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땅에 뿌리내린 한 출판사의 고집
척박한 땅에 뿌리내린 한 출판사의 고집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5.12.02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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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Story] 커뮤니케이션북스를 보다

[더피알=이윤주 기자] 커뮤니케이션북스(이하 컴북스)는 고집스럽다. 18년간 커뮤니케이션 영역의 땅만 밟았다. 그 발자국들이 모여 누군가의 길라잡이가 됐다.

이 분야 진출을 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꼭 거쳐야 필수코스가 된 지 오래. 트렌드를 쫓기보다 길을 만들어온 컴북스의 차별화 행보를 따라가 봤다. 

▲ 커뮤니케이션북스 사무실은 책장으로 둘러쌓여 있다. 사진:이윤주 기자

1995년 겨울, 박영률(컴북스 대표)씨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교수 임용을 앞두고 있는 후배가 책을 출판하려 했지만 “1000만원 주세요. 아니면 1000권을 사세요. 그럼 책 만들어 드릴게”라는 답만 들었다는 것이다.

시장이 작기 때문에 출간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사정을 듣던 박영률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용이 충분히 좋고 의미가 있는데 책을 출간할 수 없다면 출판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1998년 그는 커뮤니케이션북스를 설립했다. 팔리는 부수가 적더라도 꼭 필요한 콘텐츠라면 세상에 나오는 것이 맞다 생각했고, 그런 출판사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책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설립 초기에는 시장점유율을 높인다는 경영 전략을 세웠다. 문제는 출판비 대비 수익성이 맞지 않다는 것.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거나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컴북스는 전자를 선택해 편집자의 업무 프로세스를 간소화했다. 타 출판사에서 사용하는 관행화된 방식, 그렇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되는 과정을 과감히 없앴다.

카테고리 킬러

그 결과 컴북스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인정을 받았다. PR, 광고, 커뮤니케이션 등 명확한 카테고리 내에서 다양한 전문서적을 냈다. 한우물만 팠다는 점에서 ‘카테고리 킬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책을 출간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기준도 남달랐다. 전문성, 독창성, 소통성을 우선순위에 뒀다. 카테고리 킬러 전략은 시장성이 작기 마련이어서 종당 판매량도 낮을 수밖에 없다. 관건은 수익성 개선인데, 이 역시 박리다매(薄利多賣)로 해결했다. 한 권을 출판해 많이 파는 베스트셀러와는 반대 원리를 지향한 역발상이었다.

다품종 소량생산이라 할지라도 품질이 뒷받침 돼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저자는 검증되지 않은 출판사에는 자신의 책을 맡기지 않기 때문. 이에 컴북스는 높은 품질을 유지해 저자에게도 인정받는 동시에 다품종을 확보하는 데 주안점을 줬다.

결과적으로 많은 책을 내기 위한 편집, 기획, 디자인, 제작 등 모든 과정에서 개발된 포인트들이 컴북스의 노하우가 됐다. 현재는 한해 평균 400~500종이 출간된다. 올해 안으로 출판서적이 5000종을 돌파할 예정이다.

▲ 보통 책과 비교한 큰 글씨책. 사진: 이윤주 기자

이처럼 순탄치 않은 외길을 걸을 수 있었던 건 컴북스 편집자 대부분이 커뮤니케이션 관련 전공자들이기에 가능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이도 적지 않다. 국내외 커뮤니케이션 흐름을 20년가량 지켜봐온 대표와 전공 편집자들의 만남이 시너지를 발휘했다.

많은 책을 출간하지만 재고 물량을 보관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현재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등 1만종 가량의 출판물 가운데 2500종만 재고 운영을 한다. 심지어 초판이 60권밖에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초판 60부는 당장 필요한 부수니까 찍는 겁니다. 그 후에 주문 받으면 바로 제작을 해서 제공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습니다”며 저자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신뢰감을 덤으로 준다.

과도기의 도전

컴북스의 방향성은 3단계로 정리된다. 1단계 다품종 소량생산 선택. 2단계 카테고리 킬러 콘텐츠를 이용한 다각화. 3단계 IT기술을 접목시킨 새로운 사업모델 구상.

현재 컴북스는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상품 다양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채널을 개척하고 있으며 날로 새로워지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특히 많은 종의 책과 쌓아온 콘텐츠를 다시 활용해 부가가치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하는 가운데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최근 호평 받는 것은 ‘이해총서 시리즈’다. 보통 책의 절반 크기의 심플한 디자인에 핵심적인 커뮤니케이션 관련 콘텐츠만 정리한 것이다.

구글 인기 검색어, 고등학생을 위한 진로와 입시 고민 해결사, 대학생을 위한 인기 있는 핵심 교재, 교사를 위한 미디어 교양 등 여러 카테고리로 나눠 매번 수십 권의 책을 출판한다. 지금까지 300권이 나왔는데, 추가로 100권의 새로운 단행본을 준비하고 있다.

‘리딩패킷 서비스’는 온라인에 올려둔 출간된 책의 콘텐츠 중 필요한 부분을 발췌, 본인만의 교재를 만드는 방식이다. 단행본 챕터 1만3000여개, 논문 2800여개가 제공되며 복사비보다 싼 페이지당 60원으로 교재 가격이 정해진다.

▲ 컴북스 출판사 속 오디오 녹음실. 사진: 이윤주 기자

출판사 내에 있는 오디오실을 이용해 저자 목소리로 듣는 ‘오디오북’도 만든다. 저자만큼 자신의 책을 잘 아는 낭독자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강조할 곳은 강조하고 자세히 설명할 부분엔 충분한 시간을 투입한다.

현재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과 EBS와 협력해 ‘100인의 배우가 읽는 우리문학’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문학의 주요 중단편소설 100편을 낭독한 오디오북의 판매 수익금은 연극인 복지에 사용된다.

확대율 140~170%. 본문 크기는 16~20포인트 만들어진 ‘큰글씨책’은 어르신이나 저시력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컴북스의 또다른 자랑이다.

미디어 격변 시대인 지금 커뮤니케이션 분야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커뮤니케이션 영역 자체가 전문성이 커졌다기보다는 일종의 교양 수준으로 넘어간 듯해요. 역사는 기본이지만 학교에 역사학과가 많아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커뮤니케이션 역시 당연히 알아야 하는 영역이 됐습니다.

혹자들은 이게 혼돈이냐 통합이냐 기회냐 여러 관점에서 논하겠지만 저는 기회라고 봅니다. 특히 최근에는 위기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그 분야의 책이 많이 출간되는 추세고요.

지금은 혼돈 시대입니다.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어요. PR이나 미디어업계도 마찬가지에요. 광고가 변하는 것만 봐도 드라마틱하죠.

그렇기에 사람들의 자세가 사방으로 눈치 보며 쫓아가고 따라가는 중에 있습니다. 한치 앞도 보기 힘들어요. 열심히 계속 보조를 맞춰 달려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출판시장이 위축되면서 대중적이지 않은 전문분야를 고수하는 데 따른 고충이 훨씬 더 커졌을 듯합니다.
어차피 동전의 양면 같은 거죠. 우리가 선택한 전략이 ‘카테고리 킬러’이고, 어려운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다품종 소량판매’ 시스템을 갖췄으니까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매장에는 약 30만종의 책이 갖춰져 있다고 합니다. 온라인 서점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아요.

아마존 같은 경우는 (판매하는 상품의 가짓수가) 1000만 종이 넘는다고 하고요. 오프라인 매장에 둘 순 없지만 온라인이기에 보관할 수 있는 양이죠. 재고를 관리하는 유지비용이 거의 제로(0)에 가깝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컴북스가 롱테일 전략이란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존은 상품을 정보로 유통하면서 상품 종수 하나를 늘리는 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요.

하지만 저희는 한 종의 책을 늘리기 위해 들여야 하는 절대 비용이 있습니다. 다품종을 실현하기위해 도저히 절감할 수 없는 비용이 있는 거죠.

독자들에게 어떤 출판사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컴북스의 첫 번째 미션은 ‘한국어 지식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킨다’는 겁니다. 내용은 정말 좋은데 소수에게만 필요한 책이라서 제작이 안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팔리는 책만 만들면 다양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다양성이 훼손되면 생태계가 무너지게 되고 말아요.

그런 점에서 커뮤니케이터들 사이에서 “내가 컴북스 책으로 공부 다 했다” “컴북스 책으로 박사학위 받았어” “컴북스에 가면 내가 필요한 책은 다 있어” “이 분야에서 뭘 하려면 저기 책을 읽지 않고서는 도저히 안돼”라는 평가를 받는 출판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출판사 자체가 이미 컬렉션이고 서재가 됐으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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