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헌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사회공헌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 염지은 기자 (senajy7@the-pr.co.kr)
  • 승인 2010.09.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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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한국 기업 기여도는 세계 톱 수준…

“최근 상생이다, 미소금융이다 하며 각 기업들이 쏟아내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보면 경쟁적인 듯 해 안타깝다. 정부가 사회공헌을 강조할 때 정말 알맹이 있게 움직여 제대로 된 선순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데, 단발성 미봉책으로 부작용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국가적 측면에서 비용이 더 들 수 있다.”
최근 정부의 잇단 기업의 사회적 책임 주문에 재계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발언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사회 양극화에 대한 책임이 대기업에 있는 듯 전가하는 분위기 조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감 순위는 10위로 우리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공헌 부문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표의 순위는 OECD 30개국 중 30위로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염지은 기자 senajy7@the-pr.co.kr

정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압박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정부의 갑작스런 주문은 지난 7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이 제8차 녹색성장 보고대회 사전보고회의서 “대기업-중소기업 동반발전을 위한 산업생태계 전략을 수립하라”고 지시한데서 비롯됐다. 이 대통령은 이어 29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전경련도 대기업의 이익만 옹호하려는 자세를 가져선 곤란하며 사회적 책임도 함께 염두에 둬야 한다. 정부의 강제규정 보다는 대기업이 스스로 상생문화, 기업윤리를 갖추고 시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대기업을 압박했다. 정부부처 장관과 기관들도 대통령의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에 힘을 보태는 발언과 정책을 잇달아 쏟아냈다.
7월 27일 당시 정운찬 총리는 중소기업 옴부즈맨 자문위원 간담회에서 “대기업이 힘이 세니까 불합리한 기업 관행이 있는 듯하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비정상적 거래엔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발언, 대기업을 긴장시켰다. 7월 28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서울 고려대 교우회관에서 조찬강연을 갖고 “올해 2분기 삼성전자가 5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이익을 냈는데 가슴이 아팠다”며 “이를(삼성전자의 최대 이익을) 보고 더불어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7월 31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제주 하계포럼 강연에서 “대기업의 선전 배경에는 수많은 중소 하청업체의 분투가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를 재차 촉구했다. 이어 8월 5일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 협력사도 진정한 동반자 인정”을 촉구했고 9일엔 공정위가 중소기업 압박 지적재산권 남용 국내외 대기업 조사에 착수했다.

당황한 재계 상생대책 ‘봇물’…부작용 우려
정부 고위인사들이 연일 쏟아내는 대기업 때리기에 재계는 연이어 사회공헌 및 상생협력 대책을 쏟아내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8월 10일 현대·기아차의 ‘협력사 원자재 수급 안정화 방침’ 발표와 삼성의 미소금융 확대 발표가 이어졌으며, 12일엔 LG의 ‘그룹 차원 상생협력 5대 전략과제’ 발표, 포스코의 ‘원감 절감액 협력사와 나누는 베네핑 셰어링 확대 결정’이 차례로 이어졌다. 16일엔 삼성전자가 ‘상생경영 7대 실천방안’을 발표하는 등 주요 대기업들의 발빠른 대응이 숨가쁘게 진행됐다. 또 추가 대책에도 골몰하는 분위기다. 삼성그룹의 사회공헌 프로그램도 전반적으로 재검토되고 있으며 조만간 새로운 틀을 선보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정부가 이반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에서 대기업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상 최대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수출 대기업들이 양극화의 주범인 양 매도되는 분위기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7월 29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정병철 상근부회장은 제주하계포럼에서 “대통령이 취임할 때부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했는데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어원은 원래 마켓 프렌들리다. 시장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것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또 “기업들의 투자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한국기업처럼 많이 하는 데가 없다. 선진 외국은 개인이 많이 기부하지만 우리는 기업이 한다”고 말했다.
오영호 한국무역협회 부회장도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나 “대기업을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에서 압박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상생협력이 안 된다”며 “제대로 된 상생협력은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정부의 압박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수단이 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 비율이 거꾸로 가는 것 같아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말의 필요성은 인정하나 부의 공유, 어려운 계층에 대한 지원은 정책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부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길게 보고 정책적으로 리드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끼는 대기업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대통령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압력성 발언으로 상당히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는 기업도 있다. 사회적 책임이 중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예측 가능하게 움직여야지 정권에 따라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의 사회공헌은 개인 기부가 활성화된 선진국과 달리 상당부분 기업이 책임을 진다. 또한 상당히 많은 요구를 기업에 하고 있으며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보다 5~10배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정서가 정당한 부의 생산을 인정하지 않는데 정당한 부의 창출을 인정해 줘야 한다. 풍토 조성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단위 사회공헌은 세계적 수준
정부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주문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의 기부 수준은 지표상으로는 하자가 없다.
지난 5월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지표로 본 한국의 선진화 수준’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화 지표 가운데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표의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30위로 꼴지를 차지했다. GDP대비 기부액은 2007년 기준 미국의 2·2%에 비해 절반 이상 낮은 0.9%수준이다. 반면,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감 순위는 상대적으로 높아 10위를 차지했다. 우리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공헌 부문은 세계적 수준이라는 얘기다.
전경련에 따르면 2008년 국내 주요 209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지출 비용은 총 2조1610억4100만원. 이 금액은 2007년보다 10.5%, 2006년보다 19.7%나 증가된 것이다. 또한 응답 기업들의 평균 사회공헌비용은 103억3600만원으로 2007년에 비해 9.9% 증가했다. 응답 기업의 70% 이상이 경상이익의 1%, 세후이익의 1% 이상을 사회공헌활동으로 지출했다. 기부처도 다양화되고 있으며 NGO에 대한 기부도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기업의 기부금 규모는 미국과 일본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전경련 2004년 자료에 따르면 매출 대비 기부금 비중은 한국이 0.22%, 미국이 0.17%, 일본이 0.08%수준이다. 기부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국은 개인 기부가 80% 이상, 기업 기부가 20%선 수준인 반면, 우리나라는 기업 기부가 60%를 차지한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은 개인 단위다. 빌 게이츠가 기부를 하는 것이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기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개인 사회공헌 문화는 성숙되지 않아 기업 부담이 많다. 기업의 돈을 쉽게 생각하는데 기업의 돈은 주주들의 몫이다. 지원을 하면서도 ‘죄송하다’는 말을 앞세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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