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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에게 배우는 ‘사유의 한 수’[20's 스토리] 논객닷컴 청년칼럼 공모전 장려상
승인 2016.09.06  16:06:28
심규진  | zilso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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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은 라면을 먹으면서, 상실된 삶의 두께를 괴로워했다” _김훈 <라면을 끓이며> 중

지금은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김현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가 김훈이 표현한 것이다. 이 한줄을 읽으면서 라면은 굉장히 철학적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면발과 국물이 전부인 흔해빠진 음식이지만 한 사람에게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상실된 삶. 그리고 두께를 들여다 봄. 마지막으로 가슴 치는 한탄. 라면은 인스턴트식품이라 재빨리 먹어치움을 당할 법도 하지만 오히려 깊은 사유의 장(場)을 열어준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에게 그가 허락하는 신속한 사유 절차는 다음과 같다.

   
▲ 인스턴트 식품 라면은 오히려 깊은 사유의 장을 열어준다. 뉴시스

첫째, 라면을 보다.

대부분의 가정집에는 라면이 1개 이상 숨쉬고 있다. 굳이 슈퍼에 가지 않더라도 언제나 구비되어 있는 라면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는 라면을 전투식량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밤11시. 출출한 배를 움켜잡고 지금 라면을 먹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심각한 첫 번째 ‘사유’에 빠진다. 라면을 먹으면 단숨에 누리게 되는 행복감을 상상하는 한편 일순간 참지 못해서 비대해져 버리는 몸과 내일 아침 얻어맞은 것처럼 불어버리는 얼굴을 고뇌하니 응당 결정내리지 못한다.

이렇게 사유가 시작된다. 평소에 쳇 바퀴 돌아가듯 살았던 우리의 머릿속이 운동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요즘은 더욱이 스마트폰 덕분에 머리의 역할이 훨씬 줄어들었던 찰나에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하지만 이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이미 라면을 끓여먹고 치우고 쉬고 있었을텐데 라는 죄책감에 빠지니 유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 라면을 벗기다.

먹기로 결심했다면 라면의 옷을 양손을 이용해 벗겨내고 냄비에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한다. 이때 두 번째 ‘사유’가 시작된다. 냄비에 스프를 먼저 넣을까 면을 먼저 넣을까하는 고민이 그것이다.

과학적으로 따져봤을 때 스프를 먼저 넣어야 끓는점 오름 현상으로 면이 빨리 익고, 스프가 면에 잘 베인다고 하지만 일각에선 그렇게 해보니 맛이 없단다. 결론은 정답이 없는 것이다. 정답이 없기에 고민하게 되고 결국 스프와 면을 함께 넣어버린다.

이때 추가적으로 달걀을 풀어헤쳐야할지 냉장고 구석구석을 뒤져서라도 파를 썰어 넣을지가 고민이다. 결국 귀찮아서 그냥 먹거나 달걀만 탁! 잠수시키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리고 이제 기다린다. 자리를 떠서 TV를 보거나 책을 뒤적거리기에는 라면이 익는 시간이 짧으므로 냄비 속 희생양이 되어버린 라면을 내려다보며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이것이 세 번째 ‘사유’이다. 좋은 일은 웃음 짓고 나쁜 일은 라면과 함께 끓여 증발시킨다면 제 맛이겠건만, 괜스레 쓴웃음만 지어진다.

셋째, 라면을 누리다.

이제 파티타임이다. 누구보다 행복하며 열 부자 부럽지 않은 기세등등의 상태이다. 이 시간을 단순히 먹다(eat)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온 우주 만물이 고요해지며 나의 젓가락질 솜씨에 밀려오는 라면의 행복한 비명(悲鳴)만 존재하는 시간을 그저 누린다.

한 젓가락 두 젓가락에 이어 국물 콤보(combo)까지, 행복은 단 한순간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나의 하루가 언제 그렇게 고단했냐며 귓가에 메아리치는 소리를 BGM(Back Ground Music) 삼고, 흐뭇한 미소로 면발을 가슴에 묻는다. 점차 줄어드는 면과 국물을 바라보며, 곧 막이 내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다가오는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넷째, 라면을 보존하다.

누리고 난 뒤의 포만감을 간직한 채 사태수습에 나선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냄비에 담아 부엌으로 향한다. 설거지통에 냄비를 사뿐히 밀어 넣고, 얼마 남지 않은 국물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 면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리곤 떠나버린 옛 사람과 헤어지는 심정으로 물을 틀어 냄비에 채운다. 마치 전통 의례처럼 남겨진 냄비와 그 속에 떠 있는 면은 그렇게 하루 이상 보존된다.

우리의 귀찮음 때문이지만 그렇게 남겨진 모습을 내일 바라볼 때 당시 누렸던 행복감을 다시 한 번 간접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볼록한 배가 나를 바로 잠들지 못하게 하기에 멍 하니 마지막 ‘사유’를 한다. 아무생각 없는 사유를 해본 적이 있는가. 한 번 해보라. 정신이 건강해진다.

세상은 청춘에게 효율을 강요한다. 한 인간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쥐어짜내듯 빠듯하게 시간관리를 해야 쟁취할 수 있고, 이러한 쟁취가 누적되면 성공한다는 사회적 공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은 우리를 성찰의 빈곤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라면 먹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밥 먹는 시간마저 인맥을 축적하고 누군가로부터 배움을 얻으라는 식의 성공논리 보다 혼자 라면을 먹으며 사유를 넘어 멍 때리는 것이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사유의 신(神), 라면에게 한 수 배워보자.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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