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라도 쓰나? BBC가 분석한 테무의 ‘비결’
노예라도 쓰나? BBC가 분석한 테무의 ‘비결’
  • 김경탁 기자 (gimtak@the-pr.co.kr)
  • 승인 2024.03.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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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는 어떻게 온라인 쇼핑의 세계를 뒤흔들고 있나”
중국 내에서 이미 검증된 방법…그 뒤의 위험성과 전망
프랑스 하원의회는 3월 14일 세계 최초로 저가 패스트패션 업체들을 규제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법안에는 중국의 대량 생산업자들로부터 저가의 패스트 패션을 구매자들에게 덜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련의 조치들이 담겨있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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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김경탁 기자 | 개인차가 있겠으나, 제일 많이 뜨는 스마트폰 광고가 쿠팡에서 테무(TEMU)로 바뀐 듯한 느낌이다. 폰에 테무 앱을 깔아놓고 한동안 쇼핑을 했지만, 석유화학성분 느낌의 악취가 독하게 나는 가방을 몇 번 반품·폐기한 후로 사용이 뜸해진 영향일 수도 있겠다.

출시 1년여 만에 미국 이커머스시장 1위를 차지한 중국계 쇼핑플랫폼 테무는 극단적으로 낮은 가격과 공격적 마케팅으로 세계 이커머스를 점령할 기세지만, 급성장 이면에 묻혀있는 몇몇 문제와 급성장 그 자체 때문에 언론과 여론의 관심과 견제(?)를 동시에 받고 있다.

영국의 공영방송국 BBC는 최근 ‘How Temu is shaking up the world of online shopping(테무는 어떻게 온라인 쇼핑의 세계를 뒤흔들고 있나)’라는 기사를 통해 테무의 사업비결부터 테무를 둘러싼 여러 논란과 의혹, 의문들에 대해 보도했다. 기사의 시작은 슈퍼볼 이야기였다.

수펴볼과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의 힘

미국인들만의 잔치이지만 미국 내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인 프로풋볼(NFL) 슈퍼볼의 올해 시청자는 1억2300만 명에 달한다. 1969년의 아폴로11호 달 착륙 중계방송 이래 역대 최고기록이라는데, 테무의 월간 미국인 사용자 수 추산 1억5200만 명보다는 적다.

“억만장자처럼 쇼핑하기”라는 슬로건을 들고 2022년 미국에 처음 출시돼 현재 세계 49개국에 진출해있는 테무가 2023년 한 해 동안 지출한 광고비는 약 17억 달러 정도다. 그리고 올해 슈퍼볼 당일 미국인들은 TV중계방송에서 30초짜리 테무 광고 6편을 시청했다.

통상적인 30초짜리 슈퍼볼 광고비가 약 700만 달러(93억8천만원 상당)이고, 올해 6편을 내보냈다면 대략 4200만 달러(562억8천만원 상당) 정도의 광고비를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리고 광고효과는 기대이상이었다.

테무가 집행한 6편의 2024 슈퍼벌 광고 중 한편
테무가 집행한 6편의 2024 슈퍼볼 광고 중 한편

시밀러웹 데이터에 따르면 슈퍼볼 당일인 2월 13일 전 세계에서 테무 웹사이트와 앱을 탐색한 사람은 820만 명에 달했고 다운로드 수도 급증했다. 이날 방문자 수는 이틀 전인 일요일에 비해 25%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아마존과 이베이 방문자는 각각 5%, 2% 감소했다.

“테무는 ‘스테로이드 맞은 아마존’이라고 할수 있죠” 산업데이터분석기업 글로벌 데이터의 닐 손더스 리테일 부문 대표가 한 말이다. 그는 테무의 슈퍼볼 광고 효과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구독자 수 1만명 미만)들에 상당히 많은 마케팅비를 투입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유튜브와 틱톡,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채널에서 활동중인 수많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이 테무의 스폰서를 받아 테무에서 판매되는 물건을 홍보하고, 자신의 구독자들에게 테무에서 쇼핑하라고 제안하는 콘텐츠를 올린 것이 성과로 돌아왔다는 설명이다.

시밀러웹의 이네스 듀랜드 수석 디지털 컨설턴트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은 강력한 커뮤니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제품을 보증한다는 말은 소비자들에게 해당 제품에 대한 강한 신뢰를 준다”고 지적했다.

데이터 개방&유통 단순화…따라오는 리스크

이커머스 전문가인 듀랜드 수석은 아마존과 대비되는 테무의 경쟁력을 대규모 데이터 수집에 집중하는 시스템과 개방성에 기반한 유통구조 단순화로 설명했다.

테무는 가장 많이 검색되고 클릭된 제품·품목 등의 정보가 포함된 소비자 트렌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개별 제조업체에 무상으로 제공한다. 아마존이 이런 데이터를 제조업체들에게 프리미엄을 얹어서 판매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제조업체는 이런 데이터를 활용해 마켓 테스트를 한다. 테무에 올라가는 판매 페이지에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 AI생성 이미지가 사용된다. 그래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제품이 쇼핑 리스트에 올라올 때도 종종 있다고 듀랜드 수석은 지적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제조업체는 공장에서 제조한 제품을 다른 유통과정 없이 곧바로 항공화물로 소비자에게 발송한다. 물류허브는커녕 유통업체가 재고를 쌓아두는 대형창고의 필요성조차 거의 없다시피 한 구조다.

물류비용이 최소화되고 테무에서 부과하는 수수료 외에 중간유통마진이 거의 없어서 극도로 낮은 제품 가격이 가능해진다. 미국 등 다수 국가의 면세 최저기준(한국 수입기준 미화 150달러, 미국 수입 기준 800달러, 2016년에 200달러에서 상향됨)을 넘지 않는 금액이 되는 것이다.

고객의 선호와 선택이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마이너 취향의 제품들을 압도적으로 낮은 가격에 주문할 수 있다는 장점에 더해진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결합은 테무에 대해 설명할 때 언급되곤 하는 ‘쇼핑하는 재미’의 원천이다.

다만, 제조업체가 직접 소비자에게 제품을 발송하는 방식은 다른 말로 하면 그 거래에 대해 책임지고 감시하는 제3자가 아예 혹은 거의 없게 된다는 뜻이다. 불법적 거래에 테무 플랫폼이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글로벌 물류회사 유니크 로지스틱스 인터내셔널에서 고객경험을 총괄하는 미키 디아즈 COO는 “영국 정부가 이미 테무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며 “주목 대상에는 영국 내 거래가 금지됐음에도 이런 허점 때문에 수입된 무기의 판매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2024년 2월 23일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있는 미국 세관국경보호국 해외우편 검사시설에서 적발된 불법 제품들. 가장 위에 있는 것부터 천장 조명기구에 숨겨져 있던 엑스터시 알약들, 속옥 포장에 숨겨진 마리화나, 짝퉁 롤렉스시계, 위조지폐. 미국 정치권은 현재의 과세규정이 매년 수억 개의 중국산 패키지 소포가 합법성에 의무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도 없이 미국 시장에 진입하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주목하고 있다. AP
2024년 2월 23일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있는 미국 세관국경보호국 해외우편 검사시설에서 적발된 불법 제품들. 가장 위에 있는 것부터 천장 조명기구에 숨겨져 있던 엑스터시 알약들, 속옷 포장에 숨겨진 마리화나, 짝퉁 롤렉스시계, 위조지폐. 미국 정치권은 현재의 과세규정이 매년 수억 개의 중국산 패키지 소포가 합법성에 의무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도 없이 미국 시장에 진입하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주목하고 있다. AP

대한민국 공정거래위원회도 3월 13일 발표한 ‘해외 온라인 플랫폼 관련 소비자 보호 대책’에서 “국내 플랫폼에 대한 역차별 우려를 해소하고 해외 사업자의 국내법상 의무 준수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 유통이 금지된 약품과 의료기기 유통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으며 관세청은 통관 단계에서 불법 짝퉁 검사 물량을 늘리는 등 단속을 강화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시·감독은 수입된 판매제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식이어서 한계가 있다.

진짜 노예노동?

테무를 겨냥한 문제적 이슈 중에는 영미 정치권에서 제기한 ‘강제 노역’ 혹은 ‘노예 노동’에 연루됐을 가능성에 대한 것도 있다. 극도로 저렴한 가격의 원인이 ‘노예 노동 의존’ 아니냐는 질문 그리고 그 의혹의 사실여부를 검증할 투명성이 공급망에 없다는 지적이다.

미국 하원의회의 ‘미국-중국공산당 간 전략 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통칭 중국특위)는 지난해 6월 ‘패스트 패션과 위구르 대량학살’ 관련 조사 중간 보고서에서 “테무의 공급망이 강제노동으로 오염될 위험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또한 영국 하원의회의 알리시아 키언스 외교위원장은 테무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생산지 중에 ‘위구르인 강제 노역’으로 문제가 된 지역이 포함돼있다고 지난해 12월 BBC 인터뷰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미 하원 중국특위는 특히 “테무에는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UFLPA) 준수를 보장하는 시스템이 없다”면서 “이 회사 시스템은 강제 노동으로 만든 제품이 포함되더라도 아무 문제없이 정기적인 미국행 제품 선적이 이뤄지도록 보장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영미 정치권에서 제기한 일련의 의혹에 대해 테무 측은 “우리 회사의 기준과 관행은 다른 메이저 플랫폼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서 강제 노동 연루 의혹과 관련된 모든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강제노동(노예), 형벌 노동(수형자), 아동 노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입점상인과 제품공급업체, 서드파티(물류·마케팅 등)를 포함한 모든 관계회사들에 각 회사가 위치한 지역의 노동관계법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측의 해명에서 ‘각 회사가 지역의 노동관계법 준수’라는 대목은 묘한 이질감을 준다. 대부분의 ‘지역’이 중국 내부인데, 중국이라는 나라의 내부적 특수성이 과연 ‘글로벌 스탠다드’를 충족하는지에 대해서는 세계적 공감대가 있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프랑스 하원의회는 3월 14일 세계 최초로 저가 패스트패션 업체들을 규제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법안에는 중국의 대량 생산업자들로부터 저가의 패스트 패션을 구매자들에게 덜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련의 조치들이 담겨있다. AP/뉴시스
프랑스 하원의회는 3월 14일 세계 최초로 저가 패스트패션 업체들을 규제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법안에는 중국의 대량 생산업자들로부터 공급되는 저가의 패스트 패션이 구매자들에게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조치들이 담겨있다. AP/뉴시스

상하이에 본사를 둔 전략적 시장 인텔리전스·전략회사 차이나마켓리서치그룹(CMR)의 설립자 숀 레인 이사장은 테무의 모회사 핀둬둬를 “중국 이커머스계의 괴물”이라고 설명했다.

앞에서 언급한 제조업체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M2C’의 유일한 중개자로 테무 만이 자리하는 방식은 핀둬둬가 중국 내수시장에서 이미 성공을 거뒀던 것과 동일한 사업모델이다.

레인 이사장은 테무 플랫폼에 접속하면 산업용 안전화(발가락 부분을 강철로 보호하는)부터 노인과 임산부의 양말 신기를 도와주는 장치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제품들을 빠르게 볼 수 있다며, 대부분의 제품들은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전역에서 모든 사람들이 핀둬둬 플랫폼을 통해 온갖 생필품부터 전자제품까지 쇼핑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 레인 이사장은 핀둬둬가 테무를 만든 이유에 대해 중국 내수시장 위축에 따른 위기 타개책의 일환이었다고 덧붙였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중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알리바바는 테무와 함께 세계 이커머스 업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는 알리익스프레스의 모회사다. 그리고 2022년에 테무를 론칭한 핀둬둬는 2023년 12월부터 알리바바와 엎치락뒤치락 1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레인 이사장은 “중국인들은 중국 기업들이 아마존 같은 미국의 이커머스 드래곤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전했다. 핀둬둬(테무)와 알리바바(알리익스프레스)가 중국인들에게 자부심과 애국심의 큰 원천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레인 이사장은 앞으로 이 회사들이 2~3년 동안 이익과 상관없이 브랜드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핀둬둬가 중국에 출시되었을 때도 단순히 시장 점유율 확보만을 위해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팔았다”고 덧붙였다.

닐 손더스 글로벌데이터 리테일 대표는 앞으로 테무 입점을 요청하는 곳이 더 늘어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아마도 약간 더 비싼 제품들이 앱과 사이트 등에 올라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초저가 쇼핑에서 테무의 유일한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 2월 초 입점 수수료와 판매 수수료 전액 면제를 특전으로 내걸고 “한국산 상품을 판매하는 ‘케이베뉴’(K-venue) 입점 판매자를 모집한다”고 밝힌 바 있고 올해 안에 한국에 통합물류센터(풀필먼트·FC)를 구축하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쿠팡과 네이버의 안정적 양자체계로 자리잡은 것 같았던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어떤 변화가 계속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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