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없는’ 회견에 대중은 왜 분노하는가
‘질문 없는’ 회견에 대중은 왜 분노하는가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4.03.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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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상이 몰고 온 파장 “회사원 같은 기자들…낯부끄럽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나라 망신” “창피하다” “먹먹하기까지” “낯부끄러운” “뭐하냐 대체” “화가 난다”…. 얼마 전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된 한 영상 아래로 이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리며 온라인을 크게 달궜다.

‘국치(國恥)’ 수준의 비판을 쏟아내게 한 문제(?)의 영상은 지난 2010년 9월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설 직후 한국기자들에게 질문을 ‘구하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 '질문 없는' 기자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ebs 다큐 장면.(유튜브 영상 화면 캡처)
“한국기자들에게 질문권을 하나 주고 싶군요. 정말 훌륭한 개최국 역할을 해줬으니까요. 누구 없나요?”

일순간 정적이 흐르고, 당황한(?)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말한다.

“한국어로 질문하면 아마도 통역이 필요할 겁니다. 사실 통역이 꼭 필요할 겁니다.”

이때 갑자기 한 기자가 유창한 언어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불행히도 오바마가 원한 한국기자가 아닌 중국기자다.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중국기자입니다. 제가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을 던져도 될까요?”라는 그의 물음에 오바마는 “공정하게 말해서 저는 한국 기자에게 질문을 요청했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이라며 거절의 의사 표시를 전하지만, 곧바로 “한국기자들에게 제가 대신 질문해도 되는지 물어보면 어떨까요?”라며 중국기자가 되받아친다.
 
난감한 상황에 빠진 오바마가 “그것은 한국 기자가 질문하고 싶은지에 따라서 결정되겠네요. (질문할 사람) 없나요? 아무도 없나요?”라며 재차 묻지만 어색한 침묵만 흐르고, 결국 그 질문권은 중국 기자에게 간다.

이는 지난 1월 28일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5부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말문을 터라>의 일부 장면으로, 질문과 생각이 사라진 한국 교육을 개선해 보자는 취지의 내용이다.

하지만 해당 방송이 온라인상에서 널리 회자가 된 것은 질문을 못하는 대학생이 아닌 기자 때문이다. 공개석상에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기자들의 모습 속에서 펜끝이 무뎌진 대한민국 언론계 현실이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언론학자들은 이 영상을 지상파뉴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의 정치적 편향성, 자본 예속 문제가 심화된 오늘날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꼬집는 일종의 ‘증거자료’가 됐다고들 해석한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영상 하나로 한국 언론을 단정적으로 평가할 순 없다면서도 “요즘 언론계에 기자가 다 죽었다는 말에는 100% 동감한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했다.

김 교수는 “정부 압력이나 대기업 입김이 점점 더 강해져서 언론인이 임금노동자화 됐으며, 이같은 현상이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며 “기자들 스스로도 언론인으로서 자존감이 지나치게 낮아진 듯하다”고 꼬집었다.

여기에는 물론 일선 기자들이 ‘기사다운 기사’를 쓸 수 없는 언론 환경도 크게 작용한다고 봤다. 김 교수는 “기자가 언론인으로서 전문성을 발휘해 자존을 세우려고 해도 지나친 속보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그 기회가 좀처럼 없다”며 “저널리즘의 전문성, 자율성, 독립성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영욱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또한 최근 <더피알>이 개최한 좌담회에서 “요새는 회사원 같은 기자들만 모여 있는 것 같다”고 일침하며 “Q(질문)가 실종된 언론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현직 언론인 역시 질문 없는 언론계 현실이 아쉽긴 마찬가지다. 중견 언론인 반병희씨는 구조적 문제와 문화적 경직성에서 원인을 짚었다.

우선 저널리스트 양성 과정에서의 구조적 문제가 크다. 그는 “한국 기자들이 양성되는 과정을 보면 저널리스트로서 이슈 설정, 윤리적 가치 등의 본질적 접근에 기반하기 보다는 단순히 언론사 관문을 통과하는 시험을 치러 된다”며 “이런 도제식 시스템 때문에 저널리스트로서 테크니컬한 부분이 결여된 측면이 있다”고 봤다.

또한 토론과 설득에 익숙치 않은 한국 교육의 한계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는 “우리나라는 제도권 내 교육 시스템 혹은 제도권 밖 사회적 관계 모두에서 자연스러운 의사전달, 성숙한 화자·청자로서의 훈련이 제대로 안된다”면서 “이 때문에 갑작스런 화두나 질문이 던져졌을 때, 그에 대한 대응이나 사고가 미숙하다. 기자도 이런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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