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비결서, ‘안전한 먹거리’로 다시 태어나다
조선시대 비결서, ‘안전한 먹거리’로 다시 태어나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2.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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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PR현장] 9개 시군 공동 브랜드 ‘십승지’

[더피알=문용필 기자] 약 500여년을 이어온 조선시대는 환란이 계속된 시기로 기록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적의 침입은 물론 민란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세상이 흉흉하면 민중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고 의지할 곳을 찾게 되는 법. 이에 <정감록>을 비롯한 각종 비결서들이 나돌았다. 이러한 비결서에는 질병과 배고픔, 환란을 피할 수 있는 지역들이 명시돼 있었으니 사람들은 이를 ‘십승지(十勝地)’라 불렀다.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지금 ‘십승지’는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환란을 피하기 위한 피난처가 아닌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농산물 브랜드’로 다시 태어난 것. 영남과 호남, 충청과 강원이라는 지역적 경계를 허물고 전국 9개 지역 공동브랜드로 선포된 십승지의 브랜딩 스토리를 들여다본다.

▲ 십승지 분포도 (사진: 봉화군청, 부안군청,상주시청, 합천군청, 동양대학교 십승지 사업단, 뉴시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특정 도시의 상징물이나 대형 간판을 발견하곤 한다.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것이 지역 농산물 브랜드 옥외광고다. 대형마트에서도 생산 도시의 브랜드를 수놓은 농산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각 지방자지단체들이 브랜드 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이제 지역 수입 증대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돼 버렸다.

이같은 특산물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최근 ‘한국 천하명당 십승지’(이하 십승지)라는 브랜드가 선포식을 가졌다. 이름에서부터 ‘전통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십승지는 전국 9개 기초지자체가 공동으로 추진 중인 브랜드. 한 두 곳도 아니고 9개 지역이 공동 브랜드를 추진하는 것은 흔치않은 사례다.

게다가 이들 지역은 인근도 아닌 5개도에 나뉘어져 있다. 이에 <더피알>은 십승지 브랜드의 추진배경과 진행상황을 들어보고자 사업단이 위치한 경북 영주시 동양대학교를 찾았다.

역사적 스토리텔링에 얹은 독특한 브랜딩

십승지란 원래 <정감록> 등 조선시대 각종 비결서를 통해 전해 내려오는 안전한 지역을 뜻한다. 전쟁과 흉년, 전염병이 들어올 수 없는 지역이라는 것.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영주시 풍기읍과 봉화군 춘양면, 예천군 용문면, 상주시 화북면(이상 경북), 부안군 변산면, 무주군 무풍면, 남원시 운봉읍(이상 전북),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충남 공주시 유구읍, 경남 합천군 가야면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 지역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업단장인 이도선 동양대 행정경찰학부 교수는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십승지의 특성은 뒷산이 높고 마을 입구는 좁은 ‘전저후고(前低後高)’의 형태”라며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안전하고 청정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 십승지의 브랜드 로고(사진제공:동양대학교 십승지 사업단)
비결서에만 머물러 있던 십승지가 브랜드로 재탄생한 배경은 무엇일까. ‘일승지’인 풍기읍의 주도로 지난 2011년 결성된 십승지 읍면장 협의회가 사업의 모태가 됐다.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협의회는 십승지를 바탕으로 한 사업방법을 모색하던 중 공동브랜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이후 2013년 중앙정부의 지역 연계 협력사업에 포함된 것. 이로써 십승지 사업은 국비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닻을 올리게 됐다. 현재 남원을 제외한 9개 지역이 참여하고 있다.

추후에라도 남원이 참여 의사를 밝힌다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다만, 이들 10개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십승지의 색깔을 지키기 위해 참여할 수 없다고 이 교수는 못 박았다.

국비지원이 확정된 이후 동양대에 꾸려진 사업단은 십승지의 브랜드화 작업에 착수했다. 브랜드의 얼굴이 되는로고 개발은 물론, 스토리텔링과 풍수지리에 이르기까지 브랜딩 기반을 다지고 아이덴티티를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다. 상표등록도 이미 마친 상태다. 지난해 12월에는 지역주민과 국회의원, 지자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에서 브랜드 선포식을 열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론칭된 것은 아니지만 시제품도 개발됐다. 9개 지역 고유의 특산물을 추천받아 이를 3개씩 묶은 꾸러미 상품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상주의 오미자와 부안의 뽕잎가루, 봉화의 팥을 한 세트에 묶는 방식이다.

이는 9개 지역이 뭉쳤기 때문에 가능한 상품구성이다. 지역별 개별상품은 물론이고 지역안배에 따라 거대한 확장성을 지니는 것이 십승지의 큰 장점. 인근 지역끼리 묶을 수도 있고 각 도별로 한 지역씩 모을 수도 있다. 종전의 지역 특산물 브랜드와는 달리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화합’이라는 명분은 십승지가 가진 또 다른 장점이다. 아직까지 고질적인 지역감정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영남과 호남을 비롯한 5개도의 지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를 표방한다는 점은 비단 농산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브랜드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 십승지 중 일승지로 꼽히는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사진제공:동양대학교 십승지 사업단)

이 교수는 십승지가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된 이유 중 하나도 이같은 화합에 있다고 설명하며 “국가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지방행정 전문가인 이 교수는 “지방자치제가 갖고 있는 결함은 지역의 폐쇄성이다. 지역이기주의가 충돌하고 지역과 지역 사이의 연계가 잘 되지 않는다. 중앙정부에서도 이를 신경쓴다”며 “십승지는 그런 면에서도 긍정적이다. 강원도부터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까지 연결돼있지 않느냐. 이 사업이 지속적으로 인지도를높이게 되면 지자체 제도의 결함이 자연스럽게 묻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산품 브랜드를 넘어 관광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브랜드 스토리를 갖고 있을뿐더러 꾸러미 상품처럼 연계관광도 시도할 수 있다. 물론, 관광객 유치에 나설 수 있는 인프라 구축과 이를 위한 중앙정부 및 각 지자체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이 교수는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지만 검토 중”이라며 “앞으로 (관광산업으로의 확장을 위한) 노력을 하려고 한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주정례 영주시 풍기읍장은 “재난에 안전한 지역이 어떤 곳인지 관광객들에게 설명하고 십승지 마을에 하룻밤 묵는 투어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숨어 있는 안전한 명당서 자라나는 청정 농산물

십승지는 기본적으로 청정 농산물 브랜드를 표방한다. 이 교수는 “십승지는 숨어있는 곳이지만 청정하고 안전한 명당”이라며 “여기서 나는 안전한 농산물은 현 시대의 트렌드와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수요에 맞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십승지는 기본적으로 유기농 농산물을 지향한다. 이와 함께 ‘명품 농산물 브랜드’에 걸맞은 엄격한 체계도 만들 예정이다. 이 교수는 “농산물의 품질이나 격이 브랜드에 어느 정도 맞아야 한다”며 “이같은 기준에 적합할 때 (십승지) 상표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십승지 브랜드의 다양한 꾸러미 시제품(사진제공:동양대학교 십승지 사업단)

사업단은 농산물 선정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 작업도 진행했다. 가능하면 십승지 읍면의 것을 원칙으로 하되 여의치 않으면 해당 읍면이 속한 시군까지 확대해 그 지역의 농산물까지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브랜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 역시 십승지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교수는 “브랜드에 대한 농민들의 욕구는 대단하다”며 “자신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이 브랜드 상품에 포함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전했다.

십승지 읍면장들도 호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주정례 읍장은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시점에서 재난재해로부터 가장 안전한 십승지의 먹거리가 안전하다는 스토리를 갖고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며 “향후 어떻게 이를 이끌고가느냐에 따라 괜찮은 사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연기 부안군 변산면장은 “더욱 활성화시켜서크게 해야 하는 사업”이라며 “면내 주민들이 참 좋아한다”고 밝혔다.

관건은 홍보다. 아직까지 정식으로 상품이 출시되지 않은 만큼 십승지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인지도는 높지 않은 상황이다. 브랜드 출범식 관련 기사를 제외하면 십승지에 대한 언론보도도 미미하다. 강창수 무주군 무풍면장은 “십승지라는 브랜드를 국민들이 많이 알 수 있도록 홍보를 많이 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

이도선 교수는 “올해는 십승지 홍보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업단은 방송매체와 국내 식품박람회 참가를 통한 홍보를 검토 중이다. 서울 청량리역, 동서울터미널 등 유동인구가 많은 교통거점에 옥외광고를 집행하는 한편, 웹사이트도 구축하고 있다.

아울러 이 교수는 “풍수지리 세미나 등을 통해 십승지를 알리거나 세종시에서의 홍보활동을 통해 중앙행정 부처에 (브랜드를) 알리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며 “일본이나 중국에 안전하고 청정한 농산품이라는 점을 어필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보다 대대적인 홍보가 쉽지 않은 이유는 한정된 예산 때문이다. 예산은 십승지 사업의 지속성과도 연결돼 있다. 사업단은 올해까지만 운영된다. 이후에는 별도의 운영주체를 정해 브랜드 사업을 펼쳐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교수는 “사업단이 해체되기 전 주식회사나 법인 등 관리주체를 만들어놓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있다”며 “십승지의 경우 공동브랜드가 아닌 개별브랜드는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영주시청 관계자는 추가적인 국비지원 없이는 사업예산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 관계자는 “브랜드는 좋은데 사업을 이어나가려면 어느 정도의 국비지원이 지속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십승지 브랜드 선포식(사진제공:동양대학교 십승지 사업단)

사업추진의 어려움…문제는 예산확보

또다른 관계자는 “브랜드라는 것이 자판기에서 금방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십승지) 브랜드를 만들고 선포식 하는 데만 약 2년이 걸렸다”며 “(참여지역이) 2~3개라면 쉽게 되겠지만 9개 지역이 되다보니 의견 도출이 쉽지 않아 자체 사업비 확보는 현재로서는 어려울 것 같다”고 언급했다.

시 관계자의 말처럼 9개 지역의 공동브랜드라는 점은 의견을 조율하기 힘들다는 단점을 내포한다. 각 지역마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광역적으로 브랜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상징성은 있지만 실제 업무를 추진할 때는 애로사항도 있다”며 “담당 공무원들의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해 어려운 점이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지속성 있는 지자체PR을 가로막는 요소가 여기에도 작용하는 셈이다.

이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관계자들은 십승지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십승지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이 교수는 “(십승지 브랜드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 올해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주정례 읍장도 “3년간 브랜드를 만들고 이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었다”며 “지금은 첫 단추를 끼는 과정에 있는데 지속적으로 해서 결실을 맺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십승지가 여러 난관을 뚫고 소비자들이 인정하는 명품 농산물 브랜드로 자리 잡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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