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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이름 좀 붙이지 말자
자살에 이름 좀 붙이지 말자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5.01.27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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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자살 떠올리게 자극하는 요소 막아야

[더피알=유현재] 평균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약 37분마다 한 사람씩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하루에 40명꼴이고, 일 년이면 무려 1만5000명 가까이 된다. 심해도 너무 심한 숫자이다. OECD 국가들 가운데 10년 째 자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슬픈 현실을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전보다 자살예방사업의 규모가 커졌고, 그 종류도 다양해졌으며, 공익광고도 지속적으로 방영될 뿐 아니라, 지자체들도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지만 세계 2위, 혹은 그 이하로 순위가 떨어졌다는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다.


자살의 이유는 실로 다양할 것이다. 개인적인 사유는 셀 수 없을 만큼 존재하고, 자살을 사회적 타살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한 뒤르켐 이후 사회구조적 문제들도 주요한 주제들이 되고 있다.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자살을 막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 중 자주 토론되는 사항이 언론의 보도와 관련된 부분이다.

언론의 자살보도, 특히 선정적인 보도형식이나 권고기준을 무시하며 독자들의 말초적 관심을 유도하는 보도들은 제2, 제3의 또 다른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자제를 요구받고 있다. 미디어의 비정상적 자살보도 측면을 모두 논의할 수는 없겠지만, 특정한 자살사건에 감정적인 ‘작명(Labeling)’을 하는 답답한 관행을 짚어보고자 한다.

동반자살의 민낯은 ‘살해 후 자살’

사실 헤드라인을 어떻게 뽑느냐에 따라 특정 기사에 대한 주목도가 결정될 수 있고, 기사 자체의 전달력 또한 좌우된다. 하지만 일부 언론들은 필요 이상으로 자살 사건을 극화, 드라마타이즈(Dramatize)해 청중들이 해당 사건을 이성보다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연출하는 경우가 자주 관찰된다.

정확한 원인(Cause)과 결과(Effect)를 검증하기 어려운 사안이기는 하지만, 자살사건을 지나치게 극화시킬 경우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 공감하고 급기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심리상황에 치닫게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반자살’ 이라는 용어에 대한 적절성은 이미 빈번하게 논의된 바 있다.

장기적인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우울증에 빠진 가장이 있다고 가정하자. 극도로 비관하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결국 4살짜리 아이와 함께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부 미디어는 어김없이 ‘동반자살’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자살한 가장이 미성년 아이를 먼저 무참하게 살해한 다음, 자신이 자살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런 경우 고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아이의 죽음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인물이며, 동반자살이라기 보다는 ‘살해 후 자살’이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사건이 동반자살이라는 용어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순간, 사람들은 자살 사건을 감정적으로 소비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아이를 살해한 가장에 대해 동정하거나 사건에 대한 감정이입을 행할 여지가 많아진다는 말이다. 이같은 이유로 하여 2013년 제정된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에서는 동반자살 등 자살을 미화할 수 있는 표현은 지양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지난해 ‘제11회 세계자살예방의 날(9월 10일)’기념 포럼 개최식에 참여한 참가자가 생명존중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동반자살에 이어 최근 포착된 신조어는 ‘공감자살’로, 특히 지난해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유사한 상황에 ‘공감’하면서 자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현상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특정한 자살사건에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자신의 처지를 투영시키고, 자살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진다는 의미니 정말 아찔한 단어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자살은 무조건 지양돼야 하며,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살이라는 선택지는 아예 없어야 한다는 공감대가시급한 대한민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감자살이라는 감정적 용어는 불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자살 미화·극화 보도의 파급효과

또 한 가지 용어는 주로 청소년들의 자살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보복자살’이다. 사실 보복자살이라는 말 자체가 대단히 자기 모순적이다. 말 못할 어려움, 부당한 대우를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낼 경우, 사람들은 ‘보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개인이 누군가에게 보복을 하는 수단으로 자신을 해하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인 것이다. 결국 자살, 즉 자신에 대한 고의적 자해에 의해 보복을 한다는 뜻이며, 의미를 이해한다 해도 대단히 답답한 상황이다.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이 있다고 치자. 아무리 저항해도 폭력은 멈추지않고 담임선생님에게도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괴롭힘은 심해졌으며, 이 학생은 폭력을 행사하는 당사자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을 것이다.하지만 현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고, 급기야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아이들의 이름과 함께 엄한 처벌을 바란다는 내용을 유서로 작성한다. 그리고는 자살을 감행한다.

이같은 배경이 있는 자살사건을 두고 일부 미디어는 ‘보복자살’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런 식의 자살보도는 결국 또 다른 학생들에게 보복자살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전략적 자살이 무엇인지, 일종의 정보제공 역할을 수행한 것은 아닐까.

자살은 어쩌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 가운데 가장 불행한 사건이다. 개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너무나 답답한 일이다. 고인과 가족에게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비극이지만, 더욱 난감한 상황은 발생한 자살이 미화 혹은 극화됨으로써 파급효과가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연계성이 완벽하게 검증되지도 않았고,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조심해야만 한다. 자살을 부추기거나, 사람들이 자살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자극하는 모든 요소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비상 상황이기 때문이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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