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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상자’와 ‘바보 네트워크’…이 시대 미디어의 자화상
‘침묵 상자’와 ‘바보 네트워크’…이 시대 미디어의 자화상
  • 더피알 thepr@the-pr.co.kr
  • 승인 2016.01.0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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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외면하는 사회적 의제, ‘공론의 장’은 어디에?

지난달 28일, 자유언론실천재단 송년회에 참석했다. 겉으로 보기는 여느 송년회처럼 웃고 떠들고 노래하는 소리로 왁자지껄했지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비장감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왕년의 해직 언론인들, 그리고 현재의 해직 언론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 재단은 오늘의 언론 현실을 1974년 동아일보에서 시작한 ‘자유언론실천’ 정신으로 타개하고자 2014년 10월 설립한 단체다. 20여 회원단체가 있다.

▲ (자료사진)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kbs노조 주최로 열린 공동 파업 출정식. ⓒ뉴시스

재단 출범식 날 김종철 이사장은 “오늘날 우리나라 언론과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참담하기 짝이 없다. 지금처럼 언론이 정권 하수인 노릇을 철저히 하며 국민을 두 갈래로 분열시키고, 오로지 정권과 결탁해 수구 기득권에 편입된 적이 없다”고 했다. 보수 메이저 신문과 종편 방송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들 언론이 ‘폭력’으로, ‘사회 흉기’로 변했다는 것이다.

‘사회 흉기’로 변한 언론

천안함 사건 이후 우리나라는 국가적 대형 아젠다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세월호 침몰로 300여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사망·실종한 원인을 둘러싼 논란, 전남 순천에서 이상한 형태로 발견된 한 시신과 참사의 배후 책임자로 지목된 유병언 관련성을 둘러싼 의혹,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결론내린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논란,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한·일 외무장관 회담 문제 등 굵직한 것들만 꼽아도 숨이 찰 정도다.

어떤 의혹과 이슈도 속 시원하게 진상이 밝혀진 것은 없다. 그 과정에서 언론은 ‘밴드왜건(bandwagon)’으로 철저하게 하수인 노릇을 했다.

▲ 언론은 잇단 사회적 논란 속에서 철저히 하수인 노릇을 했다.

종편을 제외한 지상파TV는 ‘바보상자’를 넘어 아예 ‘침묵상자’가 돼버렸다. 지난달 10일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체포를 톱으로 다룰 때는 민주노총과 조계종 화쟁위원회를 싸잡아 비난하면서도 이 사태를 유발한 노동관련법 개정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했다.

같은 달 14일부터 열렸던 세월호 청문회는 김동수(파란 바지 의인으로 불린 생존자) 자해 시도를 제외하고는 단신으로만 겨우 다뤘을 뿐이다. TV만 보고 있으면 어떤 일이 왜 일어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언론의 궁극적인 목표가 ‘정보화된 시민(Informed Citizen)’의 형성에 있다고 언론헌장에 명시하고 있다. 충분히 정보를 제공받아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아젠다에 대해 자신의 독립적 의견을 가진 의식화된 존재로서의 ‘시민’ 형성에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언론이 제시하는 아젠다와 담론에 대해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공공적 문제나 갈등 해결에 당사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는 구조다.

탐사 저널리즘의 실종과 오락화

우리 모두가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의제는 무엇이고,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역할은 TV에서 시사보도, 토론, 심층탐사 프로그램이 담당한다.

과거 TV는 중요한 의제를 빠짐없이 다루려 했고, 권력이 감추고 싶어 하는 자료를 찾아내거나 위험한 취재를 마다하지 않았다. 성역과 금기에도 도전했고 첨단적이고 심층적인 분석도 곁들였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MBC) ‘추적 60분’(KBS2) ‘PD수첩’(MBC), ‘시사기획 쌈’(KBS1), ‘100분 토론’(MBC), ‘심야토론’(KBS1) 등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점점 편성에서 제외되고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프로그램 제작자는 방송내용을 문제 삼아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고 지방이나 비제작부서로 전보되고 있다. KBS와 MBC에서 공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MBC는 이런 류의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던 교양제작국을 아예 해체해버리는 비상식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해고된 기자와 PD들은 대안언론을 찾아 나서고 있으나 대부분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고 영향력도 미미한 수준이다.

▲ tv에서 시사보도, 토론, 심층탐사 프로그램은 사라지거나 연성화의 길로 가고 있다.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소재주의로 흐르거나 연성화의 길을 걷고 있다. 가십거리 정도의 소재를 확대해 다루거나, 구조적 원인은 제쳐둔 채 사회적 문제를 흥밋거리로 전달하는 식이다.

오락적 기능과의 장르 융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썰전’(JTBC)이나 ‘쿨까당’(tvN)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사안을 총체적이고 구조적으로 보기보다는 특정 부분에만 집중해 미묘한 프레임 착종을 유도한다. 김무성 사위 마약사건에서 팟캐스트 ‘정치카페’는 청와대와 김무성의 ‘권력투쟁’ 프레임으로 접근한 반면, ‘썰전’은 ‘딸바보’ 프레임으로 접근했다.

환상의 섬으로 존재하는 TV

사회적 아젠다를 다루는 대신 이제 TV는 온통 시추에이션 코미디나 퓨전사극, 웹드라마 등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스낵컬처에 열중하고 있다. 상업TV가 판치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하우스 오브 카즈’, ‘타이런트’ 등의 정치드라마, 언론의 현실을 정면으로 문제 삼는 ‘뉴스룸’ 같은 드라마가 등장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예능·오락 장르로 가면 다양하다는 정도를 넘어서 화려하다. 대중가요 부르기 시합, 리얼 버라이어티로 포장한 놀이, 맛있다는 음식점 찾아다니기, 요리하기, 애 키우기, 외국인들의 잡담으로 TV는 정신이 없다.

출연 섭외가 가장 힘든 사람이 셰프 직종이고, 초등학생들의 장래 꿈 1순위가 연예인이다. 고액을 보장하는 스카웃 대상도 이들 장르의 제작자들이다. 5공화국이 기획 집행했던 3S(Screen·Sport·Sex) 우민정책과 다를 바 없다.

TV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멀리 떨어져 환상의 섬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사보도와 심층탐사 저널리즘이 멸종한 탓이다. 스낵컬처식 프로그램이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들은 한류를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부문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sns가 뉴스의 소비 채널로 떠올랐지만 내가 좋아하는 정보만 찾게 한다. 사진: 페이스북 뉴스피드 화면

SNS는 ‘바보 네트워크’인가

사태가 이에 이르자 SNS가 언론과 뚜렷하게 대립각을 이뤘다. 언론을 불신하면서 스스로 콘텐츠 생산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주요한 정치사회 현안을 언론이 아니라 SNS를 통해 먼저 접하고 소비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함정이 있다. 기사를 링크하고 댓글을 다는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고, 내가 좋아하는 정보만 찾으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산적한 문제에 대해 나와 맞지 않으면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미디어 비평가는 이를 ‘바보 네트워크’라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우리 공동체의 주요 의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심층적인 분석은 SNS 시대에도 중요하다. ‘정보화된 시민’을 기반으로 한 공론장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시도는 현재진행형이다. 재작년 말, 동아투위 103명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모호한 이유로 이를 기각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

시사보도, 시사토론, 심층탐사 저널리즘을 실천하다 해직된 언론인들도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과 트렌드의 변화도 이에 가세했다.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한다’. ‘깨어나라 자유언론!’. 자유언론실천재단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다. 병신년(丙新年) 송년회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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