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탈 기회가 있어 일단 올라탔습니다”
“로켓 탈 기회가 있어 일단 올라탔습니다”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5.10.2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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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세 늦깎이의 스타트업 도전기…배성호 렌딧 전무

[더피알=안선혜 기자] 국내 기업이 소셜 채널 운영에 막 눈뜨던 시기, 소셜미디어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SK텔레콤 소셜미디어 홍보·마케팅을 이끌던 배성호 부장 얘기다. 그런 그가 돌연 핀테크 스타트업 렌딧 전무로 새로운 커리어를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약 17여년 간 몸 담아오던 대기업의 울타리를 떠난 48세 늦깎이의 스타트업 도전기를 들어봤다.

▲ 배성호 렌딧 전무. 사진: 이윤주 기자

“야, 너 갑자기 왜 대부업체로 갔냐?”
 
배성호 전무의 이직 소식을 들은 주변 반응이었다. P2P 대출에 대한 국내 이해도가 아직 부족한 것도 있거니와, 실제 배 전무가 몸담고 있는 렌딧은 대부업으로 등록이 돼 있다. 국내 금융법상 아직 P2P 금융 카테고리가 없기에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선 일단 대부업으로라도 등록해야 했다.

P2P 대출(Peer-to-Peer Lending)은 은행 등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고 개인과 개인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서비스로, 미국에서는 렌딩클럽이 지난해 9조27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상장하는 등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배 전무가 렌딧을 선택한 것도 이 시장이 향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4%대 은행 금리를 적용받지 못하면 카드론, 저축은행 등 바로 18~20% 시장으로 뛰곤 하는 국내 대출 환경에서 개인 간 거래로 10% 선의 중금리를 제공한다면 승부를 봄직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이곳에서 데이터 수집을 통한 PR·마케팅을 담당한다. 성별, 연령, 거주지, 유입 매체 등의 정보를 수집해 통계를 내고 각 집단별로 어떤 대화에 반응하는지를 분류해 광고 전략을 짜고 있다. 아직은 시계열 데이터를 확보하는 과정으로, 내년 5월이 되면 연간 단위 데이터가 모이기에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을지로입구 넥타이 부대에 속해 있던 배 전무지만, 렌딧에서 만난 그는 상당히 편안한 차림이었다. 하얀 면 티를 걸치고 30대 직원들과 직책 떼고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더 나이 먹거나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가면 스타트업 친구들과 호흡 못해요. 여기는 직책이 없어요. 서로 영어 이니셜로 부르거든요. ‘님’자도 안 붙여요. 17살 차이 나는 친구와도 님자 없이 이니셜로 칭하니까요. 지금 아니면 해 볼 수가 없죠. 제가 50대가 되고 60살이 되면 함께 할 수 있겠어요?”

▲ 사진:이윤주 기자

퇴사를 결심하고 몇몇 회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실제 채용 결정까지 내려졌지만, 이를 내려놓고 렌딧행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다. 이 가운데는 임원직도 포함돼 있었고, 해외 유명 스타트업도 포함돼 있었다.

“개인 창업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었고, 이직도 10개사 선에서 5개 이내로 압축해 깊이 있게 의사결정을 하는 수준까지 갔었어요. 그러던 중 해외 스타트업 면접도 봤는데 스톡옵션을 제시하더라고요. 상장한다면 다른 큰 회사 임원으로 가서 2년, 4년 일한 총액 뒷자리에 0이 하나 더 붙는 수준이었어요. 아, 이런 즐거운 유혹이 있구나 생각했죠.”

현재 몸담고 있는 렌딧은 공동창업자 가족과의 친분으로 조언 차원에서 PR과 마케팅 분야 초기 세팅(setting)을 돕다가 급하게 합류했다. 본래는 PR을 담당할 외부 직원을 추천했는데, 그 직원과 함께 ‘도매급’(?)으로 묶여 모셔졌다.

“2018년 상장이 목표예요. 2년 반도 안 남았어요. 우리 회사 공동창업자가 3명인데, 제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참 재능 있는 친구들이에요. 아직도 P2P 대출은 (정책 차원에서) 처리해야할 큰 이슈들이 있어요. 이 업종이 가진 해결과제인데,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도 기대됩니다.”

국내 P2P 대출 업체들은 관련 금융 법제가 마련돼 있지 않기에,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업 등록으로 우회해 영업하고 있지만, 그 때문에 정부 육성 사업인 핀테크 분야 스타트업임에도 불구하고 세금혜택이나 각종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여러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배 전무가 나름의 확신을 갖고 렌딧으로 올 수 있었던 건 투자처가 믿을만 했기 때문. 렌딧에 초기 15억원을 투자한 알토스벤처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 투자회사로 직방, 배달의민족, 쿠팡 등에 투자하기도 했다.

렌딧은 투자자들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분산 투자를 실시한다. 1대1매칭이 아닌 한 명의 투자자가 여러 명에게 돈을 나눠 빌려주는 방식이다. 가령 40명에게 대출을 해주는 6억원 투자 상품이 있다면, 각 투자자가 투자한 돈을 40명에게 일정한 비율로 각기 나누어 투자한다. 한 명이 부도를 내거나 연체를 하더라도 투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투자자들의 수익은 이들 대출자들의 평균 금리가 된다. 대출자들은 신용 등급에 따라 각기 다른 이율을 적용받는데, 가령 1번 고객은 4.5%, 2번 고객은 15%, 3번은 9% 등 금리가 차등 적용된다. 렌딧이 최근 두 번째로 판매한 투자 상품의 경우 평균 금리가 9.88%였다.

“연체가 지금까지 0%예요. 대부업처럼 전화 한 통이면 대출 이런 게 아니에요. 은행 신용등급이 1~10등급으로 나뉘는데, 1~6등급까지가 저희 타깃이에요. 사이트 내에 데이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상당히 많은 장치들을 심었는데, 대출 신청자의 행동패턴별로 신용 등급 예측이 가능해요.

그래도 은행처럼 신용평가기관 등급을 활용하는데, 거기에 좀 더 가중치를 부여할 때 저희 데이터를 활용해요. 대
출 신청할 때 한도액부터 넣어보는지, 칸 입력할 때 수정을 몇 번하는지, 아니면 탭으로 이동하는지 마우스로 이동하는지 등이 다 분석 대상이에요.”

데이터로 굴러가는 회사

대출 집행 기준뿐 아니라 PR과 마케팅도 모두 데이터베이스로 움직인다. 시간대·요일·월별로, 또는 이 단어를 썼을 때와 안 썼을 때, 이미지를 넣을 때와 안 넣을 때, 타깃을 금융 라이크(페이스북 좋아요)를 한 사람 혹은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 등 다양하게 다 실행해보고 광고 전략을 짜고 있다.

“추상적이거나 멋있는 광고가 페이스북에서 먹히는 건 아니에요. 타깃이 되는 고객들이 필요한 상황, 반응하는 키워드 설정이 중요합니다. 우리 업종이 제2금융 대비 장점이 뭔지 여러 카테고리에서 키워드를 갖고 초기 광고를 1~2주 단위로 돌려봐요. 유입률이라든지 전환률 등을 살피면서 이런 상품은 이런 키워드 매트릭스 내에서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구나, 이런 요일에 노출량을 집중시키고, 어느 시간에는 빼고 등 기본적인 데이터 세팅을 합니다.”

▲ 렌딧 2호 투자 상품 투자자 모집 이미지.

“가장 효용성이 좋은 곳은 페이스북 광고예요. 페북은 가입자의 데이터와 성향이라든지 그 사람이 하고 있는 활동을 베이스로 광고 노출 타깃을 한정 지을 수도 있고, 그 광고를 집행했을 때 CPC(Cost Per Click·클릭 당 비용), CTR(Click Through Rate·클릭률), CPA(Cost Per Action·행동별 비용) 등을 다 증명할 수 있어요. 구글 GDN(Google Display Network) 광고 같은 경우 페북 대비 CPA는 떨어지지만 노출 대비 인입률은 상당히 높습니다.”

렌딧이 이렇게 데이터 확보에 열심인 건 향후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집행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를 대비해서다. 투자사인 알토스벤처스가 앞서 투자했던 배달의민족이나 쿠팡, 직방 등도 유사한 전략을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초기엔 노출을 별로 하지 않다가 어떤 메시지가, 어떤 시간대에 어떤 타깃에게 효과가 높은지 등 데이터가 충분히 갖춰졌을 때 유명 모델들을 써서 공세에 들어갔다. 다만, 렌딧은 현행법상 TV광고는 불가능하다. 대부업은 공중파 TV광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년 치 이상의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고 나면 ‘무슨 극장만 가면 나와’라며 지겹다고 할 정도로 곳곳에서 저희 광고를 볼 수 있을 거예요. 흔히 말하는 ‘돈질’이 시작되는 거죠. 물론 이때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다 준비가 된 상활일 겁니다. 바로 행동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단어들이 전략에 따라 순서대로 나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 때까지는 열심히 데이터를 모아야지요.(웃음)”

맥락을 읽는 눈

배 전무는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뉴욕(SVA N.Y.)을 졸업하고 인터넷 초창기인 1995~96년 창업을 하기도 했다. 이후 97년 SK텔레콤에 입사해 광고, 프로모션, 브랜드, PR전략, 디지털 캠페인, 소셜미디어 채널 운영 등 커뮤니케이션 분야 전문가로 입지를 쌓아왔다. 올해 4월에 퇴사를 했으니 SK텔레콤에서만 약 17년 반 정도의 세월을 보냈다.

“감사하게도 많은 지원을 받으면서 커뮤니케이션 관련 업무는 PR이든 마케팅이든 다 해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다른 터전에서 해봐도 좋겠다 생각했죠. 구성원으로는 임원 이외에는 올라갈 수 있는 직급에 다 올라간 상황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결심도 있었고요.”

▲ 사진: 이윤주 기자

창업을 고려했을 땐 커뮤니케이션업에 대한 제안도 많이 받았었다. 클라이언트 사이드에 있던 지인들이 먼저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깔아주겠다며 지원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제 생각에 PR이나 커뮤니케이션 업은 생산성이나 영업이익을 따졌을 때 인건비 장사더라고요. 둘이서 1년에 1억원씩 해서 2억을 번다고 하면 100명이더라도 수익률은 같아요. 수익률을 개선할 프로세스나 혁신성에 대한 아이디어가 별로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일단 칼을 뽑으면 2년 내 업계 몇 위 이런 목표야 세우겠지만, 그 지속가능성이 10년 20년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요. 물론 마음 속에야 커뮤니케이션 관련 업에 대한 로망은 계속 있죠. 하지만 그건 지금이 아니어도, 좀 더 시간이 지나 더 좋은 자본을 가졌을 때 쫒기지 않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계속 염두에 두고는 있어요.”

그는 자신과 같은 PR인들에게 다양성을 갖추길 권했다. 미디어를 기반으로 관계를 구축하는 언론홍보의 영향력이 아직도 크고 중요하다 생각하지만, 수능을 볼 때 국영수 외 과학, 사회 등도 필요하듯 이직에 있어 다양성은 큰 도움이 된다는 조언이다. 마케팅적 사고와 경험, 또 전체 맥락을 보는 시각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저도 구멍가게 초미생이지만, 굳이 조언을 하자면 단위 퍼포먼스 내는 것보다 지금 내가 맡은 일이 전체 맥락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보는 눈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하나 관심을 가지면 좋은 것이 데이터를 볼 줄 아는 시각이고요. 통계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가설을 세우고 각 데이터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읽을 줄 안다면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짤 때 연결시킬 수 있어요. 1년치 데이터를 모으면 회사가 1월에 무슨 제품 발표가 있고, 2월엔 뭐가 있고, 3월엔 무슨 소비자 단체에서 요금 인하를 요구할 테고 등 큰 흐름을 읽고 어느 시기에 PR·마케팅을 집중할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회사 경영상황, 사회적 환경, 정세 이런 부분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맥락적 시각을 갖추면 어디가든 뭘 못하겠어요. 더군다나 아젠다 세팅부터 흐름을 끌고 갈 줄 아는 사람들인데.”

“지금 PR인들이 스타트업에서는 품귀예요. 리스크 대처 능력,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인력,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합니다. 평판조회나 회사 가치에 대해서는 꼼꼼히 알아봐야겠지만,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거나 의욕이 넘치는 분들은 도전하기 좋은 시기인 듯합니다”

17여년의 대기업 생활을 마무리하고 스타트업에 합류한 배 전무는 이제 렌딧이라는 로켓이 본궤도에 올라가는데 사력을 다할 예정이다. 일단 올라탔으니 말이다.

“페이스북 COO인 셰릴 샌드버그도 말했어요. ‘로켓을 탈 기회가 생기면 어떤 자리냐고 묻지 마라. 일단 올라타라’. 스타트업 사람들끼리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대기권까지만 넘어가는 로켓, 인공위성처럼 어딘가 안착하는 로켓, 오고가는 항해가 가능한 우주 왕복선 등 다양한 로켓에 비유해요. 이제 전 탔으니 가장 훌륭한 우주선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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