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중심의 시대, ‘소리’로 영혼을 울려야”
“시각 중심의 시대, ‘소리’로 영혼을 울려야”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4.05.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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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CM송 대가’ 김도향이 들려주는 7080 광고음악

[더피알=문용필 기자] ‘스크류바’와 ‘뽀삐화장지’, 그리고 ‘아카시아껌’…언뜻 보면 큰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이들 상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20년 넘게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히트 CM송으로 유명한 제품이라는 점이다. 자체 제작한 CM송 보다는 해외 유명 뮤지션들의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재의 광고음악 시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해당 제품의 CM송은 모두 김도향 서울오디오 대표의 작품이다. 그는 지금까지 약 3000여곡의 CM송을 발표했고 이 중 상당수는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마 70~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이 중 김 대표의 CM송을 흥얼거려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김 대표에게는 ‘CM송의 대가’, ‘CM송의 대부’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CM송 제작에서 거의 손을 뗀 상태지만 김 대표를 빼고 한국의 광고음악을 논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느 한적한 오후,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서울오디오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TV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사람 좋아보이는 너털웃음,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힘있는 목소리,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헌팅캡과 ‘산신령 수염’도 그대로였다. 근황을 묻자 김 대표는 “항상 음악하면서 산다”고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공연과 강의도 하고 가끔 라디오나 TV에도 출연한다고 했다.

처음 광고음악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묻자 김 대표의 기억이 4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갔다.

“투코리언즈라는 듀엣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는데 제법 인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오리온제과가 ‘줄줄이사탕’을 출시했는데 모 프로덕션의 아는 사람이 CM송을 만들어보라고 해서 재미있게 만들어봤어요. 그게 반응이 상당히 좋았던 거죠.”

이때가 1973년. 김 대표가 가요계에 데뷔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그리고 ‘첫 작품’의 성공이후 그에게 CM송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점점 바빠져서 오히려 노래를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가수 김도향’은 그렇게 광고음악가로 변신했다. 1975년에는 광고음악 전문 업체인 서울오디오를 설립했다. 앞서 언급한 ‘뽀삐 화장지’와 ‘스크류바’, ‘아카시아 껌’ 외에도 ‘양반김’, ‘맛동산’ 등 숱한 히트 CM송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LG그룹의 이미지송으로 유명한 ‘사랑해요 LG’도 그의 작품이다.

“옛날에는 갑자기 제품을 들고와서 ‘내일까지 만들어달라’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럼 가사까지 써서 얼른 만들어줘야 했죠. 게다가 서너 개의 안을 달라고 해요. (만들어서) 보내면 (그 중 하나를) 선택해서 어떻게 해서든 그 주에 방송에 내보냈죠. 제품판매량과 대중들의 반응이 비례해서 나타나니까 성공여부를 바로 알 수 있었죠. 다행히 실패작이 별로 없었어요.”

‘광고음악가’ 김도향, 성공비결은 ‘번뜩이는 아이디어’

“가장 기억에 남는 CM송이 어떤 곡이냐”고 묻자 김 대표는 “그런건 없다”며 “(예전에) 산에 다니면서 마음 공부한다고 돌아다닐 때 (산에서) 내려오면 무슨 노래가 나오는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다. 알고 보니 내가 만든 곡이더라. (만든 지) 30년 지나도 나오는 노래들이 한 20~30곡 되더라. 그렇게 내가 만든 곡이 계속 나오니 기억나는 것이지 옛날에 만든 건 다 잊어버렸다”고 답했다.

김 대표가 광고음악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였다. 제품을 접하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을 가사와 멜로디로 풀어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거짓말로 과장하지 않고 느낀 대로 (작곡을) 하는데 그게 재미있으니까 성공적이었던 거죠. 초창기에 저에게 일이 많이 몰린 이유 중 하나가 뭐냐면 CF감독들은 어떤 그림을 만들지를 굉장히 고민하는데 저와 이야기하면 쉽게 풀렸거든요. 그래서 일이 많았던 거죠. 내가 잘생겼거나 특별히 잘해서 많이 한 것은 아니에요.”

광고회사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이전에는 카피라이터 역할까지 했다고 한다. “제품에 대한 느낌이 나오는 단어를 생각해야 노래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심지어 1970년대에는 제품명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단다. 그야말로 만능 광고인이었던 셈이다.

“기타를 들고 제품을 보면서 바로 (CM송을) 만들었어요. 곡 만드는 시간은 한 오분 미만? 카피라이팅이 되니까 바로 노래가 되는 거죠. 카피가 안나오면 노래가 안나와요. 느낌에 맞는 가사가 떠올라야 노래가 떠오르죠. 따로 (가사를) 만들어서 거기에 뭘 붙이려고 하면 우리말처럼 어려운 말이 없어요.

▲ 김도향 대표는 네 차례나 클리오 광고제에서 음악상을 수상했다. (사진출처=김도향 대표 블로그)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김 대표는 지난 1980년 세계적 권위의 클리오 국제광고제 음악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3번이나 클리오 음악상을 받았다. 광고음악가로서 전성기를 달렸던 80년대에는 국내 광고음악상의 단골 수상자이기도 했다.

흔히들 김도향 하면 남녀노소 부를 수 있는 CM송을 떠올리지만 그는 유행을 선도하는 광고음악가이기도 했다. 첫 클리오 음악상을 받았던 곡은 반도패션(현 LF)의 라디오 광고음악. 클래식을 디스코로 편곡한,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시도였다.

그러나 김 대표는 ‘CM송의 대부’라는 호칭에는 손사래를 쳤다.

“사실 (내가) 대부 소리를 들으면 안돼요. 창피하죠. 제 (CM송) 선배님들 중에는 최창권 씨(애니메이션 ‘태권V’의 주제가 작곡가), 길옥윤 씨 같은 분들이 있어요. 물론 그 분들이 CM송 전문 스튜디오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지명도가 있으니 그분들이 (광고음악을) 많이 하셨죠.”

“지금 광고인들 CM송 가치 잘 모르는 것 같다”

김 대표의 영역은 광고음악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다. 가수로서도 ‘벽오동 심은 뜻은’ ‘바보처럼 살았군요’ 등의 히트곡들을 발표했고 ‘바람불어 좋은날’ 등의 영화음악, ‘아기공룡 둘리’ 같은 애니메이션 음악에도 손을 댔다. 90년부터는 명상음악가로도 활동했고 심지어 교가와 사가(社歌)를 만들기도 했다. GS칼텍스의 사가와 영동대학교 교가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다른 음악과 비교해 김 대표가 생각하는 광고음악의 매력은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자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음악은 다 똑같고 다 좋아요. 광고음악은 15초~30초짜리로 많이 만들었고 명상음악은 한곡 자체가 40분에서 1시간이죠. 그런데 명상음악을 만들어보니 15초나 1시간이나 똑같더라고요. 한 작품에 들어간 내용이나 완성하는 과정은 같다는 것이죠.”

“그래도 차이점이 있지 않겠느냐”고 재차 묻자 김 대표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CM송에 일단 어떤 매력이 있냐면 광고주가 돈을 들여서 (방송에) 틀잖아요. 방송에 노출이 많이 되지 않겠어요? 내가 가만히 있어도 히트하게 되는 거죠. 허허”

하지만 광고음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김 대표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80년대 넘어가면서 (CM송이) 줄기 시작했어요. 2000년대 넘어가면서 확 줄었고 한때는 좀 살아나나 했더니 다시 줄더라고요. 지금은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도 (과거와) 달라졌고 노래보다는 더 멋진 표현을 찾기 시작하면서 90년대 이후로는 시각적인 감각으로 많이 간 것 같아요. 그런데 인간의 영혼을 깨우는 것은 시각이 아니라 청각이거든요. 뇌에 가깝게 있는 귀가 (소리를) 영혼까지 들리게 해주는 역할을 하죠, 소리라는 것은 그만큼 영혼 깊숙이 들어옵니다. 시각을 중심으로 가고 있는 광고시대지만 그래도 소리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 대표는 “제가 CM송을 많이 만들때는 광고의 중심이 CM송이었다”며 “(그런데) 90년대부터 그래픽이 좋아지면서 광고가 해외 스타일로 바뀌었다. 배경음악도 해외음악을 자꾸 쓰기 시작하면서 (CM송은) 어느새 조연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CM송이 가끔 나오기는 하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존재가치가 좀 떨어졌다. 그런데 제가 볼 때 그것은 광고인의 착각”이라며 “CM송이 제대로 히트하면 전국이 들썩거린다. 그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 대표는 광고음악으로 해외음악이 많이 쓰이는데 대해서는 크게 부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해외음악이 광고에 사용되는) 그런 영향들이 전부 케이팝으로 간다”며 “해외 음악언어에 우리말과 춤을 붙여 지금 케이팝 아이돌들이 세계를 휩쓸고 있지 않나. 광고음악이 그 트렌드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는 생각을 피력하기도 했다.

“요즘 음악하는 사람들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하지만 최근 나온 CM송 중에 기억나는 곡은 없다고 했다. “요즘은 뉴스를 중심으로 TV를 보기 때문에 CM송이 들리는 광고를 잘 못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냐”고 묻자 김 대표는 “그렇다”며 “젊은이들의 귀에 들릴지는 몰라도 제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그럴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새로운 ‘김도향 표 CM송’을 들을 수 있을까. 그러나 김 대표는 “나는 사실 접었다. 접은지 몇 십년 됐다”고 말했다.

가요계, 혹은 광고음악 후배들에게 하고싶은 말을 들려달라는 주문에도 “나보다 다 잘해서 내가 할 이야기가 없다”고 자신을 낮췄다. “요즘 음악하는 사람들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며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다들 노래도 잘하고 감각도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너무 겸손하신 것 아니냐”고 말하자 김 대표는 “아니다”며 “노래는 일생을 하면서 발전하는 과정이 있다. 그 나이대에서만 부를 수 있는게 있고 나이를 먹을수록 달라지는 음악이 있는데 (후배들을 보면) 내가 그 나이 때 정말 바보같았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뛰어나다. 자질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근황을 물었다. 김 대표는 새 음반을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스트레스 받지 말고 신나게 즐기라는 내용의 댄스곡이라는 설명. 뮤직비디오도 만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김 대표는 그간 데프콘, 윤종신, DJ DOC의 김창렬 등 까마득한 후배들과 활발히 협업하면서 ‘젊은 감각’을 잃지 않은 가수이기도 하다. ‘광고음악가’ 김도향은 휴식기에 들어갔지만 ‘뮤지션’ 김도향은 칠순의 나이에도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그가 남긴 ‘국민CM송’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대중들의 기억 속에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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