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 발밑에 있어요”
“지금 당신 발밑에 있어요”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04.0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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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멈추고 키를 낮추면 보이는 작고 고운 들풀

[더피알=이슬기 기자] 만물이 생동하는 봄, 당신도 모르는 사이 당신 주변에 피어나 제 본분을 다하고 있는 초록들이 있다. 너무 작아 눈에 띄지 않거나 흔해서 무심히 지나쳤을 게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저마다 제 이름을 가진 들풀들, 도시 생태 이야기 ‘동네 숲은 깊다’를 그리고 쓴 강우근 작가와 낭창낭창 산책하다 쪼그려 앉아 몇몇과 눈을 맞췄다.

▲ 봄에는 지천이 냉이밭이다. 잎이 제각각이지만 다 냉이다. 한 뿌리에 각기 다른 모양의 잎이 나는 것도 있다.

“이게 다 냉이에요. 이것도, 저것도. 이파리가 좀 다르죠? 여기 지칭개 같이 잎이 갈라진 것도, 망초 같이 둥근 것도. 아무래도 자연이 손상된 곳, 사람 주변에서 살다보니까 적응하느라 다양해졌겠죠.”

냉이를 조금 캐본 사람은 알겠지만, 봄날 들판에 나가면 지천이 냉이다. 문제는 냉이와 냉이 아닌 것을 가리는 감식안인데, 모두 냉이 같으면서도 아닌듯한 생김생김에 꽃삽을 쥐고 정신이 혼미해질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냉이는 향을 맡아보는 게 가장 빠르다. 익숙한 봄맛이 느껴지면 생김이 조금 다른 것 같아도 냉이가 맞다. 가만히 보면 한 뿌리에 두어 가지 생김의 잎이 난 것도 볼 수 있다. 놀라지 마라, 냉이다.

냉이는 두해살이 식물이다. 전년 가을에 나서 겨울을 견디고 봄에 자란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바닥에 바짝 붙어서 자라는 게 견디기 수월할 터. 이런 종류의 식물을 ‘방석식물’이라고 한다. 보통 냉이를 처음 캐는 사람들이 많이 헷갈리는 게 같은 종류인 지칭개, 망초, 꽃다지 등이다. 쓴 맛이 나는 지칭개는 잎 뒷면에 흰털이 나있기 때문에 살짝 뒤집어보면 알 수 있다. 망초와 꽃다지는 나물을 한 봉지쯤 캐다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고.

이 밖에 향긋한 쑥, 줄기에 노란 진액을 품은 애기똥풀, 뿌리잎 5장이 돌려나는 가락지나물, 고양이가 소화 안 될 때 먹는다는 괭이밥을 비롯해 뽀리뱅이, 별꽃, 돌나물, 개소시랑개비, 뚝새풀, 뱀딸기, 개불알풀, 토끼풀 등 김 작가와 잠깐 아파트 단지 주변을 산책하면서 본 들풀 만해도 열손가락을 훌쩍 넘는다. 수많은 발길이 오고가는 보도블록 틈새, 아파트 단지 화단 구석, 가로수 아래 등 곳곳에 이미 작은 꽃을 피운 것도 있고, 아직 더 작은 봉우리만 품고 있는 것도 있었다.

▲ 냉이와 비슷한 지칭개, 잎 뒷면에 흰 털이 나 있으면 지칭개다.

사람이 훼손한 자연…들풀은 대표적 선구식물

“이런 애들을 선구식물이라고 해요. 일단 사람이 살면 논밭을 일구든 집을 짓든 어쨌든 자연을 훼손하잖아요. 그러면 자연은 스스로 돌아가려는 천이를 시작하는데, 이렇게 흔히 나는 것들이 첫 일을 시작하는 식물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사람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죠. 재밌게도 이런 식물들은 어느 정도 사람 손을 타면 더 잘 자란답니다.”

사람들은 돼지풀을 비롯한 몇몇 종이 왕성하게 자라면 생태계를 교란시킨다고 유해식물로 지정한다. 사람이 훼손한 자연을 돌리려고 천이하는데 가장 앞에서 역할을 하는 식물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한 일이다.
들풀들은 어디서 자라느냐에 따라 모양이 많이 달라진다. 아스팔트 사이에서 간신히 자라면 아주 작고 낮지만, 손대지 않는 공터나 빈집 마당에서는 허리까지 쑥 자라기도 한다. ‘쑥대밭’이라는 표현이 거기서 나왔다는데, 막 올라오는 풀들을 그냥 두면 키 작은 나무가 자리 잡고 소나무 숲에서 참나무 숲으로, 숲이 조성된다. 이 과정이 짧게는 70~80년, 길게는 150~200년 걸리는 천이다.

“복수초가 겨울에도 꽃대를 올린다고 고고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야생화는 일부러 산에 가야 보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도 꿋꿋이 겨울을 나는 식물들이 많아요. 흔히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것들. 가만 살펴보면 이름보다 예쁘답니다. 애기똥풀이나 미나리아재비 정도를 제외하고는 살짝 데쳐서 나물로 먹기도 그만이죠. 냉이가 꽃대를 올리기 시작하면 세지니까 그 전에 서둘러 봄맛을 보시길 추천해요.”

 

▲ 강우근 작가
강우근 작가

북한산 밑자락에서 어린이 책 작가이자 기획자인 부인 나은희 씨와 두 아이 단이, 나무와 살고 있다. 붉나무라는 가족 필명으로 어린이 생태 책도 여러 권 냈다. 이름만큼 단풍이 붉고 여름에는 그만큼 짙푸른 붉나무는 등산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구식물인데 숲과 인간의 경계에 서서 친근한 점이 마음에 닿아 필명으로 골랐다.

서울 북부에서 나고 자라 도시가 팽창하면서 생기는 변두리 문화를 직접 경험했다. 어린 시절 사람에 적응해 살아나는 풀들을 채취하고 관찰하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90년대 초 굴곡진 현대사를 지나오며 1년 정도 감옥생활을 했는데, 교도소 담장에 자라나는 풀들에 골똘하며 도감을 찾아봤다. 이후에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생태기행을 다니며 꾸준히 자연에 관심을 뒀다.

요즘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텃밭농사가 큰 즐거움이다. 올해는 함께 농사짓는 사람들과 시농제도 할 계획이다. 비정기적으로 도서관이나 방과 후 교실, 한살림 등에서 아이들과 자연놀이 수업을 한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동네 숲은 깊다(철수와영희)’ ‘강우근의 들꽃이야기(메이데이)’가 있고 다수의 책에 그림을 그렸다. 가족이 함께 ‘사계절 생태놀이(길벗어린이)’ ‘열두 달 자연놀이(보리)’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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