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강미혜 기자] 연예인들이 난해한 패션이나 스타일로 대중 앞에 섰을 때 흔히 ‘코디가 안티’라는 말이 나온다.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되레 깎아먹는 상황을 우회적으로 조롱하며 안티(팬)로 일컫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한항공은 ‘오너가 안티’라는 말이 어울릴 듯하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땅콩회항’이라는 사건으로 대한민국 국적항공사 얼굴에 먹칠한 이후, 잊을만하면 오너 이슈가 터져 나와 기업이미지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번에 대한항공의 발목을 잡은 이는 다름 아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대한한공 대표이사 회장)이다.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를 회삿돈에서 쓴 혐의(배임)로 ‘오너리스크’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한진 입장에서 급한 불은 껐지만 언제든 다시 큰불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최고경영자의 거취 불확실성은 당장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 17일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은 전날보다 2.81% 내린 1만9050원으로 장을 마감했으며,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주가 역시 550원(1.82%) 하락한 2만9750원에 머물렀다.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은 경영 상황이 나아지면 차츰 만회할 일이지만,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이 그룹 차원에서 진짜 걱정해야 할 점은 기업이미지 훼손에 따른 평판자본 하락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할 수밖에 없는 무형의 자산을 오너가 주기적으로 휘발시키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조 회장은 지난해 3월에도 SNS 글로 구설에 휩싸인 바 있다. 임금협상 등으로 대한항공 노사갈등이 불거졌을 당시, 한 기장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과시가 심하네요. 개가 웃어요. 마치 대서양을 최초로 무착륙 횡단한 린드버그 같은 소리를 하네요”라는 글을 올려 불필요한 잡음을 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설사 해프닝 정도로 여겨질 수 있는 사안이라 하더라도 대한항공은 유달리 엄격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국내외를 뒤흔들었던 땅콩회항의 여파가 지금도 계속되는 까닭이다.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여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중의 머릿속에 땅콩회항은 ‘갑질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대한항공 관련 부정적 이슈가 나오기만 하면 여지없이 땅콩의 기억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조 회장의 구속영장 소식을 전하는 기사 아래로 달린 “딸 잘못 키운 거 잘못했다고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 불과 엊그제 같은데... 이젠 본인이 더 추잡하게 구속되는구먼”이라는 댓글이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것만 봐도 여론의 냉담한 시선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재계 전반을 얼어붙게 한 ‘최순실 뇌관’에서 한진그룹은 뜻하지 않게 동정론을 끌어내며 불똥을 피해간 거의 유일한 기업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조 회장이 ‘최순실 입김’으로 퇴임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어떻게 보면 땅콩회항 이후 일련의 악재를 최순실이란 초대형 악재로 덮을 수도 있었는데, 또다시 불거진 오너리스크가 그 기회를 날려버리는 꼴이다.
지난 여름 대한항공은 ‘나의 스페인행 티켓’이란 시리즈 광고로 호평 받았다. 그런데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오너 구속 위기’가 여행의 설렘을 지워버리는 모양새다. 오너가 안티라는 말이 결코 과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