼꼼히 따지는 것은 익숙한 트렌드가 됐다. 생필품 하나를 사더라도 검색은 필수다. 싸다고 무조건 지갑을 열지도 않는다. 관건은 ‘적절한 가격과 품질의 교집합’을 공략하는 것이다.

① 소비자를 움직이는 단어, ‘가성비’의 비밀
② 불황 속 대박 상품들의 공통점 
③ 가성비 시대 마케팅 방향성은
④ 전문가 인터뷰 -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더피알=문용필 기자] 사람들이 흔히 쓰는 표현 중에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가격이 낮으면 그만큼 제품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좀 비싸더라도 좋은 제품을 사야한다’는 은근한 과소비 지향 심리가 숨어있다.

2016년 한국사회에서는 이 말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임금님 수랏상에 올라갈 법한 고급 병과는 아니더라도 잘만 고르면 좋은 떡을 사먹을 수 있다. ‘가격 대비 성능’ 즉, 가성비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저가격’과 ‘고품질’이 양립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존재했다면, 이제는 가격뿐만 아니라 품질까지 꼼꼼히 따지는 대중들의 소비패턴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

기업들도 가성비를 앞세운 제품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마트나 편의점의 ‘1+1 상품’처럼 양으로 승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특정 소비자 계층의 취향을 저격하는 맞춤형 가성비 제품도 잇따른다.

휘황찬란한 스펙을 뽐냈던 프리미엄 모델 일색에서 벗어나 중저가 모델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화된 기능과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중저가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고 있다.

본능적으로 절약하는 소비자

가성비 키워드가 소비 트렌드로 떠오른 가장 큰 이유는 장기 불황 때문이다. 가벼움이 일상화된 소비자들의 지갑은 더 이상 쉽게 열리지 않는다. 여윳돈이 조금 있다고 해서 소비심리까지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절약’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소비자심리지수는 98이었다. 100을 넘으면 낙관적, 그보다 작으면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의미다. 더욱 큰 문제는 최근 1년간 100을 조금 넘는 수준에서 등락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6개월 전과 현 시점의 생활형편을 비교한 현재생활형편지수는 100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부정적으로 응답한 가구수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은 가구수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지표다.

이같은 상황에서 가성비 높은 제품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불황과 저성장이 고착화되다보니 예전에 비해 가성비를 찾는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유승엽 남서울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도 “장기 불황에서는 가처분 소득수준이 줄어들기 때문에 합리적인 소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 등이 지난해 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16>은 올해의 키워드로 가장 먼저 ‘플랜Z’를 제시했다. 최선책을 뜻하는 ‘플랜A’와는 달리 ‘플랜Z’는 최후의 보루를 의미한다.

책은 “원하는 만큼 소비할 수 없는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소비개념을 도입하기에 이른다”며 “소비와 만족의 비례공식을 깨고 ‘돈은 적게 쓰지만 만족은 크게 얻으려는 것’이 달라진 소비개념”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가성비의 개념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위축된 경제상황은 비교적 넉넉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게도 심리적 불안감으로 다가선다.

여준상 교수는 “최근 언론을 통해 불황이나 저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거론되다 보니 객관적으로 보면 상류층에 해당되는 사람들도 뭔가 궁핍하고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며 “평소 가성비에 대해 생각이 없던 이들도 왠지 따라가야 할 것 같은 현상들이 나타나다보니 가성비가 더 이슈화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가성비 열풍에는 심리적인 동조화 현상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경기가 호황세로 돌아서게 되면 가성비 붐은 한풀 꺾이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사회는 집단적인 특성이 존재하고 대부분은 이를 피해가기 어렵다. (가성비가 유행이라고 해도) 불황이 그런 소비 성향을 충동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호황으로 바뀌면 이전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팬심의 변심엔 다른 이유가

하지만 가성비 열풍의 근거를 불황이라는 사회현상으로만 치환하기는 어렵다. 과거에도 가격과 품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소비자들은 존재했기 때문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가성비를 따지듯 괜찮은 물건을 싸게 사려는 맥락은 늘 있어왔던 것이고 불황 때마다 가시화됐던 것”이라며 “이를 요즘 들어 가성비라는 단어로 함축해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재휘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도 “가성비는 옛날부터 존재한 개념”이라며 “이전에는 가격 대비 얻는 것의 비율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물을 판단했다면, 이제는 그 비율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합리적인 인간세상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 불황에도 돈을 아껴 명품을 구입하려는 심리는 여전하다. 사진은 지난달 롯데백화점에서 열린 ‘해외명품대전’. 뉴시스

가성비 열풍에 힘을 실어주는 또 다른 배경은 무엇일까. 답은 ‘정보사회’다. SNS 등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플랫폼이 크게 늘어났고, 가격 비교 사이트나 구매자가 남긴 댓글후기 등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정보량이 증가했다. 심지어 소비자 개개인의 취향과 구매 패턴, 가격까지 맞춰주는 큐레이션 쇼핑도 자리 잡는 추세다. 예전처럼 일일이 발품을 팔 필요가 없어졌다.

송재룡 교수는 “(예전에는)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찾으려면 정보획득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에너지 소비가 심해 소비자는 회피하게 된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가성비를 쉽게 체크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고 편리해졌다”고 전했다.

물론 정보량이 많아졌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사람들을 헛갈리게 만드는 허위정보도 널렸다. 게다가 온갖 종류의 바이럴 광고가 횡행하는 온라인 세상에서 제대로 된 가성비 제품 정보를 찾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유승엽 교수는 “소비자들의 교육수준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게 됐다”며 “불황기를 겪으면서 생겨난 합리적 소비의 바탕에는 스마트한 소비자가 있다. 그래서 가성비가 중요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비자는 가성비를 위해서라면 특정 브랜드에 대한 ‘팬심’을 과감하게 벗어던질 준비가 돼있다. 브랜드가 가성비를 담보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간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과 브랜드 파워만을 맹신해왔던 일부 기업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요소다.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승엽 교수는 “가성비가 중요한 제품 중 상당수는 IT분야이다. 하지만 젊고 스마트한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음에도 눈에 띄는 혁신이 더 이상 안나온다는 것이 문제다. 이러다보니 브랜드보다는 가성비가 (소비의) 변수가 됐다.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분위기, 스마트해진 소비자, 혁신의 정체 등이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가성비를 논하면서 함께 살펴봐야 하는 또 다른 개념은 이른바 ‘가치소비’다. 가성비가 좋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가격에 비해 품질이 좋다는 뜻이다. 합리적인 선택은 될 수 있어도 최고의 품질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반면 ‘가치소비’는 ‘쓸 때는 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꼭 필요하거나 정말 갖고 싶은 제품에는 과감하게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호황기 때 나타나는 소비현상이 아니냐고? 천만에. 불황에도 가치소비는 엄연히 존재한다.

가성비의 또 다른 이면, ‘가치소비’

   
▲ 가성비 열풍의 주역인 샤오미의 제품들(위)과 루나폰. 사진:이마트, SK텔레콤

얼핏 보면 가치소비와 가성비는 상반되는 개념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들은 밀접하게 연결돼있다. 김재휘 교수는 “일본에서 1980년대에 나온 개념 중 ‘1점 호화주의’라는 것이 있다. 10개를 중간 이상의 제품으로 쓰기보다는 9개는 다소 질이 낮더라도 하나는 호화롭게 쓰겠다는 것”이라며 “나름대로 현실을 반영한 ‘작은 사치’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다시말해 9개의 저가제품으로 절약한 예산을 최상급 제품에 투자한다는 얘기다. ‘가치소비’를 과소비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준상 교수는 이를 “불황이 고착화되면서 동전의 양면처럼 상충되는 소비심리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봤다.

가성비가 최상품은 아니라는 것은 구매 이후까지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담보해주지 못한다는 의미도 된다. 트렌드에 휩쓸려 얼떨결에 가성비 제품을 구입하게 된 소비자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여준상 교수는 “가성비가 좋아 구매를 했지만 주변에서 더좋은 제품이 보이면 변심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며 “제품 자체만 보면 최상품이라는 매력을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나중에는 작은 사치를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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