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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경계’ 대열은 누가 만들었나[20's 스토리]논객닷컴 청년칼럼 공모전 우수작

‘비상경계’라는 정체 모를 단어가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막상 뜻풀이를 들어도 왜 이런 용어가 탄생했는지 쉬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비상경계란 말 그대로 상경계 전공이 아니(非)라는 뜻이란다. 상경계 전공이라 함은 보통 경영학, 경제학, 회계학을 말하고 학교에 따라서는 통계학과, 국제통상학과, 식품자원경제학과 등의 이름을 가진 전공도 경제학사 졸업장을 받게 되니 상경계로 분류된다.

   
▲ (자료사진) 서울의 한 대학교에 붙어있는 채용설명회 현수막. 뉴시스

비상경계란 조어(造語)는 참 괴물 같은 언어다. 루쉰의 소설을 좋아하는 중문학도도, 세종시에서 국가정책을 디자인하고자 했던 행정학도도, 푸코와 하버마스 책에 푹 빠져 살던 사회학도도, 교직에 대한 꿈을 키워왔던 영어교육과 학생도 아주 간편하게 ‘상경계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 공히 묶여 버린다. 제 전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수많은 학생들을 도매금으로 정리해버리는 극히 천박한 단어인 것이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중문학과는 어문계열, 행정학과와 사회학과는 사회과학계열, 영어교육과는 사범계열 등 나름의 전공계열 분류기준이 있다. ‘무엇 무엇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비(非)’는 너무도 배타적인 접두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경영학과를 비어문계, 비사범계라며 제멋대로 정체성을 부여해대면 경영학과 학생과 교수들의 심정이 어떨까?

타전공에 대한 이런 멸칭(蔑稱)이 별다른 성찰 없이 운위되는 것, 우리 고등교육의 씁쓸한 현주소다. 한편으로는 덩치 큰 대기업들이 입사 지원자격 혹은 우대사항에 상경계 전공을 적시하면서 벌어진 참극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다른 전공에 비해서 경영학, 경제학이 기업의 생리를 이해하는 데 좀 더 긴요하리라 판단했으리라.

사기업의 채용기준이니 외부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줄기차게 사기업 채용과정에서 학벌, 출신지역, 성별, 나이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는 사회적 압박이 있었다. 영어점수도 입사 지원서에 기입하지마라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전공차별이라니. 퇴행도 이런 퇴행이 없다. 더군다나 툭하면 인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CEO들이 매체에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이 시대에 말이다. 물론 지금 인문학의 존재의의에 대해 논하려는 건 아니다. 몇몇 소수의 상경계 전공 외의 나머지 수많은 전공을 비상경계로 치환하는 경박함과 몰지각에 대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컨대 재무팀에 가려면 그래도 회계를 좀 알아야 하니 상경계 전공자를 뽑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면접과정에서 기본적인 재무지식을 측정하면 될 일이다. 자기소개서를 쓰기도 전부터 전공에 제한을 거는 것은 지나치다. 심리학과나 사회복지학과를 나와서도 스스로 재무공부를 한 지원자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신문방송학과 출신을 더 우대하거나 타전공을 차별하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자신을 ‘비(非)신문방송학과’라며 자기 비하하는 언론고시 준비생이 있을까? 다른 전공을 배척하고 ‘비(非)’를 갖다 붙이는 작태는 비(非)상식에 다름 아니다.

상아탑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상경계’라는 단어는 개별 전공의 특성을 퇴색시킨다는 점에서 그 쓰임을 ‘비상’ ‘경계’해야 마땅하다. 우리의 전공은 국문학과, 정치외교학과, 역사학과, 지리학과, 철학과다. ‘비상경계’라는 전공은 있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 된다. 이제 상아탑의 빼앗긴 자부심을 되찾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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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listen-liste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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