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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TV쇼 출연 오바마, 파격이 돋보이는 이유[기자토크] “우리는 친구” 메시지 몸으로 보여줘…88년만의 방문 의미 더해

“미국인과 쿠바인은 친구다(The American people and the Cuban people are friends).”
“친구라고! 당연하지(Friend! of course).”

[더피알=문용필 기자] 불과 10년전만해도 미국인과 쿠바인 사이에서 이런 우호적인 대화가 오갈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대화 당사자가 미국 대통령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현실이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쿠바의 유명 코미디언 루이스 실바를 통해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 방문을 며칠 앞두고 쿠바의 한 유명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직접 스튜디오에 등장한 것은 아니고 백악관에서 실바의 방송 캐릭터인 ‘판필로’와 전화통화를 하는 형식이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 기간에 쿠바 야구 대표팀과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의 친선 경기가 예정돼 있다. 그런데 경기 당일 비가 내릴 것이 걱정된 판필로가 다짜고짜 백악관에 전화를 건다. 수화기를 든 이는 다름 아닌 오바마 대통령이었고 판필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판필로의 전화에 놀란 것은 오마바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 “No me digas(말도 안된다)”는 스페인어까지 구사해가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이들의 대화는 3분 가량의 영상으로 유튜브에 공개돼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이유는 양국의 오랜 악연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중심이 된 쿠바 혁명이 성공하고 이로 인해 친미 성향의 바티스타 정권이 물러난 후 미국과 쿠바는 반세기 넘게 으르렁 거리는 사이였다.

1962년에는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는 소련의 계획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미사일 위기’가 촉발되기도 했다. 이후 미국은 1964년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조치를 단행했다. ‘이제 그만 하라’는 국제사회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지낸 시간이 근 60여년이다.

미국은 냉전 시대 종식 이후에도 자국 영토 코앞에서 사회주의 정권을 지켜나가는 쿠바가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것이다. 쿠바 입장에서는 경제봉쇄조치를 풀지 않는 미국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을 터.

쿠바에서 망명한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쿠바 영토 끝자락에 위치한 미군의 관타나모 수용소는 양국의 뒤틀린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물들이다.

하지만 지난해 외교관계를 복원한 이후 양국 사이에 훈풍이 불고 있다. 급기야 지난 20일에는 ‘에어포스원’(미국 대통령 전용기)이 쿠바 땅에 착륙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실현됐다. 지난 1928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쿠바 방문 이후 88년 만의 일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판필로의 짧은 대화는 88년만의 미국 대통령 방문이라는 국가적 이벤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베어그릴스와 생존 도전에 나서고 코미디언의 차고에서 팟캐스트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과감한 소통 행보를 선보였던 오바마라지만 오랜 적대국의 TV쇼에 출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파격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바마는 자신의 쿠바 방문에 기대감을 나타낸 판필로에게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인과 쿠바인은 친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비단 판필로뿐만 아니라 쿠바 국민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나 다름 없었다.

중간중간에 스페인어를 섞어가면서 대화를 이어나간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아마도 이를 시청하는 쿠바 국민들에게 친근함 이상의 우호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 21일(현지시각) 쿠바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가진 후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손을 잡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노림수를 차치하더라도 한 나라의 국가원수, 그것도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TV쇼에서 코미디 연기를 하는 장면은 파격적이다. 오바마의 TV쇼 출연이 말 그대도 ‘쇼’라고 할지라도 행동으로 옮기기에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개그콘서트’나 ‘SNL 코리아’에 출연해 ‘한국과 일본은 친구’라는 메시지를 보낸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한국인들의 냉소가 조금이라도 사라지지 않을까. 물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독도 영유권 주장 철회같은 진실한 관계 개선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려나.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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