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강미혜 기자] 메르스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게 된 데에는 대국민 소통이 미흡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관련기사: ‘메르스 공포’, 땜질식 커뮤니케이션이 원인)
초기 상황을 통제하고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보건당국이 관련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으면서 유언비어를 키운 꼴이 됐다. 유사시 정확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이 더 큰 화(禍)를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메르스로 인한 국민적 혼란에 대해선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분별한 경쟁적 보도는 진위여부를 파악하는 데 있어 오히려 걸림돌이 됐고, 자극적 타이틀을 앞세운 기사들로 지나치게 공포감을 조성한 측면이 있다. (관련기사: 메르스 사태 진단 “번지수가 잘못됐다”)
이같은 언론 모습은 세월호 참사 때와 꼭 닮았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사회는 속보지향, 견강부회, 침소봉대하는 언론들의 보도 관행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깨달았다. (관련기사: ‘기레기’ 외침 6개월, 언론계는 얼마나 달라졌나) 반성의 의미로 언론단체가 공동으로 ‘재난보도준칙’을 제정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메르스 사태를 겪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감염병 보도원칙’이 있지만 원칙이 지켜지진 않고 있다.
감염병 보도원칙은 지난 2012년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가 공동으로 제정했다. 감염병에 대한 보도는 독자나 시청자들이 건강을 지키고 유지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정보지만,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했을 경우엔 건강에 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감염병 보도원칙이 준수되기는커녕, 어뷰징(동일 기사 반복 전송)과 ‘실검 낚시’라는 언론계의 고질적 병폐가 여전히 재연되는 모습이다.
실제 감염병 보도원칙의 세부 내용과 정확히 반(反)하는 언론보도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감염병 보도원칙 - 감염병 보도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사실이 전달되지 않도록 과도한 보도 경쟁을 자제한다.

→ 6월 9일 오후 5시 기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용인메르스’가 오르자 갖가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동일한 매체에서 용인메르스 관련 ‘새롭지 않은’ 기사를 낸 경우도 상당히 많다.
· 감염병 보도원칙 -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제시하며,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추측, 과장, 확대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
→ 한 매체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메르스에 감염된 여성 환자가 임산부로 판명됐고, 그가 해당 병원 산부인과 병동에 장기 입원한 환자라는 사실에 근거해 ‘산부인과 병동도 뚫렸을’ 가능성에 대해 단독보도했다. 삼성서울병원 측은 “현재 질병관리본부에 확진검사를 요청해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 하지만 해당 보도가 나간 이후 갖가지 자극적 타이틀을 앞세워 임산부의 메르스 감염 위험성을 강조하는 기사들이 봇물을 이룬다. 동일한 매체에서 비슷한 기사를 중복 송고하는 어뷰징 스킬 역시 눈에 띈다.
· 감염병 보도원칙 - 감염 가능성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명확하게 보도해야 하며, 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 지난 8일 메르스가 용인, 시흥, 김제, 대전, 부산 등으로 확산됐다는 소식에 한 매체는 ‘인간풍수 창시자’라는 인물을 인터뷰해 메르스가 8월까지 갈 것이라는 ‘예언’을 보도했다. 또한 이 매체는 ‘따뜻한 바닥에서 자라’ ‘얇은 긴 소매를 입어라’ 등 그가 전하는 메르스 예방법(?)을 추가로 전하기도 했다.
· 감염병 보도원칙 - 감염병의 규모, 증상, 결과에 대한 과장된 표현은 자제한다. 기사 제목에 패닉, 대혼란, 대란, 공포, 창궐 등의 단어를 삼간다.

→ 충북 옥천군에 거주하는 60대 남성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것과 관련해 ‘패닉’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 지역 5곳에 메르스가 확산된 것과 관련해 한 매체는 ‘병원 24곳 명단보니…‘이럴수가’’라는 타이틀로 긴장감을 불어넣었지만, 내용은 ‘이럴수가’라는 표현과 어울리지 않는 평이한 스트레이트성 기사였다.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메르스 사태는 언론사 입장에서 보면 트래픽을 끌어올리는 ‘핫한 키워드’임에 분명한 듯하다.
하지만 국민건강, 안전, 생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슈에 있어선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하기에 감염병 보도원칙은 준수돼야 마땅하다. 이 사실을 몰라서 기사에 반영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안 하는 것인지 모를 언론들을 위해 감염병 보도원칙을 전제하는 것으로 이번 기사는 마무리.
감염병 보도준칙 * 자료제공: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