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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낯선 당신의 온기를 그리다
길 위에서 낯선 당신의 온기를 그리다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06.28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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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남다른 세상] 여행작가 변종모

[더피알=이슬기 기자] 2006년, 변종모는 <짝사랑도 병이다/가쎄>라는 첫 여행에세이로 인도에 대한 지독한 애정을 표했다. 이후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달>,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달> 등으로 길 위의 시간들을 기록한 그는 독백조의 제목이 풍기는 인상만큼이나 긴긴 방황을 하는 소년 같았다. 그런 그가 최근 한결 여유 있어진 인상과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허밍버드>는 사뭇 달달한 고백으로 돌아왔다. 

▲ 변종모 작가의 최근작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는 음식 여행이나 여행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여행동안 누군가와 소박한 한 끼를 두고 나눈 온기를 살포시 풀어놓는다.

음식 여행도, 여행 음식도 아니라는 신간은 그간의 여행 동안 누군가와 소박한 한 끼를 두고 나눈 온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민한 인상과 슬림한 체형에 대뜸 채식주의자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고기가 없어서 못 먹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먹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전부는 아닌지라 여행 다니면서는 적당히 포기하게 된다고.

“예전에 인도에서 음식을 잘못 먹었다가 일주일을 병원에서 앓았어요. 여행지에서 아프면 서럽죠. 그 기억 때문인지 사실 여행지에서는 음식을 많이 조심하는 편이에요. 빵이나 과일같은 안전한 걸 주로 먹어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돌아다니고 그런 여행도 좋겠지만 전 예민한 편이라 한번 여행 다녀오면 10kg씩 빠지고 그러거든요. 근데, 그렇다보니 뜻하지 않게 누군가 내어주는 차 한 잔이 더 소중하고 그래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여행 이면의 것들을 더 잘 느끼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모든 것은 당신들의 책임인지 모른다. 이런 나의 마음까지도 모두 당신들 때문이다. 그 마음, 당신이 따뜻하게 채워주던 그 마음이 좋아서 그것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길을 나섰지만, 막상 당신은 어디에서나 자주 발견되었고 언제나 당신이 먼저 나를 알아봐 주었다. 그래서 다행이었고 그래서 문제였다.

세상은 아직도 많이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길 위의 당신들. 그때 당신이 보잘것없다 말한 그 한 그릇이 나에겐 너무나 넘쳐났으므로. 언젠가 그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따뜻한 한 끼, 그리고 그것을 채워주던 따듯한 시간들. 그 속에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
-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중

그가 말하는 여행 이면의 것들을 짐작하게 하는 구절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상대에 따라 최악의 식사가 될 수 있고,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나눠도 더없이 풍성할 수 있다. 어떤 시간을 나누느냐에 방점을 찍는다면 말이다.

▲ 여행길에 있는 변종모 작가, 사진은 태국 방콕.
     
그의 여행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욕심껏 볼거리를 찾아 움직이는 여행과 거리가 있다. 한번 떠난 길이 해를 넘기는 건 예사고 유명 관광지 하나 없는 마을에서 몇 달을 지내기도 한다. 그곳에서 그는 동네아이들과 구구단을 외우거나, 동네청년의 한글공부를 돕는다. 아니면 한적한 동네 산책을 하거나 근처 허름한 카페에서 차를 마신다. 일상에 가까운 활동들이다.

낯선 공간이라도 제 시간을 온전히 쓰는 일들이에요. 굳이 한국에서 할 일이 없을 때 여행을 가는 편인데 여행이랑 생활이랑 꼭 차이가 있어야 할까요? 한국에서 못하는 일, 상식 밖의 일은 어디에서도 하면 안 되죠.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지역을 주로 여행하는 그는 종종 한국여행자들의 무례함을 마주하곤 했다. 매체가 발달해 지나친 사전정보 탓일까, 쉽게 접한 저개발국가의 낙후된 영상으로 지레짐작하고 현지에서 함부로 하는 이들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경험이 적지 않다. 여행 작가로 알려지다 보니 종종 강연도 하는데, 그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당부하는 게 있다.

“여행지에서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한국 친구들 때문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어요. 간혹 현지에서 겪은 단편적인 일들을 전부인양 말하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가장 쉬운 예로 호객꾼, 삐끼라고 하죠?(웃음) 몸서리치면서 상종 못할 사람들이라고 매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그들의 생활이라고 보면 어떨까 싶어요. 나에게는 여행지지만 그에게는 그곳이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밥벌이를 하는 삶의 현장이니까.”

▲ 우리는 누구나 한번 태어난 이상 여행자, 변종모 작가는 여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여행자에게 중요한 건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에 대한 정성스런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 배려하는 마음이 바탕에 있어야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을 베푸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그럴 때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람의 호의가 고맙고 나눈 시간이 소중하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존재들을 발견하는 순간, 여행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을 만나게 된다고 믿는다.

이런 말을 하면 늘 듣는 질문이 있다. 몇 개 국어나 하냐고, 현지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냐고. 물론 언어는 중요하다. 언어가 통하면 나눌 수 있는 게 더 풍부해질 수는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데 필수는 아니라는 걸 그는 길 위에서 깨달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게 불편할 수는 있지만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눈은 생각보다 많은 걸 담고 있어서 때로는 눈빛만 봐도 상대와 소통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다.

그는 광고회사의 아트디렉터였다. 대학졸업 무렵부터 30대 후반까지 10여 년간 광고 일을 하면서 7번의 사표를 썼고 8번의 여행을 떠났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더 이상 회사에 해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 사표를 썼다. 그게 회사에도 자신에게도 나은 선택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즐겁기도 했어요. 회사 다닐 때 정말 열심히 일했거든요. 그러다보니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급격히 몸이 걸레가 된다는 느낌도 받았었고.(웃음) 내가 원해서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하는 광고는 보편적으로 그쪽에서 원하는 수준이 있잖아요. 근데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더 맞는 사람이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마라톤 선수가 단거리에서 죽을 둥 살 둥 뛴 것 같아요.

여행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고 다행히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부지런한 천성덕분에 뭘 해도 굶어죽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물론 소비문화의 한가운데에서 패션광고를 만들던 그가 생활의 규모를 줄이는 일이 쉬웠을 리 없고, 지금도 쉽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한번 태어난 이상 여행자

“생활의 규모도 그렇지만, 마음의 다이어트가 더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새로운 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그간의 습관을 벗을 때까지 대가는 치러야 되는 것 같고. 왜, 회사 다닐 때도 신입 때는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얘기해줘도 잘 모르잖아요. 몇 년쯤 지나면 스스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죠. 제가 프리랜서로 글쓰고 방송하고 이렇게 인터뷰하는 데까지(웃음)  8년쯤 걸렸어요. 그간 생활에 지쳐서 마음이 달라질까 두려웠던 적도 있었죠. 근데 하다보니까 쓰고 싶은 글도 많아지고, 슬슬 이런 방식의 삶에 체력이 붙는 것 같아요.”

치열하게 일하고 한가하게 여행했던 그의 두 가지 일상이 언뜻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아 농반으로 물었다. 원래 그렇게 극단적이냐고. 그가 대답했다. 그게 나라는 걸 이제 알았다고. 대체적으로 친절하고 주변을 배려하는 편이지만 몰입하면 쭉 외곬으로 파고드는 성향이다. 세상을 혼자 살 수는 없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것들로 생활을 꾸리리라 마음을 다지고 있단다.

▲ 변종모 작가는 여행에서 배웠던 것들로 일상에서도 즐겁게 살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앞으로 여행을 다시 떠나도, 떠나지 않아도 마찬가지인 그런 기분으로 살고 싶다고.

“모든 여행자는 이기적이에요. 저는 어머니와 각별했는데, 마지막 가시는 길 배웅을 못해드렸어요. 인도에서 소식을 듣고 가장 빠른 편으로 돌아왔는데, 좀 늦었죠. 당시엔 죄책감도 많이 느꼈는데, 그렇다고 제가 어머니 곁에 매일 붙어 다녔다면 그게 능사였을까요? 여러 관계에서 잘 해보고 싶은 건 다들 같겠지만, 일단 내 삶은 내가 살아야하는 거잖아요. 내가 밝아야 나를 보는 사람들도 행복하겠죠.”

우리는 누구나 한번 태어난 이상 여행자다. 어디를 가겠다고 각오를 다져서가 아니라 한번은 떠나기에 여행자다. 나아가 그는 여행에서 배웠던 것들로 일상에서도 즐겁게 살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앞으로도 여행을 다시 떠나도, 떠나지 않아도 마찬가지인 그런 기분으로 살고 싶다고. 그에게 여행은 떠나서 자유로운 게 아니라, 흔들리며 자신과 가까워지는 순간에 그를 지탱했던 생활의 일부였다. 듣다보니 여행이 끝나는 순간이 삶의 끝이라는 구절을 그의 책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다.

몇년 전 그를 만났을 때 작은 쪽지를 받은 적이 있다. 명함대신 쓰던 그 쪽지 귀퉁이에는 ‘당신의 소외와 소통’이란 글귀가 적혀있었다. 그의 말과 글에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그거 제 삶의 화두 같은 거예요. 소통이란 말이 참 평화로운 말인 것 같아요. 당신의 소외된 부분과도 소통하고 싶다는 희망이랄까요. 따뜻하고 순한 사람, 다른 사람의 소외도 도닥일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가슴에 품고 다니는 말이에요.(웃음)”

그와 마주 앉은 내내 따뜻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문득 그토록 따뜻함에 대해 진중한 사람에게 지금 이곳의 공기는 더 서늘하지나 않을는지. 초여름 오후에 선선한 바람을 느꼈다면 내 착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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