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과 사이버망명의 틈새
테러방지법과 사이버망명의 틈새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6.03.0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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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카톡발 ‘사이버 사찰’ 논란 기억해야

[더피알=문용필 기자]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제2의 사이버 망명’ 움직임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테러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테러집단’ 공격을 방지하자는 의미의 법안인데 왜 네티즌들이 사이버 망명을 하려는 것일까. 이는 법안의 세부 내용과 연결돼 있다.

▲ 지난 2일 테러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뉴시스.

우선 테러에 대한 정의를 담은 제 2조를 보면 ‘국가와 지자체 또는 외국정부의 권한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할 목적’이라는 표현이 있다.

‘테러위험인물’의 범주에는 테러단체의 조직원이나 테러음모자, 테러선동자 뿐만 아니라 이같은 행위를 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자까지 포함된다.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나 집회를 테러로 규정하거나 참가자를 테러위험인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이 법은 대테러활동에 대해 다른 법률에 우선해 적용(제4조)되며, 국가정보원이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개인정보와 위치정보를 해당 정보의 처리자와 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테러위험 인물에 대한 출입국, 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의 관련 정보도 수집할 수 있다.(제9조)

이같은 조항 등을 들어 야당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국정원이 사실상 개인의 통신기록과 모바일 메신저를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해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야당 의원들이 지난달 23일부터 총 192시간 동안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이어가며 해당 법안의 통과를 막은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법안은 결국 여당의 안대로 통과됐다.

물론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막기 위한 인권보호관 1인을 국가테러대책위원회 소속으로 두도록 돼있으나,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텔레그램, 아이폰, G메일’ 재조명

우여곡절 끝에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서 일부에서는 언제고 자신이 테러위험인물로 규정돼 국정원의 추적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이미 SNS상에서는 카카오톡 등 국산 모바일 메신저를 떠나 보안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갈아타겠다는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실제로 텔레그램은 8일 기준 애플 앱스토어 국내 무료앱 인기순위 4위에 랭크돼 있을 정도로 주목받는 분위기다. 테러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 순위에 텔레그램이 오르기도 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텔레그램 리뷰란에는 “테러방지법 때문에 갈아탄다” “정부비판은 텔레그램 비밀톡으로 몰래 하겠다” “카톡 불안해서 쓰겠습니까” “어쩔 수 없는 망명”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 8일 현재 애플 앱스토어 무료앱 차트 4위를 차지한 텔레그램. 아이튠즈 웹사이트 캡처.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 2014년 9월 불거진 이른바 ‘사이버 사찰 논란’ 이후 거의 1년 반만의 일이다. 당시 국민메신저로 불리던 카카오톡이 수사기관으로부터 검열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자 많은 네티즌들이 텔레그램으로 갈아탔다.(관련기사: 당신이 텔레그램을 쓰는 이유)

국내 수사기관의 힘이 미치지 않는 해외 메신저인데다가 보안성이 탁월한 것으로 입소문 나면서 텔레그램은 한때 앱스토어 인기 무료 앱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이후 텔레그램 정식 한글버전은 물론, 공식 한글 트위터 계정도 만들어졌다.

휴대폰과 이메일 계정 역시 우려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이는 모바일 메신저에만 포커스가 맞춰졌던 2014년 1차 사이버 망명 사태와 차이점을 보이는 대목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아이폰과 G메일로 갈아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iOS라는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갖고 있는 아이폰은 안드로이드 계열의 스마트폰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안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드로이드가 오픈소스를 지향하는 반면, iOS는 폐쇄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국 FBI가 테러방지를 위해 ‘잠금장치’ 해제를 요구했지만 애플이 이를 거부하면서 아이폰의 보안성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구글의 이메일 서비스인 G메일은 서버 자체가 해외에 있기 때문에 보안성이 높지 않겠느냐는 것이 네티즌들의 의견이다.

국내 ICT 기업들에 불똥 튈라 

물론 아직까지 텔레그램과 아이폰, G메일 유저가 테러방지법 이전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정황은 없다. 아이폰이나 G메일의 경우 테러방지법이 아니더라도 많은 국내 유저들이 있기도 하다.   

텔레그램의 경우 보안성을 강점으로 내세우지만 ‘카톡 문화’에 익숙한 국내 사용자의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매력도가 떨어진다. 2014년 사이버 망명사태 이후 카카오 측이 한층 강화된 보안대책을 내놓고 논란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텔레그램 열풍도 함께 시들해진 것이 이를 방증한다.(관련기사: 텔레그램 열풍, ‘한철 특수’였나)

그러나 짚고 넘어갈 점은 아직 남아 있다. 바로 국내 ICT 기업들에게 미칠 영향이다. 네이버와 카카오처럼 모바일 메신저나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에게는 자칫 악재가 될수도 있는 사안이다.

실제 카톡 검열 의혹이 불거질 당시 카카오는 위기관리에 진땀을 빼야했다. 회사 자체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외부 악재로 부정적 이슈에 휘말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카카오에게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나 다름없던 일이었다.(관련기사: ‘배수의 진’ 친 다음카카오, 여론 돌릴 수 있을까)

▲ 지난 2014년 10월 카톡 감청 의혹과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하는 이석우 당시 카카오 공동대표. 뉴시스

이번에도 날벼락이 기업들에게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포털사이트 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제조사들로 예외일 수 없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예의주시하며 만약에 있을 위기 상황에 대비한 대응방안을 선제적으로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국민적인 불안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정부의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책임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테러의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법이 되레 국민들에게 심리적 위협으로 다가서는 ‘아이러니’는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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