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기업 ‘화낙’
은둔의 기업 ‘화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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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2.0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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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이슈] 업계 보이지 않는 거대 손

[더피알=최연진] 올해 세계인의 관심은 가상현실, 스마트폰, 무인자동차 등 최첨단 정보기술(IT) 기기와 서비스에 관심이 쏠렸다.

삼성전자와 애플 등이 내놓는 스마트폰은 여전히 높은 관심을 끌고 있으며 구글과 애플, 테슬라와 현대자동차의 IT기술이 총집결된 무인자동차, 구글과 소니, 페이스북, 삼성전자가 잇따라 뛰어든 가상현실 서비스와 기기는 내년 IT 분야의 최대 화두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이 업체들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돈을 버는 회사가 있다. 바로 은둔의 기업으로 꼽히는 일본의 ‘화낙(FANUC)’이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애플과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성공 뒤에는 바로 이 화낙이 숨어 있다.
 

▲ 화낙은 자동화 로봇 제품에 힘을 쏟고 있다. 출처: 화낙 홈페이지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갤럭시S6의 몸체를 애플의 아이폰처럼 금속으로 만들기로 결정 한 뒤 전 세계 기계 설비 업체들을 대상으로 금속 몸체를 만들 장비를 알아봤다. 그런데 결론은 한 가지, 화낙 뿐이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화낙이 오랫동안 애플 스마트폰의 금속 바디를 만든 업체라는 점이 걸렸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지닌 만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삼성전자는 대당 9000만~1억원을 호가하는 화낙의 금속 가공 설비 약 2만대를 도입해 경북 구미와 베트남 휴대폰 공장에 설치했다. 애플은 화낙의 같은 장비를 아이폰6 생산시설인 팍스콘 공장에 무려 10만대나 설치했다.

 

다능은 군자의 수치

도대체 화낙이 어떤 기업이길래 이런 독보적 인기를 누릴까. 화낙은 일본의 IT기업 후지쓰에서 갈라져 나왔다. 1956년 후지쓰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수치제어(CNC) 기계를 개발했다. CNC는 쉽게 말해 수치를 입력하면 알아서 그대로 금속을 깎아 내는 기기다. 컴퓨터가 보편화 돼 있지 않던 당시로서는 놀랄 만한 기기였다.

이 기기를 개발한 주인공이 도쿄대 공학박사였던 이나바 세이우에몬 화낙 명예회장이다. 그는 CNC 기기 개발 후 1972년 후지쓰에서 분사해 화낙을 세웠다. 1974년 처음 CNC 산업용 로봇을 개발해 모든 공정에 도입했고 본격 양산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화낙은 오직 산업용 로봇과 자동화기기 한 우물만 팠다. 화낙의 회의실에는 ‘다능은 군자의 수치’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기업은 지나치게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대지 말고 한 곳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으로, 화낙의 경영 철학이기도 하다.
 

▲ ‘은둔의 기업’답게 화낙 본사는 후지산 인근 숲속에 숨어 있다. 출처: 화낙 홈페이지


이를 토대로 화낙은 세계 시장에서 스마트폰 가공기기 분야의 80%, CNC 기기 분야 50%, 자동화로봇 분야 20%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애플은 물론이고 테슬라를 비롯해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들이 대부분 이 회사의 설비로 몸체를 가공한다.

덕분에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7298억엔(약 6조8700억원), 영업이익 2978억엔(약 2조800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놀라운 것은 영업이익률이 무려 40.8%라는 점이다. 제조업체 영업이익률이 평균 3~5%대인 점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수치다.

화낙은 성공 비결을 집중과 철저한 은둔을 꼽는다. 이 회사의 본사는 후지산 인근 숲 속에 숨어 있다.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하며 본사 주변에 직원들이 머물 사택을 비롯해 의료 문화 시설과 술집, 목욕탕까지 갖춰 철저하게 보안을 지킨다.

이메일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극소수 고객 기업에 한해 이메일을 사용하며 대부분 외부 연락은 팩스로 주고받는다. 당연히 언론사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는다. 모두 보안을 위한 조치다. 그 바람에 일본증권협회 기업정보공개 평가에서 화낙은 늘 기계 분야 최하위를 차지한다. 그래도 화낙 경영진은 요지부동이다. 쓸 데 없는 기업 정보의 공개는 전쟁에서 군사 기밀을 공개하는 것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생산도 일본에서만 한다. 제품의 80%를 수출하지만 높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기술유출을 꺼려 야마나시현 후지산 자락 본사 공장과 이바라키현과 가고시마현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한다.

 

로봇 시대 곧 도래?

최근 화낙은 또 한 가지 흥미로운 행보를 보였다. 바로 도쿄 소재의 초기 창업기업(스타트업)인 프리퍼리드네트웍스에 9억엔을 투자해 지분 6%를 인수한 것이다. 프리퍼리드네트웍스는 인공지능기술 개발업체다. 특히 기기에 인공지능을 적용해 기기가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해 나가는 머신 러닝 기술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꼽힌다.

화낙은 프리퍼리드네트웍스의 기술을 이용해 자동화 로봇이 다른 로봇을 고치는 제품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로봇들이 제품을 생산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고치는 미래의 공장 같은 풍경이 조만간 연출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화낙은 내년 초에 시제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컴퓨터 수치제어(cnc) 공장 내부. 출처: 화낙 홈페이지


화낙의 목표와 전략은 명쾌하다. 철저하게 산업의 뒷단에서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을 돕겠다는 것이다. 이 업체의 계획에는 소비재용 제품이 없다. 로봇 기술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지만 인간형 로봇이나 가정에서 쓸 만한 로봇을 아예 개발할 계획이 없다.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같은 집중으로 매년 약 40%의 영업이익을 올린 화낙은 1조엔의 사내 유보금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를 주주들에게 배당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사내 유보금이 여유 있는 만큼 외부 요인에 흔들릴 여지가 적어 더욱 자신들의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화낙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경영이다. 특이하게도 창업자의 아들인 이나바 요시하루 사장은 화낙의 주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창업자인 이나바 세이우에몬 명예회장이 처음부터 경영 세습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현 사장은 도쿄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엔지니어로 화낙에 입사해 차근차근 승진하며 2003년 CEO가 됐다. 현 사장의 장남이자 창업자의 손자도 화낙에 전무로 근무하지만 로봇 박사학위를 갖고 있어서 입사했을 뿐 경영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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