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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너무도 정치적인 뉴스!
정치적인, 너무도 정치적인 뉴스!
  • 김성해 대구대 교수 (admin@the-pr.co.kr)
  • 승인 2014.06.05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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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해의 뉴스생태계 따라잡기] 언론 자유는 투쟁의 역사

[더피알=김성해] ‘뉴스(News)’란 개념은 본래 새롭다는 의미의 ‘뉴(New)’에 뿌리를 둔다. 북쪽(North), 동쪽(East), 서쪽(West)과 남쪽(South)에서 전해지는 새로운 정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언론을 활용하려는 정치인, 기업과 이익단체 등은 그래서 뉴스거리가 될 만한 흥미롭고 이색적이며 유행에 영합할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한다. 일기예보, 교통상황, 주가시세, 스포츠, 부동산, 해외 토픽 등으로 뉴스의 종류와 양도 엄청나다.

그러나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모든 정보를 뉴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터넷, 스마트 미디어와 각종 매체를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가 넘쳐나지만 뉴스의 위기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의 진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 자료사진=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kbs 양대노조(kbs노동조합,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주최로 열린 공동 파업 출정식. ⓒ뉴시스

언론의 기원은 로마에서 발행된 악타 디우르나(Acta Diurna)로 알려진다. 오늘날 상원에 해당하는 원로원의 회의 내용을 기록해 로마 광장에 내건 문서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도입한 이 제도는 일종의 CNN 방송과 같은 역할을 했다. 연령, 재산, 직위,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공고문은 모두에게 공개돼 있었다. 당시 로마의 모든 시민은 투표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원로원 의원들은 전쟁, 세금, 이민자 등에 관한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주장에 대해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공화정 로마 이후 대중에게 필요한 정치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언론은 상당 기간 등장하지 않았다. 물론 중국 당나라의 저보(邸報)나 송나라의 조보(朝報)와 같은 공문서 전달을 위한 매체는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정부의 정책이나 주요 결정 사항을 지방 관리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일반 대중은 이용할 수 없었다. 관료 임용이나 정책과 관련된 논란을 일부 포함하긴 했지만 정부가 발행하고 그 목적도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었다. 금속활자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이후에야 비로소 지금과 같은 언론이 등장했다.

1609년 세계 최초의 주간지 <렐라치온:Relation>과 <아비소:Aviso>가 등장했다. 최초의 일간지는 1660년 <라이프치거 차이퉁겐:Leipziger Zeitungen>이었다. 1702년에는 영국의 <데일리 쿠란트:Daily Courant>와 <데일리 유니버설 레지스터:Daily Universal Register> 가 발간됐다. 자유, 평등과 박애와 같은 기본적인 권리 의식이 당시 언론을 통해 급속하게 전파됐다.

언론과 기득권의 불편한 관계

언론은 또한 근대적 민족국가의 형성에도 깊이 개입했다.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1729년 <펜실베니아 가제트: The Pennsylvania Ga­zette>를 인수해 미국 해방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주장했다. 일본의 요미우리, 마이니치, 니케이신문 등은 모두 1870년대에 등장했는데 국가의 중대사를 공론을 통해 결정하고 서구 열강에 맞서 일본 국민을 계몽시키기 위해서였다. 애초부터 언론은 정치적 목적과 무관하지 않았고 특히 기득권과 불편한 관계였다. 일본 역시 제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이후에는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대중의 정치적 권리 보장에 앞장섰다.

물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뉴스는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정보로 확대되기도 했다. 19세기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의 시대를 맞아 뉴스는 각종 추문, 선정적인 범죄, 흥밋거리와 유명인 사생활 정보와 뒤섞였다. 그러나 뉴스의 본질에 대한 목마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896년 뉴욕타임스를 인수한 아돌프 옥스는 “뉴스다운 뉴스로 아침 식탁을 더럽히지 않는 신문”을 표방함으로써 품격 있는 언론의 시대를 열었다.

전문직으로서의 언론인에 대한 교육도 시작됐다. 1869년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워싱턴&리대학(Washington & Lee University)에서 처음으로 신문 글쓰기 과목을 개설했다. 세계 최초의 저널리즘 대학으로 알려진 파리스쿨과 미조리스쿨은 1899년과 1908년에 각각 설립됐다. 뉴스의 본질은 그 이후에도 여러 번 훼손될 위기에 처했지만 그때마다 강력한 자정작용이 뒤따랐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 정부를 비롯한 대기업과 거대 언론사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반전데모가 확산됐고 흑인과 소수자의 민권운동도 본격화됐다. 정부와 기업체의 홍보 창고로 전락한 언론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언론은 뉴스의 본질을 회복함으로써 이 위기를 극복했다. 1971년 뉴욕타임스는 베트남 전쟁의 구실이었던 통킹만 사건이 미국 CIA의 조작 사건임을 밝힌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연재했다. 워싱턴포스트 또한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불법 도청 사건을 다루었다. 석유값 인상으로 폭리를 취한 정유회사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도 줄을 이었다. 언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 시대였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언론의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았다.

2007년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은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했다.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른 뉴스의 변질을 우려했던 폴 스타이거 편집국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비영리 탐사전문 온라인 언론사인 프로퍼블리카를 설립했다.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기 위한 텍사스트리뷴, 민포스트, 캘리포니아와치, 아이와치뉴스와 같은 비영리 언론사도 뒤따랐다.

▲ 광고를 통해 언론을 통제하려는 경제권력을 상대로 언론 독립을 선언한 대표 매체들. 비영리 탐사전문 온라인 언론사 프로퍼블리카(www.propublica.org / 왼쪽)와 2013년 국제탐사보도협회와 공동으로 조세피난처 한국인 명단을 폭로한 뉴스타파(www.newstapa.org) 메인 화면.

2013년 국제탐사보도협회와 공동으로 조세피난처 한국인 명단을 폭로한 뉴스타파 또한 뉴스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광고를 통해 언론을 통제하고자 했던 경제권력을 상대로 한 독립선언이었다. 그렇다면 그간의 발자취에서 얻을 수 있는 뉴스의 본질은 무엇일까? 정치적 공공지식(political public knowledge)으로 뉴스를 정의할 때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뉴스의 본질 회복, ‘성숙한 공중’ 손에

고속도로, 통신망, 의료시설, 교육시설과 상수도 설비처럼 뉴스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public goods)에 속한다. 언론은 교수와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어렵게 쓴 글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가공한다.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 장기간 축적되어온 사회적 통념(conventional wisdom)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집단적인 기억과 정서에 호소한다. 게다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편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 뉴스는 또한 ‘공중(the public)’에 관련된 정보라는 의미를 갖는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성숙한 공중’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중은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를 통해 완성된다. 공중이 뉴스를 찾는 이유는 외부의 중요한 사건과 이슈가 자신의 삶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심층적이고 분석적인 해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공중은 뉴스를 통해 비로소 무엇이 문제이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어디서 찾고, 어떤 윤리적 판단을 내리며, 구체적으로 무슨 대응책을 마련할 것인가를 알게 된다. 뉴스의 주제는 따라서 공공이익과 국가이익과 관련이 있어야 하며.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진실해야 하며, 평등, 관용, 평화, 화해, 사랑과 같은 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국민의 간섭을 싫어하고 특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권력 집단에서 봤을 때 뉴스는 불편했고 언론의 자유는 그래서 투쟁의 역사였다. 2014년 5월 국내 언론인은 기레기(기자+쓰레기) 대접을 받고 MBC와 KBS 구성원들은 반성문을 쓰고 있다. 정치적인 너무도 정치적인 뉴스의 본질을 외면한 당연한 결과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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