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빛’이 된…오뚜기 점자 패키지
‘어둠 속의 빛’이 된…오뚜기 점자 패키지
  • 김병주 기자 (kbj1218@the-pr.co.kr)
  • 승인 2023.11.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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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모두를 위한 디자인과 사회적 소통 ④

공공디자인 토론회 2023 이승윤 오뚜기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센터장
‘점자는 특정 인구만이 아니라 소비자 모두를 아우르는 정책의 일환’

더피알=김병주 기자 | 지속가능경영이 기업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ESG 성과가 필수 요소가 된 지 오래다. 먹거리에 선택지가 넘쳐나며 양보다 질을 우선하는 현재, 식품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더 나은 제품을 ‘모두’가 즐기게 하는 데 있다.

오뚜기의 ESG 활동은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캐치해 시각장애인의 제품 접근성 및 사용 편의성을 제고한 사례다. 기획 단계부터 소비자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한편 불편사항을 수렴해 개선에 나서는 ‘컨슈머 프렌들리’(Consumer Friendly) 정책은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공신이다.

이러한 컨슈머 프렌들리 정책에 대해 이승윤 오뚜기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센터장은 ‘어둠 속의 빛’이라는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오뚜기가 제품에 점자 패키지를 넣기까지의 이야기는,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발견한 한 줄기 빛처럼 ‘누구나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노력의 과정이었다.

오뚜기 발표 자료 오프닝 시퀀스
오뚜기 발표 자료 '어둠 속의 빛' 오프닝 시퀀스 4컷 연결. 어둠 속에 생겨난 작은 빛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원형일 수도,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오뚜기가 손에게 눈을 가져다주기까지 들인 노력

2021년 1월 오뚜기는 ‘용기 안쪽의 조리 시 물 붓는 선(이하 물선) 확인이 어려워 손가락을 넣어 확인해야 한다’는 시각장애인 고객의 의견을 받았다. 모든 용기에 표시되어 있던 물선이 누군가에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오뚜기는 곧바로 제품 개선에 나섰다. 용기 내부 물선을 0.5mm에서 0.7mm로 더 깊이 음각해 촉각 인지를 쉽게 했고, 미니 컵은 양각, 큰 컵은 음각으로 물선을 다르게 표시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오뚜기는 이 소비자의 의견을 계기로 대한민국 라면업계 최초로 겉면 점자 표기를 도입했다.

오뚜기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도움을 받아 설문조사와 검수를 시행했고, 3개월에 걸친 FGI(포커스그룹 인터뷰)를 통해 같은 해 9월 실제 제품을 생산했다. 이후 발포컵을 사용하는 모든 라면 컵에는 점자 표기를 적용하고 있으며, 그밖에 발포용기를 사용하는 다른 제품에도 확대 적용을 추진해 지속성을 부여했다.

오뚜기는 2022년 11월 3일 컵밥 14종과 용기죽 8종에 점자 표기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점자의 날’인 2022년 11월 4일 서울 서초구 농협유통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컵라면에 점자가 표기된 모습. 뉴시스.
오뚜기는 2022년 11월 3일 컵밥 14종과 용기죽 8종에 점자 표기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점자의 날’인 2022년 11월 4일 서울 서초구 농협유통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오뚜기 컵라면에 점자가 표기된 모습. 뉴시스.

이승윤 센터장은 “시각장애인 전용 웹 기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69명 중 ‘본인이 직접 조리’하는 비율은 80%로 예상보다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조리를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용기면 제품 섭취 시 가장 불편하다고 답한 점은 ‘물선을 찾기 어렵다’가 63.8%, ‘먹기 전까지 맛의 종류를 구분할 수 없다’가 27.5%였다. 이 두 가지는 오뚜기가 점자 표기를 통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항이었다.

기술적인 면에서 점자 표기가 가능했던 것은 오뚜기의 자산인 ‘스마트그린컵’ 덕분이었다.

기존 용기 대비 종이 사용량을 줄이고 맛을 좋게 유지해주는 스마트그린컵은 2014년 개발 이후 라면뿐 아니라 다른 제품에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발포컵’이라고 불리는 이 용기는 종이 양면에 플라스틱 레진을 코팅한 후, 열풍터널(가스식·전기식)을 통과시킬 때 외면이 발포되는 원리를 이용해 제조한다.

인쇄면이 터지거나 열풍터널을 지날 때 발포면이 고르지 않는 등 공정상의 어려움이 있음에도 발포컵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양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보존성이 향상돼 유통기한이 5개월에서 7개월로 늘었고, 적은 종이 사용으로 탄소배출량이 30% 정도 저감됐다. 실제로 오뚜기는 스마트그린컵 적용으로 5년간(2017~2021년) 약 8500억 톤의 종이 사용을 절감했다.

여기에 제품면의 발포로 보온 효과가 향상돼 면(麵)의 보관성이 향상되었고, 용기 내면 온도가 전보다 1.15℃ 높게 유지됐다. 전자레인지 겸용으로 개발한 스마트그린컵은 조리 시간을 4분에서 2분으로 줄였고, 끓는 물이 없어도 조리할 수 있어 간편하다.

이승윤 오뚜기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센터장이 10월 24일 공공디자인 토론회에서 오뚜기의 스마트그린컵이 거둔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승윤 오뚜기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센터장이 10월 24일 공공디자인 토론회에서 오뚜기의 스마트그린컵이 거둔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개선점에 대한 소통의 여지

가장 큰 과제는 발포컵 제조 공정상 발포도를 조절해 단차(높낮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오뚜기는 이와 관련해 점자의 위치와 깊이에 관한 1차 대면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인쇄 방식마다 점자 표현 정도를 비교하고, 실제 사용자들의 사용성 확인 및 평가에 나섰다.

점자는 용기 몸체의 접합부 위치에 표시했는데, 주변 단차를 활용해 감촉으로 점자를 찾아내기 쉬운 위치라는 점에 주목했다.

2차 설문에서는 전자레인지 겸용 여부 표시도 추가하여 점자의 위치와 가독성 여부를 최종적으로 조사했다.

디자인 측면에서 점자 표기에는 물선, 제품명, 전자레인지 조리 가능 여부를 모두 포함했고, 미니 컵은 12글자, 큰 컵은 14글자까지 표기 가능하도록 했다. 점자 표기는 겉면 접합부를 기준으로 큰 컵은 상단에 가로로, 미니 컵은 세로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 개선해야 할 점도 많이 남은 상태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수축비닐의 두께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뚜기는 집에서 제품을 보관할 때 가급적 비닐을 벗겨두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외에 큰 용기의 경우 캡 밑에 몸체와 단차가 생기는 부분이 점자를 읽을 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오뚜기가 지속적으로 개선 방안을 찾고 있는 지점이다.

제품에 점자를 적용한 후 온·오프라인상에서 많은 소비자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승윤 센터장은 스마트그린컵 적용 취지와 마찬가지로 “점자는 특정 인구만을 타기팅했다기보다는 소비자 의견을 두루 수렴해 개선점을 찾는 컨슈머 프렌들리 정책의 일환이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2021년 1월 16일 ‘원샷한솔OneshotHansol’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시각장애인이 컵라면을 끓이는 법’ 영상에서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우)과 ‘우령의 유디오’(좌)가 각종 라면 제품을 살피고 있다. 원샷한솔OneshotHansol 유튜브 캡처.
2021년 1월 16일 ‘원샷한솔OneshotHansol’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시각장애인이 컵라면을 끓이는 법’ 영상에서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우)과 ‘우령의 유디오’(좌)가 각종 라면 제품을 짚어보고 있다. 원샷한솔OneshotHansol 유튜브 캡처.

오뚜기가 제품을 만들 때마다 핵심 가치로 삼는 ‘Easy + Rich’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쉬운 접근성과 풍부한 성능은 이제 기업의 제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니라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 소양’에 가까워졌다. 소비자에게 이롭고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고 개선해나가자는 기본 원칙이 점자 제작으로 이어진 셈이다.

발표 이후 이승윤 센터장은 “‘Easy + Rich’란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오뚜기의 기업정신이며, 앞으로도 더 많은 소비자 의견에 귀 기울이고 개선시켜 나갈 것”이라 더피알의 질의과정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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