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유희본능을 일깨우다
도심의 유희본능을 일깨우다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14.12.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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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남다른 세상] 위대한 항해 떠나는 도시놀이개발자 ‘전기호’

‘멍때리기대회’라는 황당한 일을 벌인 이들이 있다. 하고 싶어서, 재미있어서 할 뿐이라는 프로젝트 듀오 ‘전기호(웁쓰양&저감독)’다. 저감독이 운영하고 있는 연남동의 토끼바에서 만난 그들은 갓을 쓰고 커다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가슴팍에는 아기자기한 와펜까지 달았다. 독특한 복장은 물론이고 한눈에 봐도 아티스트임을 알 수 있는 범상치 않은 포스! 

▲ 프로젝트 듀오 '전기호'. 사진: 성혜련 기자

[더피알=조성미 기자] 지난 10월 27일 서울시청광장에서는 이색 행사가 열렸다. 누구라도 듣는 즉시 참가의욕과 우승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멍때리기대회’가 그것이다. (관련기사: “멍때리는 게 진정 잉여짓인가요?”)

멍때리기대회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참가자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정원 50명을 넘겼고,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것은 물론, 여러 언론에서 앞 다퉈 취재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대회가 끝나고 3주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번 행사를 마련한 도시놀이개발자 ‘전기호’의 웁쓰양과 저감독은 멍때리기대회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다고 이야기한다.

“대회 전부터 관심을 받으며 인터뷰를 했고, 또 멍때리기대회가 우리 사회에 던진 ‘생각의 휴식’이란 담론이 이어지며 여전히 찾는 사람들이 많아요. 참가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 이들을 미디어와 연결시켜주는 등 계속 바쁘게 지내다가 이제 정신이 돌아오는 중입니다.”

영상으로 작품을 만드는 저감독은 이번 대회를 생중계했던 유스트림 영상을 바탕으로 현재 작업을 진행중이다. 때문에 전기호에게 멍때리기대회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멍때리기’

멍때리기대회는 지난해 번아웃 상태였던 웁쓰양의 고민에서 출발했다. “무어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그래서 무언가를 하자면 집중이 안됐어요. 모든 것이 소진된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왜 나만 불안하지?’란 생각에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니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았을 때 오는 불안감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멍때리기가 정말 그렇게 쓸 데 없는 짓인가?’”

이렇게 시작된 웁쓰양의 고민은 흔히들 부정적 뉘앙스로 쓰이는 ‘잉여’라는 말은 자본주의 기준에서의 용어일 뿐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사실은 우리 모두 멍때리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불안감에 바쁘게 살려고 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러한 고민을 하던 차에 불현듯 멍때리기대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것.

▲ 지난 10월 27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진행된 멍때리기대회 모습. 사진제공: 전기호

“그냥 명칭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생각했어요. 이 아이디어를 주변에 얘기했을 때 반응은 별로였지만(웃음)… 그래도 계속해서 대회에 대해 혼자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후에 다시 멍때리기대회를 기획하며 많은 이들과 대화하던 중 저감독이 얘기를 잘 들어주고 또 잘 통해 본격적으로 같이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저감독이 합류하면서 멍때리기대회의 준비는 급물살을 탔다. 두 작가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대회의 틀을 잡아갔고, 가볍고 웃기기만 한 대회에 무게를 실어주는 역할로 정신과의사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 결과 멍때리기대회의 파장은 예상보다 컸다. 모두가 바쁘게만 살아가는 가운데 생각의 휴식이라는 숙제를 던져준 이 대회의 의미가 되풀이되고 전문가들의 해석도 쏟아져 나왔다.

특히 압도적인 모습으로 결국 우승을 거머쥔 초등학생 참가자는 여러 곳의 학원에 다니며 자주 멍을 때려 걱정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해당 분야에 일가견이 있었다. 이에 어머니가 직접 참여를 권유했다는 이야기와 대회 취지에 걸맞은 우승자의 포스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하지만 초등학생마저도 뇌가 지쳐 멍을 때릴 만큼 우리 사회가 얼마나 피곤하게 살고 있는지도 다시 한 번 고민해보는 숙제를 남겼다.

행사를 기획한 두 작가에게도 고민거리가 남았다. 멍때리기대회가 큰 관심 속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작가인 두 사람에게 있어선 예술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

“기획 단계에서부터 멍때리기 ‘대회’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 서울광장에서 멍 때리는 집단과 바쁘게 돌아다니는 도시인들이 대비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짜릿했어요. 그래서 그 모습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 자체가 전기호의 작품이었던 것이죠.”

▲ 전기호의 웁쓰양과 멍때리기대회의 초등생 우승자가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한 모습. 사진제공: 전기호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광장을 꽉 채우는 것은 어려웠고(이번 대회의 모든 비용은 두 작가의 사비로 진행됐다), 또 미디어의 높은 관심과 취재경쟁으로 통제가 어려웠던 애로점도 있었다. 덕분에 대중의 관심을 끌었지만 예술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

때문에 두 번째 대회는 후원사도 구하고 경기장을 경기장답게 만들어 어수선하지 않게 의도했던 작품을 제대로 만들 계획이다.

하고픈 일을 하며 지금을 산다

전기호의 두 작가는 다소 늦게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하고 늘 정해진 길로만 살아왔던 저(that)감독은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디자인을 전공하고 20대 내내 직장생활을 하던 웁쓰양은 어느 순간 회화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재미있어서’ ‘하고 싶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뒤늦게 시작한 터라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은 두 사람은 스스로를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라는 은어)’이라고 표현했다.

저감독은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촬영장에서 연출부로 일하다가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시나리오를 쓰고 찍고 싶은 대로 찍고 편집하고 싶은 대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렇다보니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들과 달리 변칙적인 스타일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이 저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웁쓰양 역시 독특한 방식으로 데뷔를 했다. 그저 하고 싶어서 페인팅을 시작하고 2년여가 흘렀을 때 문득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란 생각이 들어, 무작정 한 평론가에게 작품 평가를 부탁했다. 그리고 기대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유명 평론가였던 그의 추천으로 상상마당의 서교 60전을 통해 데뷔하게 됐다.

▲ 프로젝트 듀오 '전기호'의 웁쓰양(오른쪽)의 <고등어를 사려다 그림을 사다, 2010년作>. 100여개의 소품 그림을 제작해 재래시장 상인처럼 옷을 입고 그림을 파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사진제공: 웁쓰양

이렇게 각자의 장르도 다르고 개성도 강한 두 작가이지만, 다른 점이 많아도 마치 퍼즐처럼 딱 맞기도 하다. 저감독은 생각이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웁쓰양은 실행력과 추진력이 좋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로의 박자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저감독은 “공동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이럴 때 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어느새 웁쓰양이 저는 저의 속도에 맡겨두고 자신의 작업 과정을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저에게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며 은근슬쩍 압박을 가했죠. 게으르고 느린 성격이지만 계속 두드려주는 웁쓰양 덕분에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었어요”라고 둘이어서 좋은 장점을 언급했다.

추진력만큼이나 눈치가 빠르다는 웁쓰양 또한 마찬가지다. “저감독과 저는 다를 뿐 누가 틀린 것은 아니잖아요. 이를 인정하고 대신에 계속해서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계속해서 어필하고 맞춰갔죠. 결국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며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어요.”

도시에 놀러 나온 두 외계인

두 작가의 쿵짝이 잘 맞아 보이지만, 전기호의 저감독과 웁쓰양이 만난 지는 일 년하고 반 정도에 불과하다. 서로 ‘친하지 않다’고 이야기 하는 두 사람은 지난해 5월 있었던 그룹전에서 처음 만났다.

전시의 주제가 다소 무거웠지만 다른 작가들과 달리 두 사람은 경쾌하게 풀어낸 작품을 선보였고 서로의 작업에 도움을 주고받았다. 전시회 후에도 그저 ‘저런 작가가 있구나’ 정도에 머무른 채 별다른 교류가 있진 않았다.

하지만 엉뚱하고 재미있는, 어두운 주제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두 사람의 작품 스타일 덕분인지 결국 재회한 두 사람은 멍때리기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기호(Elec2ronic ship)’라는 프로젝트 듀오를 결성했다.

▲ 프로젝트 듀오 '전기호'의 저감독(오른쪽 상단)의 작품활동

머릿속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차분히 설명하는 저감독과 생각한 바는 즉시 실행에 옮겨야 하는 웁쓰양이 만나 결성된 전기호의 팀명도 전기호스럽게 만들어졌다.

“멍때리기대회를 준비하며 서울시청광장을 대여하기 위해 서울시청에 허가를 받아야했어요. 업무를 담당하는 총무과 직원이 전기호씨였는데요, 친절하지만 공무원스러운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그리고 저희 팀 이름을 고민하던 중 그가 떠올랐고 전기+호의 영문이름(Elec2ronic+ship)을 붙여 팀명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팀의 코스튬도 완성했다. 전체적인 콘셉트는 저감독이, 이를 구체화시키는 것은 웁쓰양이었다.

“연남동 다프트 펑크(Daft Punk, 프랑스의 전자 음악 듀오로 헬멧이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로 결심하고 트레이드마크가 될 만한 걸 찾았어요. 제(저감독)가 2년 전 다른 퍼포먼스에서 저승사자로 분장하며 갓이 괜찮은 아이템이라 느껴 갓을 제안했고, 웁쓰양도 현대에 잘 어울리는 헤어 아이템인데 많은 이들이 쓰지 않는 것이 아쉽다고 생각해 흔쾌히 받아들였죠.”

그렇게 갓을 메인 아이템으로 격자무늬 셔츠와 원피스 등으로 퓨처리즘을 표현해 미래와 고전이 섞인 느낌을 연출했고, 메인 콘셉트였던 외계인의 느낌을 주기 위해 와펜 등의 귀여운 오브제를 활용하면서 커다란 선글라스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전기호는 ‘도시놀이개발자’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팀을 결성했으니 또 다른 작업을 해야겠다고 고민하던 중, 사람들이 도시에서 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소비생활일 뿐이라는 데에 생각이 일치해 인간의 유희본능을 깨워 소비활동 외에 놀이방식을 연구해보기로 한 것이다.

아직까지 멍때리기 말고 구체화된 놀이는 없지만, 두 사람은 계속해서 얘기를 나누며 재미있는 놀이감이 있을 때 전기호로 함께 활동할 계획이다.

“작가들은 대체로 자기 생각에 빠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그렇게 작가들이 스스로 재미있어서 한 작품은 티가 나고 누가 봐도 재미있죠. 멍때리기대회가 그랬어요. 소소하게 시작했지만 회의 내내 재미있고 그러한 과정이 대회에 모두 드러나 많은 분들이 함께 즐거워하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렇게 스스로 즐거운 놀이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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