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문화정책, 안녕하십니까?
박근혜 정부 문화정책, 안녕하십니까?
  • 김현성 (admin@the-pr.co.kr)
  • 승인 2013.12.1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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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의 문화돌직구] 은밀하게 또는 치밀하게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연말로 접어드는 12월은 구세군 종소리와 크리스마스 캐럴로 들떠있습니다. 상기된 얼굴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냥 ‘안녕’ 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한 대학 게시판의 대자보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던데. 저도 그 물음에 제 나름의 답을 해야겠습니다.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이 ‘박정희의 유신’과 ‘87년 6월 항쟁’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원로작가 이제하의 소설 연재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74명의 작가들은 현대문학에 기고를 거부하기로 선언했습니다.

현대문학의 대표 양순진 씨는 사과와 함께 주간 자리에서 물러났고, 네 명의 편집자문위원도 사퇴하며 뒤늦게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입니다. 다른 분야도 아닌 순수문학을 지양하는 문예지에서, 그것도 현대문학 정도의 명망 있는 문예지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서울관의 개관 전에 전시하기로 되어 있던 서양화가 임옥상의 작품이 청와대 직원의 지시로 전시가 무산된 것입니다. 외압이란 단어가 들려옵니다.

이 전시는 6.25 동란 이후 현재까지의 한국현대미술의 면면과 방향성을 시대적으로 파악하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작품들은 모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고요. 전시가 무산된 작품 ‘하나 됨을 위하여’는 고 문익환 목사가 남북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을 건너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은유적으로 지금 이 나라의 권력지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립미술관에 그림 하나 마음대로 걸지 못할 만큼 억압적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실화를 다뤄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변호인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는 한 인터뷰에서 데뷔 후 십 년 만에 섭외가 뚝 끊겼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송강호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미개한 나라에 살고 있기에 민감한 정치적인 이야기를 담은 것도 아닌, 휴머니즘과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는 영화를, 단지 현 정권과 정치 성향이 다른 대통령을 실존인물로 다루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편하게 느끼게 된 걸까요. 그 불편함이 주연배우에게는 유형, 무형의 사회적 압력이 되고 있고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과를 떠나서 한 인물의 인간적인 면을 조명하는 것도 죄가 되는 세상입니다. 정말 안녕하지 못합니다.

국방부에서는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을 비롯한 수십 곡을 불온곡으로 지정했습니다. 뉴스에 등장한 불온이란 단어는 실로 오랜만인데 바로 7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자주 애용한 단어입니다. 그야말로 매카시즘의 한국형 번역어인 ‘종북몰이’의 노래방 버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정치권력이 문화를 억압하고 왜곡시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를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암묵적으로 빼앗기고 있습니다. 은밀하게 라고 표현한 것은 이런 것입니다.

지난달 유일한 순문학 지원 사업이자 지방의 문화 소외 지역에 우수 문학 도서를 보급하는 사업인 ‘문학나눔’ 사업의 한 해 예산 40억원이 전액 삭감됐습니다. 기존의 우수도서와 통합한다는 명목인데 자체적인 기구를 통한 문학의 선정에서 이제 도서의 선별이 관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문인들은 문학 검열을 우려하며 문학나눔 사업의 존치를 주장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꿈쩍도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년부터 지역 도서관에는 ‘그들’이 선정하고 허락한 문학 작품만이 보내질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지나친 걱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걱정은 근심으로 바뀝니다. 이처럼 권력은 은밀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문화를 굴복시키고 있습니다.

이번 정권의 문화 정책에 기대를 접기로 합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습니다. 권력이 칼을 들고 서 있기만 해도 주변은 움츠려 들고 알아서 바닥을 박박 길 수 밖에 없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러한데 어떻게 안녕할 수 있을까요. 연이어 들려오는 소식에 하도 마음이 착잡해져 저도 주위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정말 안녕하신 겁니까?
 

 

 

김현성

가수

기사제공 논객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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