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간 속 피어나는 사랑의 미학
빈 공간 속 피어나는 사랑의 미학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2.09.27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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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

[The PR=강미혜 기자] 박진감 넘치는 북소리에 맞춰 역동적인 배우들의 춤사위가 펼쳐진다. 긴장감이 극도로 달하는 어느 순간, ‘휘잇~’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일동 그대로 정지!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소리. 대형 사건이 벌어졌다. 궁궐 안에서 왕세자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은 지난해 경희궁에서 공연된 이후 1년 만에 대학로 소극장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제목처럼 왕세자가 실종된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언뜻 생각하면 추리극 같지만 그보다는 가슴 저린 사랑 이야기다. 왕세자의 실종을 모티브로 남녀주인공 구동과 자숙의 미스터리한 관계가 한 겹 두 겹 벗겨지며 살구처럼 신 그들의 사랑이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 맨다.

“너 나 왜 좋아해?”라는 자숙의 물음에 “여자니까”라고 답하는 구동. 왕의 아이를 밴 자숙에게 줄 게 없어 그저 시큼 텁텁한 살구 한 알로 조용히 마음을 건넬 뿐이다.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도 사랑한다 말 한 마디 못하는 그들의 사랑은 애처롭다 못해 시리고 쓰리다.

왕세자 실종사건의 가장 큰 매력을 꼽으라면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별한 무대 장치나 조명 없이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표정, 소리만으로 모든 스토리가 촘촘히 연결된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으리으리한 궁궐이 만들어지고 동작 하나로 담벼락과 문지방이 생겨나며, 개짖는 소리로 밤을 알리는가 하면 뜀을 통해 뒷동산의 둘레와 살구나무의 높이를 보여주는 식이다. 그만큼 관객의 상상력을 최대로 이끌어내고 있다.

배우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지는 시공간의 흐름

배우들의 역모션도 단연 압권. 영화 필름을 되돌리는 듯한 연출로 과거와 현재, 실제와 상상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바로 미묘한 표정과 말투 변화다. 공연을 보다 보면 비슷비슷한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데 같은 듯하면서도 결코 똑같지 않은 연출로 진실을 파헤쳐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깊어가는 가을, 이루어질 수 없는 지독한 사랑 이야기로 감성을 충전하고 싶다면 단연 강추! 참고로 왕세자의 행방은 극의 가장 마지막에 나타난다는 스포일러 대방출~~~! 10월 2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1관에서 공연되며 문의는 1577-3363으로 하면 된다. 가격은 R석 6만원, S석 4만원.


인터뷰 | ‘구동’ 역의 김경수씨
“죽도록 달리다 보니 어느새 ‘구동이’로”

공개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무한 ‘끼’를 발산하던 뮤지컬 배우는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케이블TV 엠넷 ‘슈퍼스타K4’에 뮤지컬계 꽃미남 3인방으로 출연해 얼굴을 알린 김경수씨. 그러나 공연을 마치고 무대 바깥에서 만난 그의 조용한 표정과 말투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간직한 ‘바보 구동’의 모습과 어쩐지 닮아 있었다.

무대에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체력 소모가 엄청났다. 괜찮은지..?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든 배우들이 왕세자가 사라진 직후(공연 도입부) 장면부터 체력이 방전됐다. 과연 우리가 공연을 끝낼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체력 소모가 엄청났다. 하지만 연습하니 안되는 게 없더라(웃음). 두 달 가량을 낮이고 밤이고 연습한 결과다.”

왕세자 실종 사건이 갖는 특별함이라면.
“이번 작품을 무대에 올린 ‘죽도록 달린다’ 극단의 모토가 이름 그대로 ‘죽도록 달린다’이다. 그래서 그런지 타공연에 비해 퇴장이 거의 없다. 서재형 연출이 제일 싫어하는 것도 배우가 공연 중간에 퇴장해서 분장실에 대기하다가 다시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거다. 정서적으로 흐트러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설령 배우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대 위에서 공연에 참여하며 다음 씬(scene)을 계속적으로 생각하게끔 만들어졌다. 이런 경험 덕분에 나중에 다른 공연을 한다고 하더라도 분장실 들어가서도 극의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휴식을 취할 것 같다.”

슬로우모션과 같은 배우의 움직임이나 역순이란 극의 구성도 새롭다.
“스토리라인에서 시간적으로 역순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같은 씬이라 하더라도 결코 똑같은 씬은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시기와 상황 등에 따라 배우의 표정이나 목소리, 움직임이 각기 세밀하게 다르다. 가령 구동과 자숙이 만나는 장면에서 ‘나 여기 왔어, 너 거기 왔니?’라는 대화를 개 짖는 소리와 새소리로 표현하는데 얼핏 보면 그냥 반복적으로 들리지만 그들의 정서가 어떠한가에 따라 전부 다 다르다. 이런 디테일을 따져보는 것도 이번 공연의 색다른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연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극 전개상 소품으로 나오는 ‘살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어느 공연에선 몸을 막 움직이다가 살구가 날아가 버렸다. 자숙이한테 건네줘야 하는데 말이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던 차에 옆에서 조연출이 조심히 굴러주더라. 십년감수했다.(웃음) 아, 또하나 기억에 남는 관객이 있다. 공연 중간에 나간 관객. 당시엔 조금 당황했는데, 그 분이 후기 올린 것을 보니깐 너무 울음을 못 참아 꺽꺽 소리를 내 미안해서 나간 거라고 하더라. 그만큼 작품에 깊게 몰입해 주신 것이니 감사한 마음이 크다.”

구동은 사랑하는 여인을 좇아 궁궐로 오기위해 내시까지 됐다. 개인적으로 이런 지독한(?) 사랑 이해되나?
“솔직히 이해 안된다.(웃음) 사랑하는 한 사람만 죽도록 바라보는 사랑은 이해하지만 구동이처럼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다. 어떻게 머릿속에 자숙이라는 단어 하나밖에 없을 수가 있을까. 구동이란 배역을 이해하는 것이 그래서 더 어려웠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라면.
“체력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들 묻곤 하는데 체력은 연습하면 할수록 늘더라. 대신 배역에 대한 몰입이 어려웠다. 구동이란 인물이 전체적으로 많이 어둡다. 눈물도 많다. 우는 씬을 연기해야 하는데 처음엔 내가 왜 울어야하는지 모르겠더라. 깊게 파고들어서 구동이의 마음속 뿌리부터 이해하는 일이 정말 어려웠다. 우는 연습도 많이 했다. 줄곧 슬픈 생각 하고, 슬픈 노래 많이 듣고… 지금도 공연 들어가기 30분전부터는 음악 들으면서 구동이란 인물의 정서를 잡아놓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개 짖는 소리를 내는 첫 씬부터 어느새 눈물이 흐르더라.”

조명 때문에 실제 우는 줄은 몰랐다.
“맨 앞에 앉은 관객들이 아니고서야 잘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배우 입장에선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첫 씬에서 눈물이 나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감정이 잘 잡혔는지 덜 잡혔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오늘 공연에선 눈물이 흐르다가 중간에 말더라.(웃음)”

여주인공 자숙과의 호흡이 상당히 좋아 보이던데.
“그 친구는 지난해 이 작품을 이미 했다. 경험이 충분해서 나로선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초창기 캐릭터를 못 잡아서 고생할 때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줬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금발이 너무해요’란 작품이 있는데 맡은 배역이 지금과는 180도 다르다. 여주인공의 바람둥이 전 남친으로 나온다. 사실 왕세자 실종사건 전에는 주로 나쁜 남자(?) 역할을 맡아왔다. 이번 공연을 하면서 많이 착해진 거다.(웃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방송쪽 일도 하고 싶다. 물론 노래를 좋아하니깐 뮤지컬은 절대 빼놓을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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