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부수 역행하는 광고비, 기업들만 ‘죽을 맛’
발행부수 역행하는 광고비, 기업들만 ‘죽을 맛’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3.04.0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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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부수=광고단가 공식…기업이 가장 원해

한국ABC협회가 2년 연속으로 부수공사를 통해 각 신문사들의 발행·유료부수를 공개했다. 신문광고 단가를 발행부수를 통해 형평성에 맞게 책정하도록 도입한 제도지만 오히려 신문사-기업 간 감정의 골만 깊어지게 하는 꼴을 낳고 있다. 유력 신문사는 발행부수대로 광고단가를 내놓으라 기업들에 아우성이고, 기업들은 누군 올려주고, 누군 안 올려줄 수 없어 눈치 보기에 바쁘다.

#. 얼마전 대기업 A사의 한 임원은 B일간지 광고국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B지 광고국장은 “C일간지와 우리 발행부수가 열 배 가까이 차이 나는데, 신문 광고단가는 두 배 차이도 안 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광고단가를 발행부수에 맞게 상향 조정 해달라는 압력이었다. A사 임원은 B지를 올려주면 C지가 “왜 거기만 올려줬느냐”며 득달같이 달려들게 불 보듯 뻔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더피알=서영길 기자] 국내 광고시장이 갈수록 어려워지며 최근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사 위주로 기업들에게 광고단가를 올려달라고 압력을 넣는 곳이 늘고 있다. 100만부를 찍는 신문사와 10만부를 찍는 신문사의 광고단가 책정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메이저 신문사 입장에선 발행부수가 적은 군소 매체가 오히려 수익률이 좋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더피알>의 조사결과 한 유력 경제지와 군소 경제지의 발행부수는 열 배 가까이 차이 났지만, 같은 조건(같은 요일의 뒷면 전체 광고)의 전면광고 단가는 군소지가 유력지의 70% 수준에 육박했다.

▲ 자료사진.

예컨대 100장의 신문을 찍는 언론사가 기업으로부터 광고단가 1만원을 받았다면, 그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되는 신문을 찍는 언론사가 7000원 정도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 메이저 신문사 광고 관계자는 “부수를 많이 찍어내는 만큼 인건비, 운송료, 지면비용 등이 더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발행부수 10분의 1 수준의 신문사와 우리 광고단가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니 경영구조상 누가 이익이겠느냐”고 반문하며 “기업들의 이런 불합리한 광고단가 책정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발행부수는 10배차, 광고단가는 70%선

하지만 광고단가를 놓고 이 눈치 저 눈치 봐야하는 기업들 입장도 죽을 맛이다. 그 누구보다 발행부수대로 단가를 매겨 광고를 집행하고 싶은 곳이 바로 기업들인데도, 신문사 간 이권과 복잡한 역학 관계가 얽혀 있어 정석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모 대기업의 한 임원은 “유력지들이 ‘(발행부수가 낮은 신문사의)광고비용을 낮추든지, 우리를 올리든지 하라’며 애먼 기업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 임원은 “발행부수에 맞춰 효율적으로 광고 집행하기를 바라는 곳은 그 누구보다 기업들 일 것”이라고 강조하며 “누구인들 1만부 찍는 곳에 광고하고 싶겠느냐. 10만부 찍는 곳에 광고하고 싶은 건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임원은 “하지만 발행부수대로 단가를 올리거나, 내릴 수가 없다. 한 신문사의 단가를 올리면 다른 곳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기업 입장에선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요즘은 포털로 기사가 많이 읽혀, 100만부를 찍는 신문사든 1만부를 찍는 신문사든 기사의 파급력은 비등비등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기업의 관계자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신문사들이 무턱대고 기업을 쪼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기업들 스스로가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들 입장에선 삼성같은 리딩 컴퍼니가 FM대로(발행부수대로) 치고 나가주길 은근히 바라는 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광고계의 ‘큰 손’을 구실 삼아 눈치껏 따라가려는 기업들이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각에선 ABC 부수공사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ABC협회는 신문 광고시장의 투명성과 형평성을 위해 지난 2011년부터 해마다 각 신문사들의 발행·유료부수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유력지 광고국 관계자는 “현재 ABC 부수공사가 유명무실한 상태다. 발행부수 별로 광고단가가 책정되기는커녕, 원턴식(신문사별로 한 번씩 광고를 주는 것) 광고 집행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기업이라든지 정부부처도 발행부수대로 광고 집행을 안 하는 상황인데, 일반 기업들이 움직이겠느냐”며 “차라리 중소기업이라든지 외국계 회사는 시장논리에 따라 정확히 광고단가 집행을 한다. 많이 보는 신문에 광고비를 더 주고 광고를 낸다는 얘기다”라고 강조했다.

“ABC 제도, 조기 정착 어려울 것”

이처럼 ABC 부수공사 제도가 본래 의도대로 활용되고 있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ABC협회 측도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태다. 박용학 ABC협회 사무국장은 “우리는 기본적으로 조사를 하는 기구다. 최대한 객관적인 자료로 조사를 잘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도 “이렇게 만든 자료가 실제 언론사나 광고주(기업)에게서 본 의미대로 잘 활용이 되고 있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사무국장은 “올해는 신문 매체 간 비교가 용이할 수 있도록 보고서 형태로 자료를 내놓을 예정”이라며 “조금 더 다듬어서 언론사와 광고주들이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오는 6월이나 7월 중 설명회를 가질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학계는 국내 ABC 제도의 조기 정착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유홍식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교수(한국언론학회 연구이사)는 “신문시장도 위기고, 경기도 어려워지며 기업들이 광고비를 보수적으로 책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고단가가 발행부수대로 조정되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 교수는 포털사가 뉴스의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도 ABC 제도 정착의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하며 “당장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ABC협회가 발행부수+신문기사 웹 로그분석(트래픽) 등을 연동해 자료를 내놓으면, 언론사와 광고주들 간 동의할 접점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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