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헌도 ‘GPS 접근법’ 필요하다”
“사회공헌도 ‘GPS 접근법’ 필요하다”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9.12.2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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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②]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장

[더피알=박형재 기자] SK그룹은 올해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이익과 똑같이 취급하는 DBL 경영을 선언했다. 경영철학을 바꾸니 목표의식이 변한다. 경제적 가치가 낮아도 사회적 가치가 높으면 사업을 할 수 있다. SK의 싱크탱크로서 이런 숫자를 만들어가는 곳이 사회적가치연구원이다. 나석권 연구원장을 만나 구체적인 방법론을 들었다.

▷“SK식 소셜밸류,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에 이어...

나석권 원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미주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재무부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뒤 청와대 행정관, 기획재정부 정책조정총괄과장, 통계청 통계정책국장 등을 거쳤다. 2017년 SK경영경제연구소에 전무급으로 이직, 올해 4월 CSES의 수장으로 취임했다. 사진: 성혜련 기자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의 주요 목표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팬덤을 만들고 확장하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사실 젊은층이 좋아할만한 힙한 브랜드가 아니고선 팬덤 만들기가 참 힘든데 어떻게 구현해 나갈 생각인가요.

사회적 가치 팬덤 구축을 위한 프로그램들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선 콜로키움(Colloquium)입니다. 저희는 연구단체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 측정에 대한 여러 데이터와 자료들을 쌓아놓고 있어요. 이걸 대학원생, 교수님 등 데이터가 목마른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그들이 이를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 논문 경진대회를 엽니다.

그 다음은 펠로우십(Fellowship)으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고 실행할 인재 양성 프로그램입니다. 사회적 가치에 관심 많은 학부생, 대학원생들이 펠로우로 등록하면 저희가 연구에 도움을 주거나, 그들이 모여서 공동 연구하도록 돕습니다.

또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공모전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다른 공모전이 완성된 논문을 평가하는 것과 달리, 저희는 사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지원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기술을 활용한 물 부족 해결’과 같은 주제 몇 가지를 던져주고 이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1년 연구비를 주는 식입니다. 그 성과는 연구자들의 것입니다. 저희는 단지 연구 활동을 통해서 사회적 가치가 학문의 영역으로 편입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팬덤 확산은 여러 모델을 검토 중입니다. 밀레니얼-Z세대가 선호하는 유튜브 영상으로 눈길 끄는 사회적 가치 실현 사례를 소개하는 콘텐츠, 혹은 사회적 가치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 쓴 논문, 온라인 참여형 플랫폼 등을 고민 중이에요. 내년엔 관련 서비스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사회적성과인센티브(SPC)에 대한 내용도 궁금합니다.

SK는 2015년부터 사회문제를 해결한 정도를 화폐가치로 측정해 그에 비례하는 현금 보상을 지급하는 SPC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문제 전문 해결사이면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만, 규모도 작고 지속가능성이 낮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이 창출하는 가치에 따라 경제적 보상을 제공한다면 사회적 기업 생태계가 성장하고 많은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입니다.

저희 연구소는 현재 212개 사회적 기업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후원 기업들 중에서 하나의 테마로 묶여진 곳들이 있다는 겁니다. 오파테크라는 기업은 ‘탭틸로’라는 시각장애인용 점자 교육기기를 만들었어요. 넥스트이노베이션은 ‘센시’라는 점자책을 하루 만에 만드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습니다.

닷컴이란 회사는 시계에 대고 말을 하면 문자로 표현해주는 점자 스마트워치 ‘닷 워치’를 개발했고요. 이들을 연결하면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처음 배우고, 점자책으로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든 과정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시각장애인의 라이프사이클 전반에 걸쳐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어낸 것이죠. SPC를 통해 지난 5년 간 누적 1000억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고, 현금보상 235억원을 지급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을 발굴할 계획입니다.

차별화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고민하는 실무자, 기업 담당자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신다면.

이제는 사고의 전략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사회공헌이든 상품개발이든 총쏘기 전에 준비-조준-발사 3단계를 거쳤어요. 이제는 세상이 그렇게까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문제가 발생해서 준비하고 조준하는 사이 상황이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GPS식 접근법이 필요해요. 순간 상황에 맞게, 리얼타임으로, GPS처럼 신속하고 애자일스러운 접근방식이 사회공헌 파트에도 필요합니다. 전략적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게 첫 번째 조언이고요.

두 번째는 사회공헌도 수용자 입장에서 달라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동안은 주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했어요. 어쨌든 나눠주면 좋아하겠지, 더 많이 주면 좋겠지 했는데 그게 아닌 거죠. 옛날에 학교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줬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공개적으로 도시락을 주면 받는 아이들이 부끄러워해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한꺼번에 주는 게 효율적이지만 그게 과연 옳은 걸까요.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 도시락 보관 장소를 따로 만들던가, 매일 집으로 보내주던가 하는 식으로 바뀌어야죠. 이처럼 돈이 좀 들더라도 수요자에 맞게 사회공헌을 해야 합니다. 기업에서 여전히 주는 사람 위주가 아닌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에요.

SK그룹의 사회적 가치 씽크탱크로서 청사진은 무엇인가요.

영화 극한직업에 나오는 대사처럼 ‘지금까지 이런 연구원은 없었다’라고 저희들끼리 이야기해요.(웃음) 공학·자연과학 연구소나 사회과학 연구소는 많은데, 사회적 가치 중에서도 측정만을 연구하는 곳은 유일하거든요.

저희가 슬로건처럼 말하는 게 ‘위대한 작은 발걸음’이에요. 예전에 같은 제목의 책이 있었는데 거기 네 가지 원칙이 나옵니다. 첫째는 ‘낡은 지도로 헤매지 말라’는 거예요. 똑같은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예전 방식을 답습하지 말자는 것이고, 둘째는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갖고 하자는 겁니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어야지, 막 들이대면 돈키호테 소리를 듣는 거죠. 셋째는 우리가 가는 길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며,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SK의 후원과 연구원을 둘러싼 고운 시선들 덕분에 나아갈 수 있는 거죠. 네 번째로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계속 가야한다는 겁니다. 한두 번 하다가 멈추면 안 하니만 못하죠.

제 마음속엔 하나 그림이 있어요. 커다란 나무가 있고, 그 밑에 벤치가 있고, 거기에 한두 명이 앉아있는 그림입니다. 더운 여름날 나무 밑에 있으면 시원하잖아요. 그런데 그 나무는 누군가 몇 십년, 몇 백년 전에 심은 거예요. 우리 연구원의 모습은 20년, 100년 뒤에 봤을 때 그런 큰 나무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가치 측정을 통해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느티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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