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문화계의 ‘블랙홀’
대한민국 문화계의 ‘블랙홀’
  • 김현성 (admin@the-pr.co.kr)
  • 승인 2013.11.2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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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의 문화돌직구]압도적 TV 의존도, 문화산업 발목

우주에만 블랙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문화계에도 블랙홀이 존재한다. 바로 텔레비전이다. 은하계의 블랙홀이 빛과 주변의 전부를 빨아들인다면 문화계의 블랙홀은 사람들의 시간과 관심을 집어삼킨다.

우리 문화산업의 텔레비전 의존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문화의 매스미디어 의존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문제는 다양한 매체들 중에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크다는데 있다. 몇 년 사이, 인터넷이 텔레비전의 효과적이고 강력한 대안으로 급부상했지만 최근의 흐름을 보면 방송 콘텐츠들이 인터넷을 끌어안으면서 텔레비전은 전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자료사진. 백남준 1984년 작 ‘인생은 태엽이 없다’

얼마 전 종영된 엠넷(M-net)의 <댄싱9>은 춤이라는 소재를 방송에 접목해 큰 호응을 얻었다. 발레, 현대무용, 고전무용, 댄스스포츠, 길거리댄스 등 문화상품으로서 비주류였다고 할 수 있는 춤의 다양한 매력을 대중에 알렸다. 출연자들은 스타가 됐고(무용수도 대중적인 스타가 될 수 있다!) 시청률은 날아올랐다. 방송이 종영되고 열린 세 번의 갈라쇼도 모두 매진됐다. 전국 투어 공연을 준비 중이다. 다시 한 번 텔레비전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온통 불황이라는 말만 들리는 출판계에서 텔레비전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중기를 타고 내려오는 신)다. 드라마 주인공이 손에 들고 있기만 해도, 인테리어 소품으로 꽂혀 있는 책을 카메라가 비추기만 해도 판매량이 훌쩍 뛴다. 문학상을 다수 수상한 문단의 중견작가의 소설이 우연히 드라마에 나오면서 며칠 사이 몇 만 권이 팔려나가기도 했다. 그 전까지의 판매부수에 몇 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방송에 잠깐 노출된 것을 보고서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에게 책에 대한 소비욕구가 있음을 의미한다. ‘책 한 권 읽고 싶은데’ 하는 욕구가 내재해 있고, 그러던 참에 연기자의 손에 들린 한 권의 책을 본다. 자주 보는 드라마에 대한 호감도와 함께 잠재해 있던 책에 대한 욕구가 눈을 뜬다.

그런데 궁금하다.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그 욕구는 어떻게 됐을까? 결국 다른 책을 사는 것으로 해소됐을까? 아니면 그렇게 잠재된 채로 어디선가 건드려주길 기다리고 있었을까? 혹은 그러다 소멸해버릴 정도로 미약한 욕구인 것은 아닐까?

대중음악이야말로 텔레비전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은, 혹은 가장 밀접한 콘텐츠일 것이다. 몇 년 사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음악서비스가 대중화 되면서 음악시장의 새로운 활로가 되었지만, 인지도 중심으로 순위가 매겨지는 음악차트를 고려했을 때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아이돌, 드라마 OST 등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이 사실이고, 결국 우회적으로 대중음악의 텔레비전 의존도는 더욱 견고해지는 것이다. ‘무도가요제’ 때마다 불거지는 제작사들과의 마찰은 이러한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문화의 텔레비전 의존도는 수치화 해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현상을 놓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침체된 문화계에 신비로운 구원의 손길이 된다면 그만큼 문화의 자구능력은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화의 조력자로 기능해야 할 텔레비전이 대중의 관심과 욕구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때 콘텐츠와 매체 간에 지금과 같은 심각한 불균형이 초래된다.

다양한 인적 커뮤니티의 경로를 통해 문화 콘텐츠의 매력을 알게 된 사람들이 무용을 관람하고, 책을 구입하고, 뮤지컬과 연극을 보고, 대중가수의 공연장을 가득 채울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텔레비전의 도움 없이도 문화의 매력을 쫓아 그것을 향유하려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다면 문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그런 대중에게 좀 더 충실한 상품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여서 감흥조차 없다. 현실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고 있고 우리는 문화의 텔레비전 의존을 줄이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 자리는 그처럼 복잡하고 거창한 주제를 논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다.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자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과도한 텔레비전 의존이 문화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중대한 문제라는 것에 대한 공감대의 형성이다. 

 

 

김현성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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