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뭐길래
게임이 뭐길래
  • 최연진 한국일보 산업부 기자 (admin@the-pr.co.kr)
  • 승인 2013.12.0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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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법으로 들끓는 나라…“반드시 필요” vs. “꼰대적 발상”

게임산업이 등장한 이래 게임을 둘러싸고 이렇게 시끄러운 적이 없었다. 정치인, 업계, 시민단체, 의사, 청소년 등 각계각층이 게임 관련 갑론을박을 쏟아내고 있다. 바로 ‘게임중독법’ 때문이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올해 4월 발의한 일명 게임중독법의 정확한 명칭은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이다. 이 법안은 게임을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하겠다는 것. 따라서 국무총리 및 각 부처 장관들을 위원으로 하는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만들어 여기서 관리하며 광고 및 판매촉진 활동을 제한하겠다는 내용이다.

▲ 게임중독법을 둘러싸고 각계각층이 갑론을박을 쏟아내고 있다. 사진은 pc방 내부 모습. ⓒ뉴시스

정신의학과 의사 출신인 신 의원이 이 법을 발의한 것은 예방 활동을 통해 게임 중독을 사전에 막고, 제도적 장치를 통해 중독자 치료에 국가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이 심각하니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며 환영하고, 다른 일각에선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반발이 거세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게임 산업을 이해하지 못한 꼰대적 발상”이라는 비난까지 서슴지 않았다.

특히 게임업계의 반발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만큼 심각하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주도로 청소년들의 심야시간대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를 도입한 데 이어 게임중독법까지 등장하자, 게임업계는 정부가 게임산업을 고사하려 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게임업계의 지적재산권 수입은 7700억원으로 전체 지적재산권 수입의 85%를 차지했다. 그만큼 관련법으로 규제하면 게임산업이 크게 위축된다는 논리다.

최근에는 외산게임들이 국내 게임시장을 휩쓸며 국산게임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한때 온라인 게임은 ‘리니지’ 등 국산게임의 독무대였으나 최근엔 외산게임이 국내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국내 게임시장 1위 자리는 중국 텐센트가 인수한 미국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 내줬다. 2위로 미국 EA의 축구게임 ‘피파온라인3’가 차지하고 있으며, 10위 안에 미국 게임업체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3’도 들어 있다.

“문화콘텐츠 옥죌 우려”…문화·법조계 인사들 법안 반대 가세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게임업계들은 볼 멘 소리를 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의 핵심 키워드인 창조경제를 위해서 콘텐츠산업을 강조하고 있는데, 콘텐츠산업 중에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게임을 옥죄고 있으니 모순이라는 업계 지적이 많다.

더욱이 게임중독법과 관련해 중독 예방 및 치유를 위해 게임업체들에 1%의 게임분담금과 5%의 문화콘텐츠 분담금을 내도록 하는 법안도 제출했다. 관련 업계로서는 그만큼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에 본사나 서버를 둔 외국업체들이 선뜻 분담금을 내놓을 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되면 국내업체들만 비용을 내는 역차별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에는 문화 법조계 인사들까지 법안 반대에 가세했다. 게임 및 문화콘텐츠 관련 25개 단체가 연대해 11월19일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우리만화연대, 영화제작가협회, 게임개발자연대, 한국게임학회,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등이 참여한 위원회의 위원장은 만화가 박제동 교수가 맡았다.
 
공대위에 이처럼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한 이유는 음악, 영화, 만화, 게임 등 문화콘텐츠들을 청소년 보호라는 이유로 무조건 규제하겠다는 정부 발상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게임중독법으로 중독을 막을 수 있냐는 점이다. 청소년들에게 스마트폰과 PC,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지 않는 이상 게임 이용을 막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그렇다보니 게임 중독은 막지 못하면서 게임 산업만 위축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법조계 일각에서는 게임중독법이 발효되면 아이들의 게임 중독을 방치한 부모에 대한 법적 책임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중독 물질에 노출시킴으로서 18세 미만 자녀들의 양육을 부모책임으로 규정한 아동복지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게임업계 ‘멘붕’, 국내 게임산업 공동화 초래?

해외에서도 게임 규제는 실효성이 없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따로 게임을 규제하지 않는 미국 일본 유럽 등은 말할 것 없고,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마저 관련 규제법을 만들었다가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폐기한 뒤 업계의 자율 규제로 돌아섰다.

심지어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1년 18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폭력적 게임을 팔지 못하도록 한 캘리포니아주의 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도덕적 판단은 개인이 내리는 것으로,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다. 미국 일부 언론들은 한국의 게임중독법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비웃는 듯한 보도를 하기도 했다.

오히려 해외에서는 한국의 게임중독법을 비즈니스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연방주는 한국의 게임개발업체들이 게임중독법을 피해 독일로 옮겨오면 프로젝트별로 재정지원까지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국내 게임업체들로서는 솔깃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다.

게임중독법이 자칫 잘못하면 국내 게임산업의 공동화를 부를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정을 멀리하고 학업을 잊은 채 게임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청소년들이 있는 만큼 중독법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있고, 한편에서는 입법에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에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만큼 게임중독법안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시끄러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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