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영상 대중화…‘맷돌' 된 편집자들
유튜브로 영상 대중화…‘맷돌' 된 편집자들
  • 안해준 기자 (homes@the-pr.co.kr)
  • 승인 2020.06.03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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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 계약, 갑질사례 빈번…‘가능성 페이’ 제안받기도
기존 대행업계 문제 반복, “공무원들이 더 하다”

[더피알=안해준 기자] 동영상 제작·편집을 담당하는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쓰이는 이색 단어(?)가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맷돌’이다. 

곡식을 가는 데 쓰는 도구가 마치 자신들의 처지 같다는 데서 기인한 업계 관용어다. ‘사람(노동력)을 갈아넣듯’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오죽하면 속된 말로 ‘쌩노가다’로 표현되기도 한다. 

사람 하는 일에 쉬운 것이 어디있겠냐마는 영상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비유가 유독 와닿는 건 몇 년 새 유튜브를 기점으로 영상 콘텐츠 시장이 대폭 성장했기 때문이다. 1인 미디어와 함께 1인 프로덕션 체제가 자리 잡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대행업계에서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있어온 갑을문제, 근로조건 등의 해묵은 이슈가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함께 보면 기사 : [갑과 을의 평행선 ①] 제안요청서

업계 종사자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부분은 바로 근로계약상 문제다. 영상 콘텐츠라는 결과물이 나와야 업무가 끝나는 특성상,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업무 강도가 엄청나다. 손을 대면 댈수록 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입 노동에 걸맞은 보수와 대우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튜브에서 주목받는 직업 중 하나인 영상편집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버들이 수많은 콘텐츠를 혼자서 빠르게 편집할 수 없기에 채널이 어느 정도 커지면 전문 편집자를 별도로 고용하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인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과 비례해 불합리한 처우 문제도 커지고 있다. 유튜브 채널 편집자로 활동하는 A씨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상 제작일에 뛰어들지만 계약 방법, 업무 시간, 급여 기준 등이 너무나 천차만별이다”고 했다.

실제로 A씨는 영상 편집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무보수 계약을 제안받기도 했다. 해당 채널 구독자 수가 많아져 수익이 창출되면 보수를 제공한다는 조건이 뒤따랐지만, 열정페이 개념을 넘어선 ‘가능성 페이’라고 할 만한 불공정 계약이다. 

이처럼 유튜브나 디지털 플랫폼 내 영상 편집자 고용 논란은 종종 언론보도를 통해 공론화되기도 한다.

구독자 2480만명을 보유한 국내 최대 키즈 유튜버 ‘보람튜브’의 경우, 지난 1월 영상 편집자 채용 공고로 인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보람튜브 측이 제시한 편집자 급여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보람튜브 측은 직원 실수에 따른 해프닝이라고 해명했지만, 업계를 중심으론 유명세를 바탕으로 편집자에 갑질하는 제작 환경의 단상을 보여준 사례로 회자됐다.  

영상 제작 대행사와 유튜브 편집 프리랜서를 겸하고 있는 B씨는 “크리에이터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프리랜서를 뽑고 싶어 한다. 워낙 레드오션 시장이라 ‘너말고도 할 사람 많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불공정 계약, 업무상 갑질 등이 많아지자 유튜브 편집자 커뮤니티에서는 ‘유튜버들과 계약할 때 ~~한 조건을 무조건 제안하라’는 자체 가이드라인이 공유되기도 한다. 영상 길이와 수정 횟수, 비용을 지급 받는 방법 등 유튜버들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대행 비즈니스를 하는 기존 커뮤니케이션 업계에서도 겪었고, 지금도 겪는 일이다. 공공이나 민간이나 할 것 없이 협력업체 상당수가 ‘을’의 입장에서 과도한 업무 요구를 종종 받는다. 그럼에도 클라이언트와의 계약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계약조건을 넘어선 추가 요청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기업 영상 콘텐츠 제작을 맡고 있는 C씨는 “(영상)건수로 계약하면 그나마 낫다. 연간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 클라이언트 측이 당초 계획에 없던 추가 콘텐츠 제작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 입장에선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보수가 밀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C씨는 “콘텐츠 결과에 대한 비용 지급이 제때 안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며칠을 밤새가면서 힘들게 영상을 만드는데 (돈 늦게 주는 건) 당연하다는 듯한 자세로 나온다. 일하는 입장에서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업체에 몸 담고 있는 D씨는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등 공무원들이 더 하다”고 했다. 코로나 여파로 민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대행료 떼일 걱정 없는 공공 분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알아서 ‘서비스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D씨는 “(수주)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용역 입장에서 (과업지시서에 명기된 것 외에) 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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