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건 지키면서 하는 ‘즉각적 창의 반응’
지킬 건 지키면서 하는 ‘즉각적 창의 반응’
  • 박재항 (parkjaehang@gmail.com)
  • 승인 2024.03.04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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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항의 캠페인 인사이트] 한국에서의 인스턴트 크리액션

댓글이 콘텐츠가 되고, 매체가 되고, 밈이 광고가 되는 시대
주요 TV프로그램에 SNS, 거기 달린 댓글까지
마케터들이 눈여겨봐야 할 콘텐츠가 늘고 있다

더피알=박재항 | 슬릭백(Slick Back)이란 낱말을 2023년 10월 이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한국 청소년이 공중부양을 하듯 원을 그리며 길거리에서 춤추는 9초짜리 동영상을 틱톡에 2023년 10월 15일 올렸고, 이후 5일도 되지 않아 조회수가 2억에 육박했다고 화제가 되면서 슬릭백이란 말을 알게 되었다.

춤의 이름이 슬릭백이다. 춤을 춘 주인공과 영상을 찍고 자신의 틱톡 계정에 올린 이의 신상이 공개되었다. 대구에 사는 중학생 둘이었다. 둘 다 하룻밤 새에 40만의 ‘좋아요’와 몇 만 개의 댓글이 달려 놀랐다고 한다.

춤을 춘 이효철이란 학생이 엄마와 함께 인기 TV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 출연했고, 한 기업이 올린 댓글이 언급되었다.

“doing this chill mode is wiiiiild”

구멍이 송송 뚫린 플라스틱 신발로 유명한 크록스(Crocs)에서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유퀴즈’에서는 ‘이걸 이렇게 편안하게 하다니’로 번역하여 자막으로 올렸다.

의역을 했는데 번역이 약간 아쉽다. ‘chill mode’는 ‘sports mode’와 함께 크록스 신발을 신는 유형의 하나로, 신발끈을 앞으로 젖히고 신는 형태를 말한다.

크록스에서는 신발끈을 뒤로 젖힌 ‘스포츠 모드’일 때 격렬한 운동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효철 군이 끈을 앞으로 하여 뒤는 슬리퍼같이 된 ‘칠 모드’로 공중부양 춤까지 완벽하게 소화한 걸 보고 wild에 i를 다섯 개나 넣는 감탄 모드로 표현한 것이다.

댓글창은 또 하나의 매체

래퍼 이영지나 마술사 최현우 등 유명인들까지 가세하여 남긴 댓글이 워낙 많았고, 크록스에서는 영어로만 댓글을 달아 정작 당사자들은 그냥 넘겼지만 다른 이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크록스에서 댓글을 달았다는 사실 자체로 사람들은 놀라움을 댓글로 표시했다.

‘유퀴즈’에서 사회자가 크록스에서 이후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당사자 이효철 군은 ‘댓글만 남기고 도망갔다’고 답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유재석 사회자가 쿠폰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고, 이 프로그램이 11월 초에 방영된 후 크록스에서 이효철 군이 재학중인 중학교 전교생에게 크록스를 선물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약간 뒷북을 때리고 옆구리 찔러서 절 받은 듯한 크록스와는 달리 ‘유퀴즈’를 보고 빠르게 대응한 기업이 있다.

한정판 거래 플랫폼으로 특히 운동화를 주로 취급하는 크림(Kream)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슬릭백용 운동화를 선물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그 직후 중고시장에서 140만 원에서 190만 원 상당으로 거래되는 스니커즈를 선물로 보냈다.

이제 SNS의 댓글 자체도 콘텐츠이자 하나의 매체로 작용하고 있다.

밴드 ‘새소년’의 보컬인 황소윤이 인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 출연해 ‘힙스터 테스트’라는 걸 하는 장면이 2023년 1월에 나와 화제가 되었다. 힙스터인지 아닌지 가리는 네 개의 질문을 ‘피식대학’ 진행자들이 던진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냐’, ‘베를린에 가봤냐’,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보았느냐’와 함께 제시된 질문이 ‘스포티파이(Spotify)를 사용하냐’였다.

황소윤이 출연한 이 힙합 테스트 부분만 편집해 올린 유튜브 동영상에 스포티파이에서 댓글을 달았다.

‘We welcome all hipsters.’

모든 힙스터를 환영한다는 스포티파이의 이 댓글은 1만 개를 훌쩍 남는 ‘좋아요’를 받았다. 댓글에 대한 답글도 다른 댓글들이 2~3개에 그친 반면, 50개가 넘는 대댓글이 달렸다.

대댓글의 내용도 ‘스포티파이 폼 미쳤다’부터 ‘다른 음원 플랫폼에서 갈아타겠다’고 하는 등 찬사 일색이었다. 주요 TV 프로그램에 SNS, 그리고 거기에 달린 댓글까지, 마케터들이 눈여겨봐야 할 콘텐츠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콘텐츠가 광고를 낳고

어떤 콘텐츠가 화제가 되면, 그것을 자신의 콘텐츠로 활용하거나 접목하는 시도도 나온다. 슬릭백도 역시 ‘유퀴즈’에도 나왔던 충주시 공무원 ‘홍보맨’이 충주시 상수도공사 안내 홍보에 활용했다. 홍보맨이 슬릭백을 하다가 맨홀 구멍에 빠지며 웃음을 자아냈다.

박진영 JYP 대표는 이효철 군의 슬릭백 직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연습하는 장면을 SNS에 올렸고, ‘유퀴즈’에서는 한동안 출연자들에게 슬릭백을 시키기도 했다. 2024년 1월 27일 열린 V리그 올스타전에서 신영석 선수가 슬릭백을 선보여 남자부 세리머니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인기를 끌면 광고계에서는 주인공을 모델로 쓰려는 움직임이 나온다. ‘유퀴즈’에서 이효철 군과 함께 출연한 그의 어머니가 ‘거의 모든 곳에서 섭외 전화가 왔다’고 했는데, 그 ‘모든 곳’에 모델 섭외를 한 곳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그를 모델로 한 광고는 우주텍 슈즈를 표방하는 브랜드 르무통에서 마케팅 커머스 기업 부스터즈와 공동으로 2023년 12월에 TV 광고 캠페인을 선보였다.

슬릭백을 위해서는 편한 신발이 좋아 르무통을 신는다면서 춤을 추는 장면도 함께 실은 일종의 전문가 보증 형태의 광고였다. 틱톡에 영상이 오른지 한 달 보름 만에, ‘유퀴즈’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온지 한 달 만에 제작과 집행이 이루어졌으니 ‘인스턴트’의 범주에 넣을 만하다.

댓글이 콘텐츠가 된다

광고 모델과 연계되어 SNS에서의 즉각적인 댓글이 콘텐츠 겸 그 자체로 광고처럼 작용한 사례도 나왔다.

2023년 7월 13일 이효리가 ‘광고 다시 하고 싶습니다’라며 문의처까지 알려주는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한 후 이효리를 ‘모셔가기 위한’ 기업이나 지자체 등 예비 광고주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댓글창이 광고판 같은 매체가 되어, 댓글이라는 형식을 빌려 각자의 광고 문구를 선보이는 자리가 되었다. 댓글들을 놓고 광고 품평과 같은 평가가 이루어졌고, 나름의 센스와 유머를 발휘하면서 자신의 브랜드와 연결시키며 설득하는 한마당이 펼쳐졌다.

카카오페이: “지금 송금하면 될까요?”

레고코리아: “광고 전 붓기 관리는 레고 지압판 추천해 드리고 갑니다.”

지프: “지프라기도 잡고 싶어요.”

이디야: “띠리링 여보세요 효리 언니 어디야? 나 이디야.”

에이스침대: “보검이 눈치 보다 늦었다.”

노랑통닭: 채널 이름 컨펌받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효리랑통닭’으로 공식 계정 이름을 바꿔 “치킨은 함께 먹어야 맛있으니까. 너랑 나랑 효리랑 통닭.”

아시아나: “이효리는 거꾸로 해도 이효리니까 아시아나 광고 모델 계약 즉시 사명에서 ‘나’ 빼겠습니다.”

유명인 SNS에 즉각 반응

‘명성’(Fame) 자체가 자산이 되고, 광고 모델 계약에서 슈퍼스타가 ‘갑’이 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꼭 이효리를 광고 모델로 섭외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보는 매체로 기능하니, 일종의 ‘강요된 참여’의 형태로 댓글을 남긴 기업도 많았다. 다른 의미로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유명인의 SNS 포스팅을 소재로 활용하여 화제성에 편승하는 ‘즉각 창의적 반응’(Instant Creaction)은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에게서 나타나기도 했다.

BTS 멤버 뷔가 2023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며, 옷을 거꾸로 입어서 창피했다는 문자를 남겼다. 트위드 스웨트셔츠를 입었는데, 진저브레드 캐릭터가 등 쪽에 있어야 하는데 앞으로 나와 있었던 것이다.

이 사진을 보고 팬들이 ‘귀엽다’, ‘괜찮아요’ 등의 반응을 보였는데, 브랜드 당사자인 트위드가 홈페이지에서 뷔가 입은 옷 사진의 원래 앞뒤(Front-back)를 알리는 부분에서 ‘back’이라는 글자를 지워버렸다. 뷔가 입는데 앞뒤가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었다.

뷔의 팬이라면 트위드의 포스팅에 담긴 유머를 알아차릴 수 있었고, 트위드는 화제를 재생산하여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올 수 있었다.

BTS의 유튜브 채널에 나온 영상에 한 외식업체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즉각적으로 반응해 BTS 팬들을 중심으로 격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방탄TV’에서 2022년 1월 23일 ‘치폴레와 함께한 점심시간’이라는 제목의 2분짜리 영상을 공개했다. BTS 멤버들이 2021년 11월 미국 CBS방송의 토크 프로그램 ‘제임스 코든 쇼’에 출연한 뒤 점심으로 치폴레의 배달음식을 먹는 장면이 담겼다.

멤버 정국이 알루미늄 접시에 담긴 음식을 한 손에 든 채 “이거 어떻게 먹는 거야?”라고 묻고는 음식을 비비며 “치콜레? 치콜레?”라고 브랜드 이름을 묻듯이 발음했다.

이 영상이 공개된 후 치폴레 측은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지금부터 우리는 ‘치콜레’야”라는 트윗을 올렸고, “정국이 치콜레라고 말하면 치콜레”라고 쓴 팬의 게시글도 리트윗했다.

유명인의 콘텐츠와 연결하여 화제성에 편승하고, 유명인의 팬들에게 어필하는 이런 방식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트위드나 치폴레는 뷔나 정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SNS에 올린 콘텐츠라고 막 가져다 쓸 수 없고, 웃기다고 모든 게 용서되지는 않는다.

2020년 가수 비의 ‘깡’ 노래와 춤이 역주행으로 인기를 끌었다. 숙취해소 음료 ‘깨수깡’에서는 협력 마케팅을 하라는 요청이 많다며, ‘깨수깡×깡’ 컬래버 이벤트를 알렸다. 깨수깡 구매 인증 사진을 올리면 ‘1일 1깨수깡’ 라벨을 붙인 한정판 제품을 증정한다고 했다.

이때 자사 직원이 비처럼 보이게 패러디 사진을 올리고 깡 노래 음악을 사용했는데, 모두 원곡자인 비의 허가 없이 진행한 게 문제였다.

항의가 빗발치자 깨수깡 측에서는 “‘그분’을 모시기 어려웠다”면서 “시무 20조(팬들이 비에게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행동들)를 위반한 것은 사과한다”며 장난스레 응대했다가 더욱 뭇매를 맞았다. 결국 해당 사진을 내리며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지킬 건 지키면서 하는 즉각 창의적 반응(Instant Creaction)

올해 1월 말 잠실 롯데월드 근처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 후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친구가 롯데월드타워를 가리키며 ‘저기가 전청조가 살던 곳’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얘기될 정도로 작년 말 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인데, 전청조 특유의 영어와 한국어를 섞은 말투가 역시나 화제가 되었다.

특히 ‘I am 신뢰’와 ‘Next time 없어요’라는 문구가 회자되었는데, 그것을 광고에 바로 활용한 기업이 꽤 있었다. 즉각적이지만 가장 1차원적인 대응 유형이었다.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소재를 취해야 한다. 화제가 되었다고 무작정 가져다 써서는 안된다.

사회의 모든 이들이 콘텐츠의 생산자, 소비자, 전달자가 되는 세상에서 화제가 되고 공유되는 영상, 한 장면, 그림, 문구는 시시각각 생성되고 사라질 것이다.

이런 걸 우리는 ‘밈’(Meme)이라고 한다. 이런 밈을 활용한 마케팅에서는 반응 속도가 생명이다. 밈 자체에 이미 ‘유명’(Fame)해지고, ‘순간 유행’(Fad)으로 떠올랐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에는 ‘빠르게’(Fast) 그 유행이 사라지기 전에 반응을 보여야 한다.

속도 경쟁은 마치 가격 경쟁과 같다. 너무 빠르게만 하려 들면, 너무 가격을 낮추다 보면 모두 적자가 되는 것처럼 제로섬 경쟁으로 치닫기 쉽다.

어떻게 가치를 올릴 것인가, 차별화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그 해답은 창의성(Creativity)에 있다. 그래서 ‘즉각(Instant) 창의적(Creative) 반응(Reaction)’을 묶어서 ‘Instant Creaction’이란 용어를 만들어 쓴 이유다.

콘텐츠는 더욱 많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며, 밈이 생성되고 퍼지는 속도도 빨라진다. 광고계에서 그에 반응하여 콘텐츠를 생성하고 유통시키는 기술도 그 속도를 감당하려 발전하며 ‘Instant Creaction’의 사례는 계속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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