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조종사 구하는 어린왕자”
“인문학은 조종사 구하는 어린왕자”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10.23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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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경영⓷] 진형준 홍익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인터뷰

[더피알=문용필 기자] 최근 들어 이른바 ‘인문학 열풍’이 불고있지만 사실 인문학이 어떤 학문인지, 또 이같은 현상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관련기사:“인문학은 슬로우푸드…조급함 경계해야)

문학평론가로서 또, 대학교수로서 오랜시간 인문학자의 길을 걸어온 진형준 홍익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고 인문학을 정의했다. 재계에 부는 인문학 바람에 대해서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기업체의 모습, 기업가 정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진 교수는 인문학을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비유하면서 “문제 자체를 전혀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답을 줄 수도 있다”고 인문학의 힘을 이야기했다.

인문학의 정의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사람에 대한 학문’이라는 해석들이 많은데요.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면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꼭 필요한 것, 혹은 살면서 생기는 당연한 질문에 보다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것.

이같은 의미로 사람을 위한 학문이 되는 것이고,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는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지,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사회가 무엇인지까지도 다 포함하는 것이 사람을 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볼 수 있죠.

요즘 사회가, 대중들이 왜 새삼스레(?) 인문학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는 상당한 경제성장, 누구나 다 부러워하는 기적을 이뤘습니다. 그러다보니 잊고 있던 질문들이 있는 거죠. 사람은 성숙해지면 ‘과연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잖아요. 성숙의 징표라는 이야기입니다.

최근 기업들 사이에도 인문학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기업경영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것은 일반적 인문학 열풍과는 다른 개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상상력이나 개혁, 혁신, 창의성이 강조되다 보니 그런 것을 보다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한다,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면 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해 인문학의 손을 빌리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금의 인문학 열풍일 것입니다.

(기업에 부는 인문학 바람은) 삭막해진 인간사회와 기업에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기업체의 모습, 기업가 정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기업 활동에 인문학이 접목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기업가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들이 많지만 어쨌든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기 때문에 세상변화에 민감합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어떻게 오게 됐는지 큰 흐름은 잘 모르는 경우가많죠.

이때 인문학은 ‘지금까지 이런 큰 가치들이 지배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이렇게 바뀌고 있다. 이제까지 유효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인식 속에서 크게 변화하고 있고, 그것은 여러분들이 구체적으로 접하는 사회현실과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겁니다. 기업가들이라면 그런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럴 필요가 없겠죠.

최근 들어 대기업 입사전형에 역사 등 인문학적 소양들이 많이 포함되는 추세입니다. 취업준비생들 입장에선 오히려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도 나오는 실정인데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착한 사람을 원하지만,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경쟁하기에 바빠 교육이 실제 그런 것을 가르친 적은 별로없죠. 그만큼 성실함과 착한 마음을 갖고 (사회에) 나가면 귀한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주변에 기업하는 친구들이 ‘다른 것 필요 없이 성실하고 착하면 된다. 비전만 있으면 된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요. 세상가치관이 그렇게 바뀐 것입니다.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결국 조직을 위해 도움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지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더 알게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세상을) 더 큰 눈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의 자신만 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안목으로 맥을 짚는 눈이죠. 세세한 부분에 대한 지식이나 실력도 중요하지만 크게 보는 안목이 더 중요합니다.

기업이 인문학에 접근하려고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인문학에 접근해서 기업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으려면 당장 어떤 도움이 될까, 이것을 당장 어떻게 써먹을까 묻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묻는 순간 조급해져서 실제로 봉착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능력이 생기지 않게 된다고 봅니다.

궁극적으로 인문학이 기업에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익숙한 방법으로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서 문제를 풀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문제 자체를 전혀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예기치 못했던 답을 줄 수도 있습니다.

책 <어린왕자>를 예로 들어보죠. 위기에 봉착한 조종사를 살려주는 존재가 어린왕자입니다. 어린왕자는 인문학에 비유할 수 있죠.

인문학을 (기업의) 메커니즘 안에서만 써먹으려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말도 안 되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한 어린왕자가 결국 자신을 살아 돌아오게 했다고 설득할 수 있다면 아마 인문학이 가진 힘의 핵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진형준 교수는...

문학평론가이자 홍익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평론 ‘황석영론’으로 등단했으며 계간 ‘상상’을 창간했다. 초대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홍익대 문과대학장을 역임했으며 세계상상력센터 한국회장, 한국 상상학회 회장을 맡는 등 국내 상상력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삼성그룹 사장단을 비롯한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상상력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아주 멀리 되돌아오는 길> <상상적인 것의인간학> <상상력 혁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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