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_시대의_브랜딩+1
#1인_시대의_브랜딩+1
  • 원충렬 (maynineday@naver.com)
  • 승인 2017.03.16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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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텔링1+1] 자기만족과 그럼에도 필요한 누군가

브랜드텔링 1+1이란..?
같거나 다르거나, 깊거나 넓거나, 혹은 가볍거나 무겁거나. 하나의 브랜딩 화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과 해석.

#1인_시대의_브랜딩 1에 이어

[더피알=원충렬] 저녁 퇴근 시간,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 일군의 사람들을 보니 전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어차피 일렬로 내려갈 뿐이니 물리적 이동을 위해서 그저 다리만 반복된 노동을 해주면 될 뿐이고, 각자의 시선은 그 찰나에도 자신만의 관심사를 소비하는 일에 몰두 중이다.

▲ 요즘은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에 시선을 두고 있다. ⓒ플리커

새삼 진풍경이다. 행여나 조선시대 사람이 시간의 틈을 뒤집고 들어와 이 광경을 보면 도통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엔 ‘혼자 보기’는 기껏 책이나 신문 정도였을 것이다. TV도 대가족이라면 채널 다툼 내지는 채널 서열이란 게 있기 마련이고, 극장이라는 것도 ‘장’자가 마당(場) 아닌가. 비디오방? 과거 알바 경험으로 장담컨대 그곳도 최소 2인인 경우가 절대 다수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서 영위하는 문화라는 것이 급격히 자연스러워졌다. 모바일TV는 물론이고 혼자 먹는 혼밥, 혼자 마시는 혼술, 혼자 떠나는 혼행까지 혼자라는 것의 외로움보다 그 자유로움을 만끽하려는 트렌드가 점점 활동범위를 늘려가고 있다. 모든 감각의 범주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집중되는 듯하다.

나만 좋으면 세상 좋은 것

이러한 나홀로 문화는 과거의 개인주의와는 양상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개인주의는 일종의 신념 같은 것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사회나 집단 속의 내가 아니라, 그냥 본연의 나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더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이다.

하지만 나홀로 문화는 타인의 시선을 배재한다는 적극성이 다르다. 끊임없이 의식될 수밖에 없는 타자와의 관계를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이 존재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부터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는 것까지의 ‘혼밥 레벨 테스트’ 같은 것이 그러하다.

브랜드 선택에 있어서도 이런 경향은 짙어지고 있다. 브랜드를 통해 드러내는 자아는 표출이 아니라 오히려 숨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굳이 타인에게 내가 지닌 제품의 브랜드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단지 그 브랜드를 선택한 상황 자체의 만족에 집중하는 것이다.

▲ 아디다스 ‘이지부스트 350’. 브랜드 로고가 바닥에만 새겨져 있다.

로고리스(logoless)로 대표될 수 있는 이런 경향은 사실 명품 브랜드에서 먼저 유행했다. 지금은 패션 브랜드에서 일반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브랜드에서 이러한 시도를 한다.

삼선 로고로 유명한 아디다스도 ‘이지부스트 350’의 겉면에서는 그들의 상징 이미지를 찾을 수 없다. 대신 깔창 안쪽에 조그맣게 들어가 있을 뿐이다.

또 하나의 자아라고 할 만한 자녀의 패션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배경에 두고 성공한 브랜드가 있다. 보통 성인 패션 브랜드의 키즈 라인이 흥한 이유는 부모의 소비 욕구를 자녀를 통해 대리하고픈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접근으로 고객들의 호응을 얻은 브랜드가 미국의 아동복 관련 스타트업 프라이머리(Primary)이다.

프라이머리의 옷에는 로고가 아예 없다. 고객들은 굳이 어떤 로고로 자신의 아이를 치장할 지 고민할 필요 없이 오직 컬러와 스타일 그리고 사이즈만 선택하면 된다. 각 브랜드가 유행시키는 특별한 스타일의 흐름에서 아예 한 발짝 벗어나 그저 자신의 아이에 어울리는 옷에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다.

너에게 하는 귓속말

혼자라도 괜찮아. 정말 그럴까? 전혀 외롭지 않다는 건 참말일까? 군중 속에도 고독을 느끼고 함께 있어도 네가 그리운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에 1인 시대는 역설적으로 관계 지향적일 가능성을 내포한다. 다만 그것이 작동하려면 좀 더 내밀할 필요는 있다.

사실 TV에서 나오는 모든 브랜드들이 이미 나를 위하고 있다. 나의 하루는 아름다울 것이고, 나의 아침은 언제나 활기차고, 나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희망차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인 것을. 그렇다. 진짜로 와 닿지는 않는 것이다. ‘사랑합니다 고갱님~’에 변태가 아니고서야 과연 그 누가 두근거림을 느끼겠는가.

좀 더 가슴 뛰는 관계이고 싶다면 멀리서의 큰 목소리보다 가까이 들리는 속삭임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 말고, 너에게만 하는 이야기! 이런 느낌을 만들 수 있을까?

근래에 온라인 스토어 29CM(29센티미터)는 루시(Lucy)라는 알람 서비스를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루시는 그냥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의 푸시 메시지일 수도 있다. 귀찮고 때로 강한 짜증마저 유발시키는 그 알림 말이다.

29CM는 이를 통해 오히려 고객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대범한 시도를 했다. 할인 알림이나 상품 추천을 하는 마케팅 툴이 아니라 음악을 추천하거나 위로의 글귀를 보내주는 등의 시도로 감성적인 교감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서비스에 캐릭터를 부여해 공감의 대상자를 명확하게 형상화시키는 세련된 방식을 취한다.

루시가 그냥 하나의 재미있는 서비스에 불과하지 않은 이유는 29CM가 일반적인 트렌드보다 개인의 취향에 집중하는 ‘셀렉트숍’을 표방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판매를 위하기보다 소비자와의 교감에 집중하려는 시도는 그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공명한다.

루시를 보면서는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주연의 영화 ‘허(Her)’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배우의 다른 작품에서 루시라는 이름이 또 나온다)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의 곁에서 나를 이해해주는 단 한사람으로 사만다(인공지능 이름)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서도 그건 아니었고, 현실에서도 실제로 그렇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1인 시대, 관계를 차단함으로써 새로운 자유를 만끽하는 수많은 1인들은 또한 언제 마주할지 모를 ‘나만의 누군가’라는 환상 속 그대를 찾고 있기도 하다.

과연 ‘모두가 만족할 서비스’에 그들이 열광할까? 아니다. 오직 당신만을 보고 있다는 스칼렛 요한슨의 중저음 보이스 같은 속삭임이 더 매력적이지 않겠나? 꼭 그렇게까지 그윽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원충렬

브랜드메이저, 네이버, 스톤브랜드커뮤니케이션즈 등의 회사를 거치며 10년 넘게 브랜드에 대한 고민만 계속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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