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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오보 대처법 (1)
슬기로운 오보 대처법 (1)
  • 양재규 eselltree92@hotmail.com
  • 승인 2019.03.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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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규의 피알Law]
같은 오보, 다른 판단? 기사의 핵심·맥락 따져봐야

[더피알=양재규] 지난 1월 23일자 어느 일간지의 기사 한 대목을 인용해본다.

이 전 총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신의 선거사무소에 돈이 든 ‘비타500’ 상자를 놓고 왔다는 2015년 해당 언론사 보도는 허구라며 지난해 4월 3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중략) 그는 “당시 충격에 빠진 국민들은 총리가 비타500 박스로 돈을 받았구나 믿었고 초등학교 1학년생이던 내 손자도 영문도 모른 채 할아버지가 비타500을 좋아한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중략) 이 전 총리는 “경향신문은 기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작위적이고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그 누구도 말하지 않은 비타500을 1면 톱기사로 국민이 믿게 보도했다”며 “이것이 허위 보도가 아니라면 무엇이 허위 보도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사 속 인물은 이완구 전 총리로, 허위보도를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다. 다툼의 발단이 된 기사는 2015년 4월 15일자 경향신문 1면 톱기사로 실린 ‘성완종 측 “차에서 비타500 박스 꺼내 전달”’이었다. 경향신문은 전날에도 1면 톱으로 이 전 총리의 금품수수 의혹을 크게 다뤘었다. 4월 15일자 비타500 기사는 이미 보도된 이 전 총리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일종의 부연설명이었다. 관련자의 증언을 토대로 돈이 전달됐다는 일시와 장소, 상황을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했다.

물론 시간이 흐른 뒤 비타500 기사를 포함한 이 전 총리 금품수수 의혹 관련 보도는 결과적으로 ‘오보’가 됐다. 불법정치자금수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총리가 1심에서만 유죄를 받고 2심과 3심에서 연거푸 무죄를 받았기 때문이다. 의혹을 풀 열쇠를 쥐고 있던 성완종 회장이 죽고 없는 상황에서 그가 남긴 증언, 즉 이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는 녹취록을 법원은 유죄의 증거로 채택하지 못했다.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이 전 총리는 문제의 비타500 기사를 보도한 경향신문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의 1심 최종변론기일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 바로 앞에서 인용한 기사다. 기사 내용상으로도 그렇고 당일 같은 법정에 있었던 지인의 전언도 동일했는데, 이 전 총리는 해당 언론사에서 ‘돈’을 받았다고 보도한 것보다 ‘비타500 박스’로 받았다고 묘사한 것을 더 문제시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018년 4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향신문 성완종 리스트 관련 보도내용이 허위라고 반박하고 있다. 뉴시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018년 4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향신문 성완종 리스트 관련 보도내용이 허위라고 반박하고 있다. 뉴시스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면 돈을 받았는지가 핵심이지, ‘비타500 박스’로 돈을 받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전 총리 측은 금품수수 의혹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긴 요소로 ‘비타500 박스’를 지목하며 해당 기사가 악의적 오보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간주한 것 같다.

‘비타500’과 ‘양주파티’의 차이

서는 위치가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고 했던가. 오보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PR담당자와 기자의 인식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 ‘언론의 의도적 해석으로 인한 왜곡보도’를 정부나 기업 PR담당자들은 오보로 인식하는 반면, 기자들은 오보로 보지 않는다(김영욱, 오보와 오해, 한국언론학보 2008년 12월). ‘사실과 명백히 다른 보도’ 정도가 양쪽 그룹에서 공통으로 인정하는 오보 유형이다. 그렇다면 ‘비타500 박스’ 사례처럼 기사에 사용된 특정한 용어나 표현의 문제는 과연 오보로 인정될 수 있을까?

먼저, 오보로 인정된 사례다. 2005년 12월 나주, 정읍 등 호남지역에 폭설이 내렸다, 이해찬 당시 총리는 폭설피해 현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나주지역 폭설 현장을 방문한 다음 나주시청에서 전남지역 피해 현황을 보고 받은 후 정읍으로 이동, 시청에서 전북지역 피해 현황을 보고받고 다시 정읍 시내 한 식당에서 만찬간담회를 갖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총리는 나주시 방문 후 정읍으로 이동하던 중 기상 악화로 예정보다 늦게 정읍에 도착했다. 이 총리는 현장관계자들의 판단에 따라 곧바로 식당으로 가서 그곳에서 전북지역 피해 현황을 보고받고 1시간 30분가량 식사를 한 다음 정읍을 떠났다. 그로부터 6일이 지난 후, 한 신문에서 ‘李총리, 폭설피해 현장서 ‘양주파티’’ 제하로 총리가 현장시찰은 하지 않은 채 식당에서 양주파티를 벌였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양주파티’라는 단어였다. 총리가 당일 식당에서 마신 술은 양주가 아니고 지역 특산품인 복분자주였다고 한다. 해당 신문사는 패소했고 2000만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다. 그런데 패소의 원인이 단지 술의 종류를 잘못 표시한 데에만 있다고 볼 수 없다.

기사의 핵심은 총리가 식당에서 마신 술의 종류가 무엇이었느냐가 아니라 공무에 임하는 태도, 즉 민생에는 관심이 없고 여흥을 즐긴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러한 기사 논조를 강화시켜주는 단어가 바로 ‘양주파티’였던 셈이다. 이에 관해 법원은 “그 술의 종류가 양주인지 복분자주인지가 이 사건의 핵심은 아니지만 ‘양주파티’라는 말이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거부감을 생각할 때 위 기사에 있어서 이 부분은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서울고등법원 2008. 7. 2. 선고 2007나61870 판결)

특정 단어·표현에 집착 말아야

반대의 사례도 있다. 2016년 3월 SBS 8시뉴스는 ‘현관 앞에 담벼락…‘감옥’ 만든 건설사‘ 제하로 건물 신축에 따른 인접 주민의 피해 주장을 보도했다. 건물 신축 후 만들어진 담장으로 인해 인접 주택의 출입문을 쓸 수 없게 됐고, 창문의 절반이 가려져 주택 내부가 대낮에도 어둡다는 것이다. 해당 방송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감옥’이라는 단어로 표현했고 건설사 측에서는 이 단어 등을 문제 삼아 정정보도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신축 건물이 들어선 후 관련 피해를 '감옥'으로 표현해 보도한 SBS 뉴스 화면.
신축 건물이 들어선 후 관련 피해를 '감옥'으로 표현해 보도한 SBS 뉴스 화면.

법원은 ‘감옥’이라는 표현에 관해 “(담장으로 인한 상황에 대한) 수사적 평가 내지 이 사건 주택의 거주자 입장에서 그들의 의사를 압축하여 표현한 점에 비추어 보면 … 정정보도의 대상이 되는 사실적 보도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고 결국 건설사 측의 패소로 종결됐다.(서울고등법원 2017. 11. 10. 선고 2017나2011320 판결)

기사에 사용된 특정 단어나 용어가 문제 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 단어로 인해 사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독자나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지게 되고, 또 패러디 등을 유발함으써 피해를 가중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용어 사용의 부적절함과는 별개로 앞서 살펴본 두 사례처럼 그것이 곧장 법적 책임으로 이어지는 오보인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비타500 박스’ 사건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지난 2월 15일 판결이 선고됐는데 1심 재판부는 경향신문의 손을 들어줬다. 비록 해당 기사가 허위보도로 밝혀졌지만 ‘비타500 박스’라는 표현과 관련해 언론사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보 및 그에 따른 책임 유무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PR담당자와 기자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과 법관 사이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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