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가짜뉴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 임준수 (micropr@gmail.com)
  • 승인 2017.03.21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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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의 캠페인 디코딩] PR관점에서 해석하는 뉴스의 외피
‘뉴스’란 외피를 쓴 왜곡·선전 메시지로 세계 각국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미국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가짜뉴스 시대 공중관계 중재자로서의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살펴봅니다.

① 가짜뉴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② 트럼프 시대 美 기업 겨눈 보복형 테러
③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더피알=임준수] 가짜뉴스(fake news)가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가짜뉴스 현상은 정치적 편향과 관계있지만 최근엔 비즈니스 영역으로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모든 문제가 그러하듯 이 역시 새롭게 생겨난 현상이라기보다는 존재하던 문제가 가짜뉴스라는 외피를 쓰고 재등장하는 것이다.

이전부터 존재하던 문제가 가짜뉴스라는 외피를 쓰고 재등장하고 있다.

PR 관점에서 가짜뉴스 논란은 조직과 기업이 사람들의 지각과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 가짜뉴스를 활용하는 데 따른 문제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과거 조직의 PR 관련 가짜뉴스 논란은 ‘비디오뉴스릴리스(VNR)’에서 있었다. VNR은 기업의 홍보실이나 PR회사가 방송뉴스를 위해 제공하는 동영상 보도자료이다. 편집 없는 녹화영상 원본 테이프인 B롤(B-roll)과 달리, VNR은 방송보도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언론이 원하는 인터뷰나 사운드바이트(육성발언) 혹은 기업 내부의 자료화면을 편집해서 제공한다.

1993년 펩시코(PepsiCo)사의 다이어트 펩시 캔에서 주사기가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미 전역에서 모방신고가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펩시가 택한 대응방안이 VNR이었다. 펩시는 자사 제품 생산라인에서 왜 주사기와 같은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주는 VNR을 제작해 TV방송국에 배포했다. 이는 미국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역사에 전설로 남을 만큼 강력한 한 방이 됐다는 평가다.

시대 따라 바뀐 가짜뉴스 현상

이후 조지 부시 정권(2001-2009) 하에서 정부 조직들이 VNR을 이용해 정권 홍보에 열을 올리면서 정치적으로 가짜뉴스 논란이 불거졌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정보를 가공해 이라크를 침공했던 부시 정권은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는다. 특히 부시가 재임에 성공한 후 이런 현상은 더 심해졌는데, 2005년 뉴욕타임스는 방송뉴스에서 계속되는 부시 정권 홍보성 보도의 이면에 정부 조직이 제공한 VNR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쓰이는 문제를 고발하는 특집기사를 낸다.

부시 정권은 vnr을 이용해 방송뉴스에서 적극적으로 정권을 홍보했다. 이를 비판한 2005년 3월 13일자 뉴욕타임스 기사 일부.

일례로 켄자스주의 한 이라크계 미국인은 로컬뉴스 인터뷰에서 ‘이라크를 후세인의 압제에서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부시 대통령’이라고 말했는데, 이 대목은 미 국무부가 만든 VNR에 나온 장면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또 다른 방송뉴스에서는 ‘미 공항의 안전을 더 강화한 부시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라는 리포팅과 함께 부시 정부가 거둔 ‘또 하나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따랐는데, 마이크를 잡고 보도했던 사람이 기자가 아니라 미 교통안전국의 PR전문가임이 밝혀졌다. 여기서도 VNR의 장면을 내보내면서 보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은 윤리적 위반을 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흑인계 텔레비전 방송 진행자 암스트롱 윌리엄스는 부시 정권의 주요 교육정책인 ‘아동낙오방지법’에 대한 지지를 보내며 부시와 교육부 장관을 띄워줬는데, 교육부가 고용한 다국적 마케팅·PR 회사 케첨(Ketchum)으로부터 수억원의 비용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탄로나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물론 VNR로 인한 여론 조작의 문제가 PR인이 책임질 문제냐, 아니면 보도할 때 이를 밝히지 않은 언론사의 문제냐에 대한 논란은 있다. PR인들은 보도자료를 받아든 기자가 해당 자료를 그대로 베껴서 기사를 쓰면 기자의 잘못인 것처럼 보고, VNR을 뉴스에 보도하면서 적절한 편집이나 정보 제공자를 공표하지 않고 내보낸다면 기자의 직업윤리 문제이지 PR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맞는 이야기다.

20세기 폭스사의 무리수

반면 최근 20세기 폭스사가 영화 ‘어 큐어 포 웰니스(A Cure For Wellness)’ 홍보를 위해 가짜뉴스를 만든 경우는 조금 다르다. 폭스사의 홍보 대행을 맡은 뉴레전시 프로덕션은 지역 일간지 이름을 연상케 하는 5개의 가짜뉴스 사이트와 미 정부의 의료보험 관련 공식 웹사이트(HealthCare.Gov)를 모방한 ‘HealthCureGov.com’이라는 사이트를 만들고 자극적인 제목의 가짜뉴스를 올렸다.

20세기 폭스사는 영화 홍보를 위해 ‘healthcare.gov’(위)를 모방한 ‘healthcuregov.com’ 사이트를 만들고 여러 가짜뉴스를 올려 비판을 받았다. 각 사이트 메인 페이지 화면 캡처

“트럼프와 푸틴이 선거전에 스위스의 리조트에서 만났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오른 레이디 가가가 무슬림에 헌정하는 퍼포먼스를 준비 중”이라는 식이었다. 버즈피드 보도에 따르면 이런 제목에 낚여 퍼나른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또 하나의 가짜뉴스는 “미 의학협회가 트럼프 관련한 우울증을 ‘트럼프 우울장애’로 명명하면서 전 국민의 약 1/3이 이런 장애를 겪고 있으니, 이 심각한 질병의 위험을 (영화의 홍보 해시태그인) #cureforwellness를 이용해 널리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입소문을 내고 영화 홍보 웹사이트로의 방문을 유도하기 위한 이런 가짜뉴스 캠페인은 미국 주요 언론과 버즈피드 등 인기 콘텐츠 유포 사이트에 의해 비판을 받았다. 업계는 이런 ‘속임수 마케팅’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행위라고 규탄했다. PR회사 에델만의 리처드 에델만 회장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도를 벗어나는 이런 장르의 PR행위는 실제로는 역효과를 낼 것”이고 “재미있지도 않다”고 날선 코멘트를 했다.

결국 20세기 폭스사는 “폭스사가 매일 소비자와 더 나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디지털 캠페인은 모든 점에서 부적절했다”는 공식 사과문을 냈다. VNR이 진짜뉴스처럼 보도되는 사건이나, 폭스사처럼 페이크뉴스를 만들어 영화를 알리려 한 시도들은 홍보를 위해 가짜뉴스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피해자라기보다는 가해자이다.

임준수
시러큐스대 교수

현재 미국 시러큐스대학교 S.I. Newhouse School의 PR학과 교수다. PR캠페인과 CSR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효과에 관한 연구를 하며, The Arthur Page Center의 2012-2013년 Page Legacy Scholar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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