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은 '개천에서 용난 사람'?
김기덕 감독은 '개천에서 용난 사람'?
  • 이동익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2.09.10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토크] 예술도 스펙으로 보는 언론

▲ 9일(한국시각)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 열린 제69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이 황금사자 트로피를 들어 보이며 손을 흔들고 있다.

[The PR=이동익 기자] 김기덕 감독의 18번째 영화 '피에타'가 지난 9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살롱 그 그랑데(Salon de Grande)’에서 열린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Leone D'Oro)을 받았다. 한국 영화가 베니스·칸·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황금사자상 수상인 만큼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언론들은 김기덕 감독의 수상 소식과 함께 그의 인생스토리를 단골메뉴로 전했다. 언론에서 김기덕 감독은 더이상 영화감독이 아니었다. 단지 어려운 역경을 이겨낸 ‘성공한 사람’이었다.

이번 수상소식에도 어김없이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그의 학력과 공장을 전전했던 젊은 날의 어려웠던 시절을 조명했다. 영화 학교도 다니지 않았고 조연출 경험도 없는 김 감독을, 한국 영화계 ‘아웃사이더’라 표현하며 소위 ‘개천에 용 났다’고 했다. 심지어 모 교수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그의 학력을 두고, 학벌로 무장된 주류사회를 깨트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도 했다.

한편, 해외 주요 외신들도 한국만큼이나 김기덕 감독의 수상소식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 언론처럼 그의 학력을 언급하며 김기덕 감독의 인생역전 성공 스토리는 담지 않았다.

이들에게 김기덕 감독의 초등학교 학력은 주된 관심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김기덕 감독의 수상소식이 ‘개천에 용 난 사람’의 성공 스토리지만 이들에게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낸 영화감독일 뿐이다. 외신들은 그의 학력, 젊은 시절 역경 등의 개인사 보다는 그가 만든 이전 대표작들을 나열하며 그보다는 영화를 평가했다.

‘스펙’에 목매는 대한민국…영화평가도 ‘스펙’이 먼저

대한민국은 현재 ‘스펙’에 미쳐 있다. 너도나도 토익점수, 자격증 따기에 열중이며, 이제 막 겨우 한국말을 깨우친 어린 아이들이 ‘조기유학’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해외로 내몰린다. 10대는 진학, 20대는 취업, 30~40대는 결혼과 승진, 더 높은 연령대는 은퇴 준비로 스펙에 몰두한다. 남들보다 뒤쳐질까봐 자신을 살피고, 인생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일보다는 스펙이 먼저다.

실제로 지난 6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내놓은 ‘2012년 국가기술자격 통계연보’에 따르면 50대 이상 자격증 취득자수는 2만9413명으로 2007년(1만6615명)에 비해 77% 증가했다. 취업전선에 뛰어든 20대도 21만 8424명에 달했다.

이제 우리는 ‘스펙’에 미쳐서 영화를 논할 때도 작가의 스펙을 먼저 생각한다. 한 영화 평론가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를 두고 “김기덕 감독이 실제로 젊은 시절 공단 노동자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밑바닥 정서를 잘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007년에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위조 파문은 한국의 학벌중시 풍토를 전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녀의 학력위조는 당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가십성 기사와 함께 일파만파 커져갔다.

당시 신정아 교수의 수업은 동국대 학생들 사이에서 ‘잘 가르치기’로 소문나 큰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학력위조는 잘못 된 것이지만, 학력으로 교수의 능력을 점치는 한국사회가 씁쓸하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이 이번 작품에 들인 제작비는 1억여원. 한국 상업 영화 평균 제작비(40억원)의 40분의 1 비용으로 세계최고의 영화를 만들어 냈다. 1억원의 저예산으로 세계최고의 영화를 만든 것도 기적이지만, 학력도 없고, 연줄도 없는 그가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영화같은 기적'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