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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고전, 첨단무대 위에 다시 쓰다[문화공감] 뮤지컬 <고스트>

   

[더피알=이슬기 기자] 이제 막 동거를 시작해 사랑의 환희에 젖은 샘과 몰리에게 비극이 찾아온다. 뜻밖의 사고로 샘이 이승을 떠난 것. 하지만 슬퍼하는 몰리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던 샘의 영혼은 그의 말을 알아듣는 점성술사 오다메를 만나게 된다.

점쟁이 집안에서 태어나 생계를 위해 가짜 점성술사 노릇을 하던 오다메는 진짜 능력이 생겨버리는 바람에 곤혹스럽다. 샘을 필두로 억울한 영혼들이 시도 때도 없이 귓가에 중얼거리는 것이다. 결국 오다메는 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몰리와 샘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뮤지컬 <고스트>는 영화 <사랑과 영혼>을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인간과 영혼이 도자기 물레를 돌리는 애절한 장면과 타이틀 음악은 친숙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공연은 영화의 애잔한 감성에 현대적 무대 기법을 더했다. 제작사는 160억원을 들여 완성된 한국공연에 제작비의 반을 무대에 쏟았다. 최첨단을 달리는 무대 기술은 관객이 무대에 기대하는 이상의 시각적 쇼크를 선사한다. 영혼이 소재로 쓰이는 만큼 가방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등의 마술을 눈앞에서 시전하는 공연은 ‘매직컬(Magical)’이라는 용어가 아깝지 않다.

물론 무대가 ‘너무’ 돋보여서 아쉬운 면도 있다. 역설적으로 앙상블들의 연기가 대형 LED무대의 화려함을 지탱하지 못한다는 느낌이랄까. 주연급 배우들의 역량도 다소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무대에서 살아남은 배우는 오다메 역의 최정원 뿐, 26년 경력의 배우만 감당할 수 있는 무대라면 관객들 반응은 어떨까.

하지만 관객이 공연장을 찾는 이유는 저마다 다양할 것. 뮤지컬 <고스트>는 현재 무대 예술의 첨단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임에는 확실하다. 또 “사랑해”라고 말하는 몰리에게 언제나 “동감이야”라고 말하던 샘이 죽어서도 구천을 떠돈다는 아련한 설정은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을 숙고해볼 기회를 준다. 주원, 김준현, 김우형, 아이비, 박지연, 최정원, 정영주가 출연한다. 6월까지 디큐브아트센터.

 

INTERVIEW 최정원 배우, 오다메 역

“매일매일이 내 인생 최고의 공연”

   

<맘마미아>의 도나 역으로, <시카고>의 벨마 켈리 역으로 파워풀하고 관능적인 매력으로 무대를 휘어잡아온 26년차 뮤지컬배우 최정원(45)이 명품 감초로 돌아왔다. 영화 <사랑과 영혼>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고스트>에서 능청스러운 사랑의 메신저 오다메로 완벽 변신, ‘한국의 우피골드버그’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오다메’를 연기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다면?
오다메를 위해 어머니를 많이 관찰했다. 오자걸음이라던가 볼펜 머리에 찍기 등 바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생활인의 제스처들을 많이 따왔는데, 예쁜 척하거나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역할을 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인데, 오다메는 점쟁이 집안에서 태어나 돈을 벌기 위해 가짜 점쟁이 노릇을 하다가, 진짜 귀신소리를 듣게 되는 희극적인 인물이다. 오다메에게는 공포와 당혹감이 밀려오겠지만, 관객들에겐 웃기는 거다. 또 웃음코드를 굉장히 많이 짜냈는데, 관객들 호흡 조절을 위해 버린 것도 많다.
 
첫 조연인데, 조연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일단, 장점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마음의 부담감이 현저히 줄어 주연을 맡았을 때보다 재밌게 공연을 할 수 있다. 주연을 할 때는 분량이 많다보니 컨디션 관리에도 훨씬 예민해지고 공연 중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많다. 그런 부담감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측면이 있다. 또 무대 위에서 소금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주연은 선물을 받는 입장이라면, 조연은 선물을 준비하고 받는 사람의 표정, 대사 등에 리액션을 해서 주인공을 부각되게 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재밌고 즐겁게 해서 주인공들을 빛나게 하는데 보람을 느낀다.

<고스트>를 한국정서에 잘 맞는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영화 <사랑과 영혼>도 인구비례해서 한국에서 유난히 흥행한 케이스라고 들었다. 작품에는 영혼, 무당 등의 코드가 있는데, 삼일장 등의 문화가 있는 우리에게는 친숙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외국에서는 다소 유치한 코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에도 사랑은 단골 소재지만 우리 작품에서는 한국 고유의 코드와 잘 맞게 사용된다. 불멸의 사랑, 죽은 자가 구천을 떠돌며 산 자를 지키려 한다는 설정 등이 그래서 더 애틋하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세상에 많은 사랑이 있는데, <고스트>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라고 소개하고 싶은지?
대부분의 작품들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관심을 두는 편인데, 우리 작품은 이미 사랑하는 관계에서 시작된다. 연인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여자와 정말 사랑하지만 그 말은 아껴온 남자다. 그 와중에 남자가 사고를 당해 더 절절하게 한다. 귀신이 된 후에도 떠나지 못하고 여자 곁에서 맴도는 것들이 참 애틋하다. 아, 이 때문에 연습 중에는 코믹한 상황도 많이 발생했다. 그렇게 시끄럽고 부산한데 안 들리고 안 보이는 척해야 하니까.

26년간 흔들림 없이 배우생활을 해온 비결은 무엇인가?
다시 태어나도 뮤지컬 배우를 할 것 같다. 유년시절에는 뭘 좋아하는지 몰랐지만 좋아하는 걸 찾고 나니 그 일을 할 때가 가장 신나고 설렌다. 내겐 그게 배우인데, 공연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커튼콜은 마약 같은데, 매일 공연을 해도 커튼콜에서 박수를 받을 때는 언제나 뭉클하고 배우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간혹 물질적인 것, 대중성 등을 고려해 영화, 드라마 등의 제의가 들어오곤 하는데 그때 커튼콜을 생각하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빛날 수 있는 곳에서 관객들을 만나 시너지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다.

결혼을 기점으로 배우생활이 달라지지 않았나?
딱히 결혼을 기점으로 달라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맞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나이에 맞게 배우생활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내가 나이를 먹으니까 그에 맞게 하고 싶은 역할과 작품이 내게 들어온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내가 나이가 들고 있으니까 그에 맞는 역할들이 또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더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내 안에 몇 명의 인간이 있는지 나도 모른다. 무대에서 오다메까지 28명으로 살아봤는데,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었다. 최정원이 아닌 사람이었기에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26년을 해왔고 앞으로 50년은 더 할 생각이기 때문에 계속하다보면 내 인생과 똑같은 역할을 만나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실제로 요즘 싸인을 청해오는 팬들 중에 ‘나중에 꼭 모시고 싶다’고 말하는 연출가, 작가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이 저를 작품의 소재로 쓴다면 저랑 가장 가까운 역할을 만들어내겠지만, 아마도 내겐 가장 어려운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관심을 두고 있는 다른 영역이 있나?
무대에서 다 해보기 때문에 특별히 미련남는 부분이 없다. 역할을 맡게 되면 사람을 통해서 많이 읽는 편이다. 그러다보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는 것을 느끼는데, 할머니도 멋진 남자를 좋아하고 예뻐지고 싶어 하는 여자다. 상상이든 경험을 바탕으로 하든 내 표현은 내 삶과 만나서 나만의 연기와 역할이 된다.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났던 감정들을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나를 아는 어떤 사람들은 오다메 역할을 보고 대변신이라고 많이 놀라워하는데, 이것도 내가 살아볼 수 있는 삶이다. 무대 위에서 다 해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없고 못가본 길에 대한 호기심도 크지 않은 편이다.

인생 최고의 공연은 어떤 것이었다고 생각하나?
매 공연을 마지막 공연처럼 한다. 이정도면 잘했다는 생각이 아니라, 매번 오늘 더 잘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최고의 작품이 기억에 계속 남고, 오늘이 젤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미련 없이 떠날 생각이다. 내일 쓸 에너지를 남겨두는 게 아니라 모두 소진한다. 그러면 그 하루하루가 연기에 계속 재미를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연륜과 경력으로 쌓인다.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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