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계 ‘민머리’ 맞수는 누~규~?
PR계 ‘민머리’ 맞수는 누~규~?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2.08.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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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현 부사장 vs. 박종민 교수…독특한 외모로 자기PR에 마침표 찍다

[The PR=강미혜 기자] PR을 업(業)으로 하는 PR인들의 경우 의외로 ‘자기PR’에는 인색한 경우가 많다. PR의 대상에게만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는 ‘직업정신’ 때문. 이런 가운데 특색 있는 외모로 자기PR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은 이들이 있다. 바로 PR계의 민머리 맞수, 스트래티지샐러드 송동현 부사장과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박종민 교수를 소개한다.  

▲ 왼쪽부터 송동현 스트래티지샐러드 부사장과 박종민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PR업계의 ‘송돌이’, 송동현 부사장

송동현 부사장은 헤어스타일의 ‘격변’이 꽤 많은 케이스다. 성인이 된 이후 장발에서부터 흰머리, 그리고 지금의 민머리까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왔다. 특별한 목적이 있다기보다 ‘한 번 해볼까’하는 도전정신이 가장 큰 이유다. 민머리 스타일은 스트래티지샐러드에 둥지를 틀기에 앞서 지난 2003년 두산그룹 입사 직전에 시도해 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다.

이름: 송동현
나이: 74년생
소속: 스트래티지샐러드
별명: 송돌이(학창시절 성(姓)을 본따 만들어짐)
취미: 포켓볼
주량: 측정불가(무조건 견딘다)
좌우명: 회사 불은 내가 켜고 내가 끈다!
“당시 경력사원으로 면접을 보러갔는데 한 임원분께서 ‘너 노조 만들러 왔지’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물으셨어요.(웃음) 그 때 ‘저 같은 친구도 두산에 한 명쯤은 있어야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는데, 면접을 통과한 사실을 미뤄볼 때 여러모로 개성 있게 좋은 쪽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눈에 띄는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다 보니 주변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장점이라면 카리스마 있어 보인다는 점. PR업계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쉬이 잊히지 않는 강렬한 아우라를 자랑한다. 문제는 송 부사장과 비슷한 ‘류’의 사람이 껴있을 때다.

“한 공간에 저 같은 사람(민머리)이 또 있으면 우스워져요. 두 사람이면 ‘트윈스’, 세 사람이면 ‘세알’이 된답니다.(웃음)”

머리카락이 빠져서 머리를 민 것이 아니기에 ‘유지’에 따른 남모를 고충도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머리카락을 손수 반듯하게 밀어야 한다. 그만큼 부지런해야 한다고. “밀어보니깐 짧게 하는 게 거추장스럽지 않고 더 편해요. 최근 몇 년 사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머리숱도 예전 같지 않은데 오히려 잘 됐죠.(웃음)”

면접관曰, “너 노조 만들러 왔지?”

송 부사장 특유의 이런 부지런함은 신입시절부터 줄곧 지켜온 좌우명인 ‘회사 불은 내가 켜고 내가 끄자’와도 맞닿아 있다. “스스로 머리가 크게 좋지는 않다고 생각하기에 맡은 일은 무조건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입니다.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부지런함이야말로 지금껏 저를 지탱해 온 힘이죠.”

그는 대학 시절 공학도였다. PR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학문이지만, 사람을 안다는 측면에선 PR과 공학이 묘하게 서로 얽혀 있다는 설명이다.

“당시 경영학이나 마케팅 등이 너무 원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케팅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한 공부는 빠져 있었거든요. 사람을 잘 알려면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기초가 되는 공학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점에 착안해 졸업논문 역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마케팅 즉, DB마케팅으로 잡았습니다.”

졸업 후엔 SK네트웍스 패션본부에서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또 두산주류에서 마케팅 및 홍보를 각각 담당하며 PR의 실전감각을 익혔고, 이어 2009년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창립 임원으로 입사해 현재 위기관리와 소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있는 중이다.

송 부사장은 클라이언트와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PR맨으로서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과 클라이언트의 노하우를 서로서로 공유해 나가는 기쁨이 크단다.

“PR이나 위기관리 분야나 워낙에 변화무쌍하다 보니 항상 공부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이 있어요. 잠시라도 멈춰있으면 도태되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그에 비례해 빠른 속도로 발전할 가능성도 큽니다. 앞으로도 가장 먼저 불을 켜고 가장 늦게 불을 끄는 초심을 잃지 않는 PR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PR학계의 ‘잡스’, 박종민 교수

이름: 박종민
나이: 68년생
소속: 경희대 언론정부학과
별명: 박불굴(집념의 사나이란 의미로 붙여짐)
취미: 그림그리기
주량: 소주 1병(소맥도 즐김)
좌우명: 내 탓이오
박종민 교수는 PR학계의 민머리 대표주자로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소 권위적일 것만 같은 학계에서 과감히 빡빡 스타일을 선언한 데에는 남모를 아픔(?)이 있다.

“대학원 다닐 때부터 머리카락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어요. 가족력이 있거든요. 해서 조금씩 조금씩 짧게 치다가 몇 년 전부터는 아예 밀어버리자 했습니다. 크게 흉하지 않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괜찮잖아요?”

주변에선 머리도 심고 가발을 써서 가리기도 하지만, 그런 인위적인 ‘가림’이 솔직담백한 성격의 그와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박 교수가 ‘반짝’ 밀고 짠하고 나타났을 때도 다들 크게 놀라워하지 않았다고.

“94~5년부터 15년이란 긴 세월동안 점진적으로 깎아서 그런지 큰 변화를 못 느끼는 것 같았어요. 의외로 젊어 보인다는 소리도 꽤 들었다니까요~(웃음)” 박 교수는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함께 청바지를 즐겨 입는 까닭에 잡스 못지않은 센스쟁이 교수님으로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강렬한 인상 탓에 연예인 못지않게 ‘자기관리’에 힘써야 하는 부작용(?)도 있다. 학계 세미나나 외부 행사를 가면 누구보다도 쉽게 기억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 번은 업체 선정 심사를 간 적이 있는데, 끝나자마자 지인분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어떻게 아셨나 했더니 참석자로부터 인상착의를 듣고 단박에 저라고 확신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딜 가나 저는 말조심 보단 머리조심을 해야 하는 것이죠.(웃음)”

민머리 또한 내 탓이오~

박 교수는 대학에서 독어독문을 전공했다. 그런 그가 PR과 연을 맺게 된 데에는 고려대 대학원 시절 은사셨던 원우현 교수의 영향이 컸다.

“대학 시절 부전공으로 신문방송을 택했었지만 원 교수님을 통해 뒤늦게 PR의 맛을 알았다고 할까요? 이후 미국 미주리대에서 전략커뮤니케이션을 연구했는데, 당시 PR계의 세계적 권위자라 손꼽히는 글렌 캐머론 교수와 같이 하게 되면서 PR에 더욱 빠져들게 됐습니다.”

박 교수는 신문방송을 비롯한 PR 분야가 신생학문이라는 점에서 크게 매력적이라고 했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영역이 많기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 그 과정에서 PR학계와 업계를 막론하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게 박 교수의 바람이다. “PR업계가 지금보다 더 탄탄하고 전문화될 수 있도록 옆에서 돕고 싶습니다. 학문적으로도 PR의 성숙도를 위해 미약하나마 역할을 다 할 생각이고요.”

카톨릭 신자인 박 교수의 인생 좌우명은 ‘내 탓이오’다. 무슨 일이든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려고 한다고. 젊은 시절 빠지는 머리카락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었건만, 오히려 개성 넘치는 박종민표 스타일을 구축했다는 점만 봐도 그의 화끈한 성격과 긍정적 마인드를 엿볼 수 있다. 언제까지 민머리를 고수할 것이냐는 물음에도 박 교수는 “다시 머리 날 때까지 쭈~욱 갑니다”며 싱긋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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