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아진 애플광고, 의도적이거나 불가피하거나
말 많아진 애플광고, 의도적이거나 불가피하거나
  • 박재항 (parkjaehang@gmail.com)
  • 승인 2013.08.0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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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항의 C.F.] 광고 속 ‘메이드 인(Made in)’의 실종

[더피알=박재항]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원은 지난 7월초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공산품에 관례처럼 써왔던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대신 ‘코리안 메이드(Korean Made)’란 용어를 쓰자고 제안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메이드 인 코리아’는 어디서 만들었는지 국가가 강조돼, 기존에 특정 분야에서 우월한 이미지를 구축한 선진 국가들에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한다. 예를 들자면 독일의 자동차, 프랑스의 패션, 이태리의 가구와 같이 특정 업종에선 어디서 만들었는가를 표기하는 것 자체가 제품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산업화가 늦어서 ‘코리아’라는 원산지명이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못한다고 한다. ‘코리안 메이드’로 하면 사람이 먼저 표기가 돼 소프트시대에 적합하고, 창의성을 강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대적으로 산업화에 늦은 편인 오스트레일리아나 캐나다가 ‘오스트렐리안 메이드(Australian Made)’, ‘그레이트 캐네디언 메이드(Great Canadian Made)’로 쓰고, 시계와 금융 등에서 독보적인 자산을 가지고 있는 스위스마저 최근에 ‘스위스 메이드(Swiss Made)’라고 쓰고 있다고 한다.
 

▲ 최근 들어 제품광고에서 ‘메이드인(made in)’이란 문구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사진은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캘리포니아의 애플이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한다)’란 표기 대신,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캘리포니아의 애플이 디자인)’로 바꾼 애플의 새 광고.


상전벽해(桑田碧海)에 금석지감(今昔之感)이다. 70년대 말 학교 선생님께서 ‘메딘쩨’라는 말을 아냐고 물어보셨다. 아무도 그런 말을 들어본 친구가 없었다. 선생님 말씀이신즉, 제품 라벨에 붙은 ‘메이드인(Made in)’과 나라이름이 표기된 것을 가지고 시장상인들이 그대로 발음해 메딘쩨라고 했단다.

한국에서 공산품이 거의 나오지 않던 시절이니 메딘쩨는 바다 건너온 수입상품을 뜻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품질이 좋고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강조하며 쓰였다. 이는 몇 년 전 모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마데전자(메이드 인 차이나를 재미있게 발음)’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메딘쩨가 국가주의 중심의 교육과 만나 만든 과거의 삽화는 2000년대 개그 프로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여유가 없다. 초등학교 반공도덕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었다. 아버지가 해외 출장을 다녀오셔서 딸에게 예쁜 서양 어린이 모양의 인형을 선물로 주신다. 딸이 기뻐하며 ‘이런 예쁜 인형을 만든 사람은 인형과 똑같이 생긴 서양 사람일 거야’라고 하자, 아버지는 딸에게 인형에 붙은 라벨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자랑스럽게 ‘Made in Korea’라고 적혀 있다. 한국 경제가 그렇게 발전됐던 것을 모르고, 사대주의적인 감상에 빠져 있던 딸은 부끄럽지만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메이드인(Made in)’이란 표기를 하는 자체에 감격했던 시기를 지나, 그것을 개그 소재로 즐기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보다 차별적 우위를 갖기 위해 새롭게 바꾸자는 말까지 나온 것이다.

 

Made in Korea vs. Korean Made

글로벌 기업들이 보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해외 생산을 늘려가면서 과연 ‘메이드인~’의 딱지가 의미 있느냐는 물음이 이미 90년대부터 제기됐다. 가령 파나소닉TV를 샀는데 태국의 마쯔시다단지에서 생산된 것이면 일본제인가 태국제인가 하는 식의 문제다. 꼼꼼한 일본 소비자들의 일부는 좀 비싸더라도 일본에서 생산된 것을 산다고도 했다. 실제 같은 사양이고, 운반비가 적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생산된 것이 더 비싸게 팔리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요즘 애플은 어느 나라에서 자사 제품이 만들어졌는가 하는 골칫거리를 안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애플 제품의 상당수는 중국 팍스콘에서 생산된다. 그런데 팍스콘은 지난해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국제적 이슈의 중심에 선 바 있다. 그래서인지 애플은 언제부터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필자가 확인한 바로 2011년부터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캘리포니아의 애플이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한다)’이란 표기를 제품에 새겼다.
 

▲ ‘designed by you. assembled in the usa(당신이 디자인하고 미국에서 조립됐다)’를 내세운 모토롤라의 스마트폰 광고.

사실 올해 6월 애플이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캘리포니아의 애플이 디자인)’를 내건 광고를 대대적으로 집행하기 전까지는 바로 위에서 얘기한 표기가 제품 라벨에 붙어있는 지도 몰랐다.

애플은 2007년부터 젊고 트렌디한 ‘Mac’이라는 친구와 뚱뚱하고 시대에 뒤쳐진 느낌을 주는 ‘PC’로 지칭된 인물을 대비시킨 ‘맥 대 PC(Mac VS PC)’ 시리즈광고를 진행하긴 했지만, 기업 차원의 광고로는 그 유명한 ‘1984’와 1997년에 선을 뵌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기)’를 잇는 노력을 기울인 새 캠페인이었다.

그런데 왜 굳이 ‘중국에서 조립’이란 의미의 ‘Assembled in China’는 뺏을까? 어찌 보면 문구 하나를 제외한 것은 사소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의 광고들과 비교해 보면 크게 다른 점이 세 가지가 있고, 이는 애플이 정말 심각한 상태일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생각된다.

 

애플다움 없는 애플광고는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의 차이

첫째, 애플의 이번 광고물은 과거 ‘1984’와 ‘Think different’에 비해 말이, 즉 카피가 많다. ‘1984’에서는 ‘빅브라더’가 화면에서 계속 떠들기는 했지만, 빅브라더의 강압적이고 교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일 따름이다. ‘1월 24일, 애플 컴퓨터가 맥킨토시를 선보입니다. 당신은 왜 1984년이 (소설)1984와 다른지 보게 될 겁니다’는 마지막의 한 문장이 애플에서 하는 얘기의 전부다.

또 ‘Think different’의 인쇄광고의 경우, 슬로건 말고는 아무 카피가 없다. CF에는 내레이션이 있지만, 애플보다는 세상을 바꾼 ‘미친’ 사람들에 대한 묘사이고, 애플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런데 이번 광고에서 애플은 자신들이 구구절절 어떻다고 얘기를 한다.

둘째로 애플의 새 광고, 특히 인쇄광고는 그 카피에서 1999년 나온 HP의 ‘Rules of Garage(차고의 규칙)’를 연상시킨다. 개인적 취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1984’나 ‘Think different’는 새로움에 압도돼 아무도 비슷하다는 광고를 언급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CF에서 특히나 애플의 각종 제품들이 연이어 노출되는데, 제품이 거의 나오지 않았던 앞선 광고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카피 한 줄 한 줄과 그림과 화면의 완성도는 앞의 광고들보다 뛰어나다. 그런데 ‘앗’하고 놀라게 하는 ‘애플다움’이 없다. ‘1984’나 ‘Think different’가 ‘강남스타일’이었다면, 이번 것은 ‘젠틀맨’과 같은 느낌이다. 투자도 많이 했고, 작품도 세련됐지만 자발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부족하다. 문제의 소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심정에 ‘Assembled in China’를 슬쩍 뺀, 좋게 말해 실용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용감하지 못한 현재 애플의 모습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7월초 휴대폰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모토롤라가 ‘Designed by you. Assembled in the USA(당신이 디자인하고 미국에서 조립됐다)’를 내세운 스마트폰 광고를 시작했다. 애플에 딴지를 걸면서 편승해 가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비춘 광고이다. 여기서도 ‘Made in’은 자취가 없다. 이러다간 ‘Made in’이 정말 추억의 용어가 될 지도 모르겠다. 
 

 

 
박재항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미래연구실장
前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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