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 지영만 (kjyoung@the-pr.co.kr)
  • 승인 2010.05.1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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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만의 삶

웰빙이 주요 관심사인 요즈음 건강을 위한 걷기운동이 바람처럼 일고 있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이라도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걷기는 자신을 세계로 열어 놓는 것이며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기쁨으로 바꾸어 놓는 좋은 방법이다. 자신에게 속한 것 모두를 잠정적으로 포기하는 행위이며 어떤 정신 상태, 세계 앞에서의 겸손, 현대의 복잡한 수단들에 대한 무관심,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관심,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즐기는 일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 中에서)

그래서인지 얼마 전부터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강화 나들길, 인천 배다리길, 남한산성길 등 걷기 좋은 길을 만들고 홍보하는 일이 많다. 필자도 평소에 관심이 많았는데 갑자기 그 길들을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 무작정 지리산을 찾았다. 30년을 다니던 대기업을 퇴직하고 나름대로 새로운 커뮤니티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환기에 겪는 일종의 정체성 혼란 같은 가벼운 몸살로 가슴이 답답하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던 내가 사전에 아무런 준비 없이 실행부터 해보자는 마음으로 보리빵 하나에 물 한통 달랑 배낭에 담고 길을 떠났다. 첫 코스는 인월-금계(20Km) 구간이었는데 평일인데다 비마저 오락가락하니 지리산 첩첩산중에 오롯이 혼자였다 물소리, 새소리가 정겹고 숲길 속의 공기가 신선하니 왜 이제야 여기를 찾았는가 싶었다. 넓고 넓은 하늘엔 산봉우리만 가득하고 흩날려 떨어지는 벚꽃은 계곡사이 비단 되어 흐르네…. 시구가 절로 나왔다.

느리게 성찰하며 에둘러 가는 길

그런데 조금씩 산세가 깊어지고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호흡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산천경계에 눈 좀 돌릴라치면 고 바위가 나타났다가 한숨 돌리며 발걸음에 여유가 실릴 때면 어느새 눈앞엔 깔딱 고개다. 누가 설계 했는지 모르지만 어찌 그리 인생사와 똑 같은지….

지리산 둘레길의 이정표에는 방향만 있고 목적지까지 거리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느리게 성찰하고 느끼며 에둘러 가는 길이고 끝끝내 자기를 만나서 위안을 얻고 돌아오는 순례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며 가다보면 목적지에 다다르게 만들었다.


‘나는 걸으면서 내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쫓아 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가 편지에 썻던 말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 정상만을 향하여 경쟁적으로 질주한다. 빨리, 더 높이만을 구호로 주변을 돌아볼 시간은 없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도전 만만이다. 그런데 무작정 정상을 향해 치달려 오르다 보니 미처 내려 갈 때의 대비는 부족하다. 날은 어두워져 가고 높이 올라온 만큼 내려갈 길이 막막하다. 급한 마음에 빠른 길이라 생각한 그 길은 다시 돌아서 쳐다보니 천 길 낭떠러지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허둥대며 길을 잃는다. 정체성의 혼란, 자아실현에 대한 열패감, 살아왔던 시간 속에 후회스러웠던 기억들….

불현 듯 삶과 죽음의 의미가 심각하게 다가온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세상에 후회없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한 번씩 멈추어 서서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후회를 줄이는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요?


지영만

한국항공대 전자공학과 졸업/서울대 행정대학원 정보통신방송 정책과정 수료/

순천향대 산학연 정책과정 수료/NYU(NewYork University) 마케팅과정 수료/

1979년 삼성전자 입사/1998년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전략마케팅 팀장(이사)/

2001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마케팅팀장(상무)/2005년 제일모직 마케팅 및 홍보담당 상무/

2007년 제일모직 남성복 컴퍼니장(전무)/2009년 제일모직 경영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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