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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울리는 ‘아날로그’, LP 바람이 분다과거 명반 LP재발매 부터 신곡 LP 출시까지 다양
   
▲ 서울 홍익대 인근 LP바 '개리슨'의 LP 플레이어.

[더피알=문용필 기자] 어두운 조명아래 놓인 턴테이블에 익숙한 손놀림으로 레코드를 올린다. 조심스럽게 바늘을 옮기면 끈적끈적한 일렉트릭 기타소리와 보컬리스트의 힘있는 음색이 공간을 꽉 채운다. 한동안 스트리밍된 음원을 통해 음악을 들었던 기자는 기막힌 ‘소리의 향연’에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용돈을 어렵게 모아 음반을 사듣던 학창시절의 감동이 그대로 밀려온다.

벽면 하나는 셀수 없이 많은 레코드로 가득하다. ‘기타의 신’ 지미 헨드릭스, ‘레게의 아버지’ 밥 말 리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정겹다. 3월의 어느 저녁, 기자가 찾은 서울 홍익대 인근 LP바 ‘개리슨’의 풍경이다.

‘개리슨’은 총 2만여장의 LP를 보유하고 있다. 록과 블루스, 월드뮤직, 영화음악, 그리고 옛날 가요에 이르기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40대 중반의 오형철 사장이 중학교 시절부터 모은 음반들이다. 총 3대의 턴테이블 중 한 대는 손님들이 직접 음악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오 사장은 “손님들이 다양한 음악을 신청하는데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음악을 튼다”고 말했다. “낯선 손님들끼리 음악을 듣다가 공감대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하나의 커뮤니티가 형성된다”는 것이 오 사장의 설명이다.

20대부터 40대까지, 그들이 LP를 듣는 이유는?

최근 들어 대중음악계에 ‘LP 바람’이 불고 있다. CD와 MP3같은 디지털 음원에 밀려 일부 음악마니아들의 전유물 정도로만 취급 받았던 LP가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홍수 속에서 느리지만 한결같은 ‘아날로그 감성’이 통하고 있는 셈이다.

LP하면 흔히 ‘올드 뮤지션’을 떠올리기 쉽지만 LP 발매는 국내 음반시장에서 이미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 ‘브라운아이드소울’ 같은 실력파 뮤지션들, 그리고 ‘2AM’이나 ‘지드래곤’ 같은 아이돌 스타들도 LP 출시에 동참하는 추세다.

이는 LP를 찾는 음악소비자들의 수요가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 인터파크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같은해 1월부터 11월까지 LP와 턴테이블 등의 상품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500%이상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LP가 다시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형철 사장은 “아날로그의 소리는 따뜻하지 않느냐”며 “(예전에 나온) LP는 발매 당시의 시대적, 문화적인 것들이 함께 다가오는 것이 크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LP바 '개리슨' 내부(위)와 서울 황학동 '장안레코드'(아래).

씨앤엘뮤직의 최우석 부장은 “기술적으로 LP가 CD나 디지털 음원에 비해 우월함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면서도 “기술이 발전할수록 아날로그 사운드에 대한 매력과 LP의 사운드적인 우수성은 LP가 CD나 디지털 음원에 시장을 내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오디오파일들에게 사랑받게 되는 원동력”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CD나 디지털 음원이 전달하지 못하는 실체적인 볼륨감과 커버 이미지 등은 아티스트가 추구해온총합적인 세계를 좀 더 구체화해서 담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산타뮤직의 고기호 이사는 ‘소장 가치’와 ‘과거의 추억’을 LP붐의 원인으로 꼽았다.

LP를 찾는 수요층이 20대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인터파크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LP를 구매한 고객들의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 40대(40%)와 30대(25%)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LP시대와는 다소 거리가 먼 20대 구매자도 15%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LP의 매력에 빠진 젊은 세대가 상당수 있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이와 관련, 이길용 LP팩토리 대표는 “젊은 세대들이 턴테이블이 없는데도 중고 LP를 사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언급했다. 지난 2011년 설립된 LP팩토리는 현재 국내 유일의 LP생산 업체다.

과거 공연기획사에 몸담았던 이 대표는 “4년 전 어느 해외뮤지션의 내한공연 당시 여고생 팬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 뮤지션의 LP를 중고로 샀다고 자랑하더라”며 “이들이 지금 20대 초중반인데 LP소리를 들어보면 분명히 LP의 매력을 느낄 것이다. 이들이 성장하면 국내 LP시장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형철 사장은 “기성세대에게는 (LP붐이) 복고현상 일수 있지만 젊은세대에게는 말 그대로 새로움”이라며 “이들에게 LP는 전혀 새로운 소리로 다가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조용필부터 지드래곤까지…LP열풍에 동참한 뮤지션들

최근 LP의 발매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과거의 명반들을 재발매하는 경우와 ‘LP시대의 스타’로 군림했던 중견 뮤지션들이 신보를 LP로 발표하는 경우, 그리고 최근 각광받는 젊은 뮤지션들이 LP를 내놓은 경우가 그것이다. 유형은 다르지만 대부분은 한정판으로 제작돼 ‘완판’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1월 재발매된 고(故)유재하의 유작앨범은 과거 명반이 LP를 통해 다시 빛을 본 대표적인 케이스다. 요절한 천재 뮤지션 유재하가 지난 1987년 발표한 이 음반은 ‘사랑하기 때문에’와 ‘내 마음에 비친 내모습’, ‘우울한 편지’ 등 수록곡 모두 뛰어난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여러 뮤지션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손꼽히는 명반이다.

   
▲ 올해 재발매된 고(故) 유재하의 유작앨범(사진제공=씨앤엘뮤직)

이 음반을 LP로 재발매한 씨앤엘뮤직 측은 “유재하의 음반은 여러차례 표지를 바꿔가며 LP와 CD로 발매됐고 LP시대가 저물고 난 뒤에는 CD만 유통됐는데 오리지널 마스터의 음원을 제대로 담지 못한 채 여러번의 리마스터링을 통해 재발매됐다”며 “이 LP는 이전 발매본들의 사운드를 참조하지 않고 유재하가 공들여 만든 오리지널 마스터 테이프의 사운드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정된 수량을 제작하기로 처음 기획 단계에서 부터 시작을 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수량에 대한 의도는 없었지만 초도 제작된 1000매와 2차로 제작된 500매 등 총 1500매의 발매 몇일 만에 모두 품절됐다. 특히, 추가 물량은 사전 예약만으로 매진됐다”며 “사운드와 패키지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해 제작한 부분에 대해 소비자들과 팬들의 반응이 무척 뜨거웠다”고 전했다.

지난해 각종 차트와 음악시상식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가왕’ 조용필의 19집 앨범 ‘헬로(Hello)’는 같은해 5월 LP로도 발매돼 팬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LP의 황금기였던 1980년대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던 만큼 과거의 소리와 향수를 잊지 않은 셈이다.

특히 일반 LP보다 1.5배 무거운 ‘헤비웨이트(Heavy Weight)’로 제작, 내구성을 강화해 좋은 음질을 장기간 보존할 수 있게 했으며 수록곡 전곡의 제목을 조용필의 자필로 작성해 소장가치를 높였다.

나얼, 정엽 등 쟁쟁한 남성 보컬리스트들이 모인 브라운아이드소울은 현재 활동하는 비교적 젊은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일찌감치 LP를 발매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0년 발표한 3집앨범을 한정수량의 스페셜LP로 제작해 팬들의 찬사를 얻은 것.

이 앨범은 두왑과 60년대 소울 등 LP에 걸맞는 복고사운드의 곡으로 채워져 있다. 최근 발표한 4집앨범은 카세트 테이프로 제작돼 관심을 모았다. 예약판매만으로도 이미 ‘완판’됐다는 것이 소속사인 산타뮤직 측의 설명이다.

고기호 이사는 “3집앨범을 LP로 낼 당시에는 한국에 LP를 생산하는 공장이 없어서 일본에서 작업했다”며 “과거의 소리를 재현하기를 좋아하는 멤버들이 자신의 음악을 LP형태로 갖고싶어했다. 이 앨범에는 60~70년대 음악이 다양한 형태로 브라운아이드소울만의 음악으로 실려있는데 그 콘셉트와 LP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LP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 지난해 LP로 발매된 조용필의 19집 ‘Hello’(사진제공=YPC프로덕션)

브라운아이드소울 외에도 LP를 발표하는 젊은 음악인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이돌 스타 지드래곤은 지난해 발표한 앨범 ‘쿠데타’를 한정판 LP로 제작해 8888장을 순식간에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했으며 2AM, 장기하와 얼굴들도 LP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LP 붐’이라고 볼 수 있나?…전문가 견해 엇갈려

그러나 최근의 LP 바람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이같은 추세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붐’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형철 사장은 사견을 전제로 “붐을 떠나 LP를 듣는 사람들의 층은 계속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LP가 문화지형도에서 차지하는 부분도 지속될 것”이라며 “당분간 사람들이 LP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갖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연희 인터파크 과장 역시 “기획사나 유통사에서 LP 발매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 한다”며 “좋은 음반들이 LP로 나오면서 여기저기서 이 추세를 이끌고 가려는 노력이 보인다. 계속 좋은 상품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LP시장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최우석 부장은 “해외는 이미 LP시장이 새로운 대안의 하나로 자리잡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붐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열악한게 사실”이라며 “본격적인 시장으로 자리잡기에는 아직까지도 일반적인 LP수요가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이길용 대표는 “국내에서 LP바람이 살짝 불기는 했지만 (기획사들이) LP를 새로 제작하는 것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LP 제작단가가 CD에 비해 높은데다가 디자인이나 유통에도 신경써야 하고 한정판으로 발매하는 경우가 많아 높은 수익을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아울러 이 대표는 “중고LP나 수입LP의 경우에는 붐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새로)국내에서 LP를 제작하는 것은 붐이 되거나 그러지는 않다“는 시각을 나타냈다. 중고LP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서울 황학동 장안레코드의 박임선 사장은 ”(LP가) 요즘에 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 전부터 (수요가) 꾸준히 있었다“며 ”새로운 음반은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여기 오는 분들도 예전에 나왔던 음반들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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