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규칙들이 깨지고 있다
기존 규칙들이 깨지고 있다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7.01.3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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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시대를 바라보는 다섯 가지 키워드

정석으로 여겨지던 규칙이나 마케팅, 숫자가 통하지 않고 있다. 이변이 속출하고 여론조사 결과는 쉽게 뒤집힌다. 소비자는 마케터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고 심지어 기업을 갖고 논다. 미묘한 기류 변화를 짚고 공통점을 뽑아내 불확실성이 커진 오늘을 분석했다.

①기존 규칙이 깨지고 있다
②1인 100색 시대 브랜드가 가는 길

[더피알=박형재 기자] 세계 전반에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기존 패러다임을 뒤집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사람들의 달라진 행동은 전문가와 기득권층을 당황하게 만든다. “예측 불가능한 행동들이 보통인 시대가 됐다. 이제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해야 한다”는 영국 BBC의 표현은 현재 상황이 얼마나 예상 밖인지 잘 보여준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영국 국민들이 예상을 깨고 유럽연합(EU) 탈퇴라는 초강수를 두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11월에는 미국 대선에서 인종·성 차별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던 트럼프가 당선됐다. 특유의 ‘냄비근성’ 때문에 반짝 이슈로 그칠 거라던 촛불집회는 횃불이 돼 대통령을 직무정지 상태로 만들었다.

▲ 세계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지며 이제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해야 한다.

사회·경제적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각종 설문이나 여론조사는 속속 뒤집히며 체면을 구기고, 소비자는 마케터의 예상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정보를 쥔 소비자’들이 늘면서 꼼수는 통하지 않게 됐고, 오히려 기업이 숨기고 싶던 민낯에 주목하며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언론이 일방적으로 주도했던 것에서 인터넷, 모바일, SNS를 통해 쌍방향으로 간다. 소통 방식이 진화하면서 즉각적인 상호작용(interaction)이 강화됐다.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바뀌고 여론이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생물’이 되면서 예상 못한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일방향 → 쌍방향 → 실시간

기존 규칙이 깨진 첫 번째 이유는 정보 주권이 재편됐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정보 생산·유통 주체는 정부와 기업 등이었지만, 이제는 시민이나 소비자로 무게중심이 옮겨왔다. 예컨대 옛날에는 식품에 이물질이 나오면 제품 몇 박스 주고 해결했지만 지금은 즉각 스마트폰으로 찍어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기 때문에 언감생심이다. 

▲ 정보주권이 일반 대중, 소비자로 넘어오면서 정보통제력은 무력화됐다.

이같은 정보주권의 재편은 정보통제력을 무력화시켰다.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의 경우 10년 전이라면 ‘광고 주고 기사 막는’ 게 가능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불가능하다. 당시 조현아 전 부사장의 폭언이 처음 외부에 알려진 건 익명 앱을 통해서였다.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는 “정부나 기업이 갖고 있던 정보 주도권이 수용자로 넘어가면서 기존에 관리하고 컨트롤하던 정보의 통제력이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쉬쉬하다 탈탈 털린다

브랜드들의 도덕성도 자주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조직 내부자가 언제든 정보 생산자로 변신하고 논란이 있으면 라이브로 중계하는 디지털 사회에서 영원한 비밀은 없다. 누구나 정보를 검색하고 속사정을 알게 되면서 꼼수도 불가능해졌다. 여론재판에 휘말리면 공들여 가꾼 브랜드가 한방에 훅 가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얼마 전 SPC그룹은 ‘계란 대란’을 우려해 본사 직원들에게 출근 때 계란 1판씩을 구매해 제출하라고 지시한 것이 알려져 ‘사재기 논란’에 휩싸였다. 이랜드그룹은 지난 1년간 외식사업 프랜차이즈에서 아르바이트생 임금 83억여원을 체불한 것이 적발돼 구설에 올랐다. 특히 2007년 대량해고 사태와 2015년 303억원 기부 소식이 같이 언급되며 “임금 떼어먹어 기부금 마련했다”는 조롱거리가 됐다.

불황과 불신, 불확실한 오늘

규칙파괴 시대를 읽는 두 번째 키워드는 ‘경기침체와 불확실성’이다. 우선 경제 사정이 예전에 비해 크게 악화됐다. 2016년 9월 기준 실업률(3.6%)은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청년실업률 또한 9.4%로 역대 최고기록을 갱신했다. 한국은행 2017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8%까지 떨어졌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불황이 계속되니 불안감을 반영한 소비 행태가 생겨난다. 오늘만 살 것처럼 즐기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가 뜨고,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는 가성비 소비가 유행한다. 최소한의 물건만 소유하는 미니멀라이프 역시 일본 ‘사토리족(달관족, 허무주의)’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황의 단면이다. ▷관련기사: 2017년 관통할 소비 트렌드

▲ 불황이 지속되면서 불안감을 반영한 소비 행태가 생겨난다.

‘불신사회와 기득권에 대한 반감’도 기존 규칙을 깨는 동력 중 하나다. 기득권 불신은 사회 곳곳에서 묻어난다. 수백명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뒤늦게 수면 위로 떠오른 가습기 살균제 사건,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 아직 진행형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은 정부의 무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문제해결능력을 믿지 못하게 된 시민들은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일상화됐다.

각자도생은 위기 때마다 튀어나오는 단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시기에 각자도생이란 말이 언급됐다. 1594년 선조실록에는 “백성들이 장차 살육의 환난에 걸릴 것이니, 미리 알려주어 각자 살길을 도모할 것을 몰래 전파하라”는 기록이 있다.

각자도생과 관련 눈길 끄는 키워드는 연대다. 2017 트렌드를 전망한 책들에서는 공통적으로 각자도생과 연대가 비슷한 빈도로 나타났다.

▲ 각자도생 분위기 속 연대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각자도생으로 표출되고 연대로 이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국가적 위기 상황인데 마땅한 리더가 없으니 각자도생이 나타난다”면서 “그러나 각자론 현실을 바꿀 수 없으니 연대를 통해 사회 전반의 불합리함을 뒤집으려는 것”이라고 봤다. 

100인 1색(色) 시대에서 100인 100색으로, 지금은 1인 100색 시대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예전에 비해 다양성이 급격히 확대됐고 이를 캐치할 도구가 개발되지 않아 여론조사 등이 자꾸 틀리고 당황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변화 속도는 빠른데 과거의 무기를 쓰고 있으니 현실과 맞지 않는다.

예컨대 TV시청률의 경우 한계가 분명하다. TV로 본방사수하지 않고 스마트폰, 온라인 스트리밍 등으로 시청패턴이 바뀌었다. 지상파에 한정됐던 방송은 케이블과 종편으로 다양해졌다. 거실 TV수상기에서 실시간으로 본 시청량만 집계하는 지금의 조사는 반쪽짜리가 된 셈. 불완전한 집계지만 ‘통합시청률’이 나오지 않았으니 할 수 없이 사용하는 실정이다. ▷관련기사: 케이블은 어떻게 지상파를 추월했나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발달하면서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던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이제야 기업의 주파수에 잡힌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사람들의 생각은 다 다른데 각종 캠페인에 대한 반응이 항상 긍정적으로 집계된 것 자체가 모순이란 것이다. 주류 언론이나 전문가가 이끌었던 여론이 이제는 여러 채널을 통해 형성되면서 소수의견도 수면 위로 떠오른다.

1인 100색,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규칙파괴의 다섯 번째 키워드는 ‘소비자의 변덕’이다. 기존 경제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소비자들의 감정적 행동이 점점 더 많아지는 흐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쪽에선 신조어로 ‘팩트폭력’이 뜨고, 다른 한쪽에선 ‘포퓰리즘’이 관심을 모은다. 환경오염 관련 설문조사에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답하면서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겠느냐는 질문엔 “아니오”라는 응답이 높게 나타난다.

▲ 포드자동차의 소셜미디어 진실도 조사.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하는 소비자들은 기업의 혼선을 가중시킨다.

소셜미디어에서 거짓을 말하는 경우가 선진국으로 갈수록 높아지기도 한다. 이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중잣대로 해석 가능하다. 상대를 공격할 때는 팩트폭력으로 제압하고 반대로 자신을 방어할 때는 포퓰리즘적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기업은 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2016년을 대표하는 단어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탈진실)’를 선정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옥스퍼드는 “소셜미디어가 뉴스 소스로 부상하고 기득권이 말하는 팩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기 때문에 시대를 정의하는 단어로 골랐다”고 했다. 팩트 불신이 높아지면서 객관적인 사실보다 감정에 대한 호소, 또는 개인의 주관적 신념이 여론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탈진실’ 다음은 무엇일까

영국의 브렉시트나 미국의 트럼프 백악관 입성은 모두 포퓰리즘이 크게 작용한 것이란 분석이다. 기득권에 대한 불만, 이민자들에게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아주겠다는 감언이설, 먹고살기 힘드니 자기 살길부터 찾는 각자도생 흐름이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와 맞물려 예상 외 선택을 한 것이다. ▷관련기사: 트럼프 취임사와 2017년 전망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가나 경기 예측이 계속 실패하는 것처럼 전통적인 경제 이론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며 “요즘은 미래가 불확실하고 삶이 어려우니 사람들의 반응에 더 큰 편차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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