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럭셔리 브랜드 Bally
스위스 럭셔리 브랜드 Bally
  • 염지은 기자 (senajy7@the-pr.co.kr)
  • 승인 2011.03.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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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PR] 160년 전통의 격조있고 우아한 백

스위스 명품 브랜드 ‘발리(Bally)’는 160년 전통의 품격과 품질로 오직 최고만을 고집하고 있는 토털 패션 브랜드이다. 구두의 대명사 발리 구두는 35만개에 달하는 라스트(발의 모양과 구조를 고려해 만든 모형)와 120여 가지의 공정을 거쳐 탄생되는 정교함을 자랑한다. 스위스 전통의 장인정신과 고품질, 편안함과 실용성은 매 시즌 발리 컬렉션을 뒷받침하고 있는 기본적인 가치들이다. 올 봄 발리 컬렉션은 ‘내츄럴 뷰티’를 콘셉으로 전통과 현대가 결합된 트렌디한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

 

염지은 기자 senajy7@the-pr.co.kr


 

 

전통과 현대의 결합, 내추럴 뷰티…2011 S/S

발리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이클 헤르츠와 그레이엄 피들러는 1930년대와 1950년대 특유의 디자인과 소재에 대한 발리의 문서 자료들로부터 영감을 토대로 완성한 2011 S/S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남성 컬렉션은 발리의 상징적 역사인 브로그(가죽에 구멍 뚫린 장식)를 출발점으로 전통적인 남성 슈즈를 업데이트하는 데 집중했다. 브로그의 두툼한 외관은 보존하는 한편, 현대적인 공법과 수작업 착색 마감, 다양한 소재들을 조합한 엔지니어링 테크닉으로 더 가볍고 다양해졌다. 전통과 현대가 결합된 백 컬렉션은 자연스러운 색감을 돋보이게 하는 우아하고 세련된 컬렉션 제작을 위해 최고로 부드러운 가죽에 착색하고 연마하는 복잡한 구조 기법을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여성 컬렉션은 봄의 즐거움을 높고 낮은 현대적인 힐, 젊은 감각을 살린 세련된 소재의 샌들과 발레리나 슈즈 등에 담아냈다. 1930년대 활약한 독일 태생의 미국인 포토그래퍼 에르윈 블루멘펠트의 뷰티 광고 파일럿 샷에서 강렬한 영감을 받았다. 주로 남성 컬렉션과 발리의 문서 자료에서 볼 수 있었던 메탈 소재, 가죽 꼬임, 전통적인 브로그 등의 디테일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린, 선샤인 옐로우, 샤크 블루, 레드 컬러의 시크한 리비에라 캔버스와 샤크 스킨을 사용한 백은 슈즈 컬렉션과 조화를 이루며 현대적이고도 실험적인 디자인을 명확히 보여준다. 기성복에서는 가죽, 캔버스, 실크와 코튼 저지 소재로 스포츠 시크를 표현해냈다. 그린, 화이트, 브라운, 선샤인 옐로우, 코랄 레드, 블랙 등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채들도 탄성을 자아낸다.

 

160년 전통의 아름다운 정신

최초의 발리 구두는 1851년 스위스의 쇠넨베르트에서 칼 프란츠 발리(Carl Franz Bally)에 의해 ‘발리 회사(Bally&Comp)’라는 이름하에 탄생됐다. 프란츠 발리가 구두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멜빵 고리를 구하기 위해 파리로 출장을 가면서 아내로부터 구두를 사다 달라는 부탁을 받은 프란츠는 발 사이즈를 몰라 12켤레의 여자구두를 사 갖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운영하던 고무줄 공장에서 생산되는 고무 밴드를 구두에 달아 아내가 신기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프란츠는 부인의 구두를 손질하면서 당시 일일이 맞춰 신던 구두 대신 자신의 공장에서 신기 편안한 구두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고 구두공장과 고무공장을 합병하게 된다.

현재 구두박물관으로 변한 창업자의 아름답고 우아한 저택인 ‘펠스가르텐’에서 20명 남짓한 제화공들이 가내수공업의 형태로 구두를 만든 것이 오늘날 발리 구두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프란츠는 발리 회사(Bally & Comp.)에 자신의 이름의 첫 글자를 집어 넣어 ‘C.F. Bally’로 회사명을 바꾸고 본격적인 구두사업을 시작한다. 포스빈켈이라는 독일상인이 남미에다 발리 구두를 내다 팔기 시작하면서 해외에서도 명성을 얻게 된 발리는 창사 9년 뒤인 1860년에는 직원이 500명으로 늘어났고, 일 년 구두 생산량이 6만 켤레에 달하는 ‘대 발리’로 탈바꿈했다. 1869년엔 프란츠의 맏아들인 에두아르트 발리가 영국과 미국에서 새로운 기계를 들여오고 새 기술을 익히며 또 한 번 성장의 시기를 맞게 된다. 1881년엔 영국 왕실과 귀족 등 상류층의 고급 소비자를 유치, 고급 브랜드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 주게 된다.

 

C.F.발리로 새 도약

1882년 프란츠 발리는 70세로 은퇴하면서 두 아들 에두아르트와 아르투르에게 ‘아들들’이란 이름을 붙인 ‘C.F. Bally Sohne’로 이름을 바꿔 회사를 물려주었다. 이후 1907년 발리 가문의 이반 발리, 에른스트 발리, 막스 발리가 동참하며 발리는 주식회사 ‘C.F. Bally’로 회사명을 다시 바꾸게 된다.

20세기에 들면서 발리는 프랑스·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미국 등으로 진출, 구두 생산의 현대화를 도모한다. 1916년에는 제 1차 세계 대전 전후로 밀어닥친 경제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군화의 수요가 늘며 직원 수 7200명, 구두 생산 4000만 켤레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된 경제공황으로 침체기를 맞게 된 발리는 1921년에 회사를 ‘발리 홀딩(C.F. Bally Holding)’과 ‘발리 구두공장(Bally Schufabriken AG)’주식회사로 나누었다. 이후 1977년 스위스의 욀리콘 부를레 콘체른에 병합되면서 구두뿐만 아니라 의류, 가방, 시계 등의 토탈 패션제품을 생산하기 시작, 구두뿐만 아니라 ‘스타일과 패션’을 창조하는 브랜드로 탈바꿈하게 된다. 발리는 현재 세계 66개국에 200여개 부띠끄 매장을 운영 중이며 연간 5000억 스위스 프랑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국내에는 1986년 처음 선보였으며 현재 12개 백화점 및 13개 면세점, 첼시 아울렛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구두의 대명사… 발리만의 노하우

구두의 대명사인 ‘발리’구두는 120여 가지 공정을 거치며 고가의 구두는 220여가지 공정을 통해 탄생된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고객들은 당연히 그 제품을 찾게 된다”라는 창업자의 정신에 따라 최고의 소재와 완벽한 재단, 철저한 끝마무리를 통해 발리 구두의 생명인 ‘신지 않은 듯한 편안한 착용감’을 만들어 낸다. 발리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전략은 지역별, 인종별로 다른 발 모양을 조사해 구두제작에 반영하는 일이다. 신발 제조 공정 중에 가장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35만개에 달하는 라스트 제작은 착용감이 좋은, 발에 꼭 맞는 구두를 만들어 내는 시작이자 비결이다. 미국에는 미국인의 발에 맞게, 아시아에는 아시아인의 발에 맞게 만들어 수출한 상품들이 각기 그 지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각 나라의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각각 그 지역의 특성을 갖고 있다.

한편, 현대적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발리는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적극적이다. 올 2월 새롭게 단장한 발리 웹사이트 (www.bally.com)는 런던의 최첨단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인 SIX-Creative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세련되면서도 사용자 편의를 위해 재구성됐다. 또 아이패드에서의 구현이 가능하도록 사이트를 최적화했으며 온라인 상거래 기능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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